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눈빛만 봐도 통한 단짝케미...손열음·루세브가 엮어낸 ‘러브 뮤직’ 9곡

앨범 발매 기념해 듀오 리사이틀
​​​​​​​4곡+5곡으로 감동 더 업그레이드

박정옥 기자 승인 2024.04.26 17:06 | 최종 수정 2024.04.26 17:18 의견 0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리 루세브가 지난 3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파이플랜즈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갈수록 케미가 장난이 아니다. 눈빛만 봐도 통한다. 공연 타이틀은 ‘러브 뮤직(LOVE MUSIC)’. 두 사람이 최근에 발매한 듀오 음반의 제목이기도 하다. 앨범 수록곡을 포함해 모두 4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모두 사랑이라는 주제를 배경으로 지닌 곡들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38)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48)가 지난 3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열었다.

첫 곡으로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극음악 ‘헛소동’ 주제의 네 곡(Op.11)을 연주했다. 이 모음곡은 결혼을 앞둔 연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질투와 소문, 그리고 이것을 극복하고 이루어지는 굳건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붙인 부수음악이다. 처음에는 관현악으로 작곡했으나 전쟁으로 연주가 불가능해지자 코른골트는 그 중 4곡을 골라 바이올린과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해서 발표했다.

손열음·루세브 듀오는 결혼을 앞둔 소녀의 요동치는 감정을 드러낸 뒤(제1곡), 호기심 많은 두 경비원의 야간 근무 장면을 익살스러운 행진곡풍으로 담아냈다(제2곡). 소녀는 정원에서 젊은 귀족과 사랑에 빠졌다. 둘만의 은밀한 공간은 시간이 멈춘 듯, 숨이 멈춘 듯 아름답다. 두 사람의 꿀 떨어지는 눈빛이 오버랩됐다(제3곡). 그리고 춤추고 연주하는 음악가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표현했다(제4곡).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리 루세브가 지난 3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파이플랜즈 제공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리 루세브가 지난 3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파이플랜즈 제공


두 번째 곡은 가브리엘 포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A장조(Op.13)’. 현재 이 음악은 고전에 속하지만 곡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새로운 형식과 예상 밖의 조성 진행, 독특하고 생소한 리듬 음형을 과감하게 사용한 작품이었다.

여러 가지 시도를 사용했음에도, 포레는 청중들이 이를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선배인 카미유 생상스는 “이 소나타는 마법이다”라고 극찬했다.

반짝이는 물결이 물방울을 튀기면서 흐르듯 유연한 손열음의 피아노 반주 위로 아름답고 우아한 춤 선을 그리는 루세브의 바이올린의 노래가 매력적이다. 모두 4악장 구성인데 2악장 안단테의 마지막 부분이 힘차게 끝나자 일부 관객의 박수가 저절로 터져 나오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리 루세브가 지난 3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파이플랜즈 제공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리 루세브가 지난 3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파이플랜즈 제공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와 프란츠 왁스만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30년대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두 사람은 독일을 벗어나 미국으로 향했고, 그들이 자리를 잡은 곳은 영화 음악 시장이었다. 화려한 기교를 겸비한 유럽의 정통 클래식 음악 작곡가와 경제적으로 규모가 큰 할리우드의 만남은 서로 시너지를 보이며 성장했다. 이들이 길을 닦아놓았기 때문에 엔니오 모리코네와 존 윌리엄스가 빅히트를 할 수 있었다.

코른골트는 비교적 고전적이고 독창적 작품을 남겼기에 공연장에서 자주 연주되지만, 왁스만이라는 이름은 클래식 작곡가로서 프로그램에 보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아마 그의 이름이 익숙하다면, 뛰어난 연주자들이 한번쯤 연주해 본다는 ‘카르멘 환상곡’에서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파블로 데 사라사테가 편곡한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보다 더 화려하고 어려운 곡이다.

