[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잘 지어진 옛집들 중에는 수백 년을 거뜬히 버틴 것도 있고, 천 년 세월을 견딘 것도 있다. 경이롭다. 온몸이 전율에 휩싸인다. 옛집이 옛집 아닌 그냥 집이었던 아득한 과거를 상상해 본다. 그 당시 주거 문화 속에 자리한 옛집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 다시 눈앞에 펼쳐진 지난날의 흔적을 마주 본다. 그렇게 보다 보면 옛사람들이 어떤 도구와 방법으로 작업했는지 알게 된다. 그들의 방법을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게 되면 함부로 고칠 수 없다. 그러다 그 아름다움에 미쳐 날뛰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 비로소 한 명의 기능인이 된다.”
신효선은 한평생 목조 건축물을 품에 안고 애지중지하는 ‘한식 목수’다. 주로 오래된 목구조물을 해체하고, 고치고, 원형대로 복원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문화재 수리 기능자’이기도 하다. 이런 걸 모두 아울러 ‘도편수’라는 조금 격식이 느껴지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가 얼마 전 ‘목업 木業’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첫 장에 이렇게 감동적인 글이 적혀있다. 나무 사랑, 목조 건출물 사랑이 자신의 운명임을 밝힌 선언문 같다. 뭉클하다.
그는 30년 동안 나무를 만졌다. 그의 몸에는 목업 DNA가 흐른다. 할아버지도 목수였고, 아버지도 목수였고, 형제들도 모두 목수다. 단 한 번도 다른 직업을 가져 보지 않았고 단 하루도 작업장을 떠나지 않았다. 옛집을 수리하는 현장, 그리고 복원해 낸 기법으로 새로 목조물을 신축하는 현장은 그의 놀이터며 연구실이다. 이보다 더 잘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은 없다.
신효선은 목재의 미덕은 자연스러운 낡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무가 휘고 갈라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목조 건축물에서 발견되는 이상 역시 정상이다”라며 “지금이 아닌 그 시절의 관점으로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헐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을 굳건히 버틴 건축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는 순간 비로소 기능인이 된다”고 고백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간 보물은 많다. 충북 제천 청풍 한벽루(보물 제528호)를 비롯해 열네 채의 목조 건물을 도편수로서 해체하고 수리, 조립했다. 충남 논산 노강서원 강당(보물 제1746호)의 해체와 수리, 조사도 진행했다. 이 강당을 해체하는 데에만 7개월가량이 걸렸다. 일반적으로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을 작업이지만 그는 이처럼 꿋꿋이 정도를 걸었다.
그는 뿌듯한 업적도 쌓았다. 전통 목조 건축물의 해체와 보수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은 지금, 전례 없던 기준점을 만들었다. 조사 주기표와 분류 야장 등 책에 수록된 자료들이 그것이다. 집을 해체하면서 나오는 목재 따위를 일목요연하게 번호를 적어 차례대로 기록해 표로 만드는 법과 세밀한 측량이 필요한 야외 작업을 할 때 필요한 자료를 빠지지 않게 써넣어 작성하는 법을 만들었다. 체계와 기준이 없어 시행착오를 겪는, 그리고 저자와 같이 최선을 두고 고민하는 한식 목수들에게 이 책이 하나의 길라잡이로 사용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나아가 신효선은 오랜 시간 맥이 끊겼던 전통 건축 기법을 복원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개발한 특허 기법을 통해 신개념의 한옥을 짓는 데 성공했다. 그냥 고여만 있으면 발전이 없다. 그는 온고지신, 즉 옛것을 배우고 읽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석조 배흘림기둥을 사용해 팔작집 다포계 양식의 일주문과 육각형 다포계 양식의 종각을 시공했다.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석조 기둥을 사용한 국내 최초의 사례다. 2017년에는 보유한 특허 기법인 H빔을 활용해 신개념의 한옥을 건축했다. 이렇게 해서 모두 6건의 특허를 보유하거나 출원 중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수리 기법이란 내가 겪고, 의문하고, 고민하면서 익힌 것들을 바탕으로 개발한 방식에 한한다. 정답과 정답이 아닌 것을 가르고자 함이 아니다. 그동안 지내 온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 과정과 결과의 기록, 그뿐이다. 현재 몇 가지는 특허를 출원한 상태인데 이 또한 마찬가지다. 타인의 사용을 금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그 신뢰도로 많은 기능인에게 널리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 올바른 시공법을 통해 더욱 좋은 개발 품목들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것이 내가 획득하고 출원 중인 특허의 모든 것을 상세히 기술하는 이유다.”(253~254쪽)
업계에서 괴짜라는 꼬리표가 달린 그의 파격적 행보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오래 된 건축물의 과거, 현재, 미래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손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엄중한 일인가. 이 책은 신효선 도편수의 손에서 목업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
“나는 단지 발견한 사람이다. 목조 문화재 보수 현장에 있다 보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맞추었다.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다시 현장에서 구현하는, 지극히 짜증나고 한없이 기쁜 작업을 해 왔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는 일이기에 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대와 세대를 넘어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다. 이 책이 그 창구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364쪽)
‘목업 木業’은 책이 두툼하다. 480쪽에 이른다. 하지만 풍부한 현장사진이 수록돼 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가격도 만만찮다. 6만8000원이다. 그러나 전문서적이 교양서적처럼 술술 읽히는 미덕을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이테 선명한 대청마루 목재를 어루만지는 느낌이 생생하다는 점이다. 까칠까칠 맨들맨들 감촉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다 읽고 나면 대패 하나쯤 잘 다루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런 책을 만들어 준 궁편책 출판사에 감사한 마음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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