‘카르멘 환상곡’과 마찬가지로 왁스만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로 편곡했다. 이 두곡 모두 1946년에 그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영화 ‘유모레스크’를 위해 만들었다. 음악가의 삶을 다룬 멜로 드라마로 한 여인이 젊고 유망한 바이올리니스트를 후원하면서 그의 매니저 역할까지 하다가 사랑에 빠지지만, 바이올리니스트가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결국 음악인 것을 알고 그를 떠난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 주인공의 연주는 당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이작 스턴이 녹음했고, 이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으로 왁스만은 아카데미상 최우수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를 본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는 왁스만에게 자신이 다양한 콘서트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손을 댈 수 있는지 부탁했다. 그 결과로 지금의 바이올린과 관현악, 그리고 바이올린과 피아노 버전이 탄생했다. 손열음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주제의 러브뮤직’ 발견 과정을 밝혔다.

“평소 왁스만의 팬이었어요, 어느날 스베틀린이 왁스만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리베스토드(Liebestod·사랑의 죽음)’로 만든 편곡 작품의 악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왁스만의 바이올린 패러프레이즈는 ‘카르멘 판타지’ 밖에 몰랐기에 너무 궁금했어요. 악보를 보고는 ‘이거 꼭 연주해야겠다’라고 제가 말했고, 스베틀린은 ‘이거 녹음해야 해’라고 말했어요. 이 곡을 담은 음반을 하나 찾았어요. 저희들의 음반이 정확히 두 번째 녹음인지, 아니면 또 다른 녹음이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몇 안 되는 ‘러브 뮤직’의 레코딩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어요.”

손열음과 루세브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음악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제2막 사랑의 이중창과 이졸데의 죽음 등 대표적인 장면을 자연스럽게 엮은 ‘러브 뮤직’을 연주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리 루세브와 듀오 리사이틀을 마친 뒤 루세브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다. ⓒ파이플랜즈 제공


공연에 앞서 두 사람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루세브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딱 내 스타일이라고 느꼈어요”(손열음) “열음과 연주하다 보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음악가가 된 기분이에요”(루세브)라고 말했다.

첫 만남은 2008년 서울시향 신년음악회 때다. 정명훈 지휘에 루세브가 악장을 맡고, 손열음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정명훈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서울시향 음악감독 시절 루세브를 악장으로 앉히며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손열음과 루세브의 첫 듀오 공연은 2015년 8월. 그로부터 9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숱한 무대에 함께 오르며, 음악적 동지에서 삶의 동반자로 나아갔다. 퍼펙트 하모니는 당연한 일이었다.

마지막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내림E장조(Op.18)’. 피아노의 첫 음부터 넘치는 자신감이 느껴지고, 바이올린이 폭넓은 표현으로 사랑을 노래했다. 이 소나타는 슈트라우스가 그의 아내인 소프라노 파울리네 데 아나를 만나는 시기에 작곡됐다.

1악장은 재현부가 유독 빛났다. 먼 길을 돌아서 다시 원래의 조성으로 돌아왔을 때의 압도적인 전율은 작곡가가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매너에 어긋나지만 일부 관객의 박수도 노 프라블럼이었다.

마치 발코니에서 사랑을 고백하듯 즉흥적인 감정을 살려 노래하는 2악장에서는 조성뿐만 아니라 형식도 자유자재로 다루는 천재성이 돋보인다. 피아노 소리가 만든 물방울에 바이올린 소리가 여울지며 반짝였다.

이어지는 3악장은 기운찬 에너지를 가득 담은, 낭만적인, 빛나는 앞날을 위한 노래다. 두 사람이 빚어내는 소리는 엑설런트다.

앙코르는 화끈하게 5곡을 선사했다. 바그너·아우어 ‘꿈’, 크라이슬러 ‘사랑의 슬픔’, 파가니니·크라이슬러 ‘라캄파넬라’, 수크 ‘부를레스케’, 크라이슬러 ‘사랑의 기쁨’이 가슴을 울렸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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