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수가 일본의 프리뮤직 아티스트 치노 슈이치와 듀엣으로 진행하는 ‘박창수의 프리 뮤직-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III’의 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더하우스콘서트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박창수는 아이디어 뱅크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음악회 포스터다. 한국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박창수(60)와 일본의 프리뮤직 아티스트 치노 슈이치(73)가 도로와 맞닿아 있는 인도에 서있다. 바닥이 젖어 있다. 살짝 비가 내린 밤이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다. 그 위로 ‘박창수의 Free Music-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III’라는 타이틀이 박혀있다. 따로 적혀있는 ‘Two Pianos’라는 글씨도 눈에 띈다. 두 연주자가 피아노 두 대로 연주하는 공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참신한 비주얼이 반짝인다.
박창수는 오는 2월 26일(수)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프리뮤직 콘서트를 연다. ‘프리뮤직’이란 악보나 미리 정해진 구성없이 무대 위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말한다.
박창수는 ‘박창수의 프리 뮤직-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Ⅰ’에서 엄청난 에너지의 음악이 정지되는 순간, 그 반작용으로 연주자가 피아노 뒤로 튕겨져 나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더하우스콘서트 제공
이번 공연 ‘박창수의 프리뮤직-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III’는 2019년과 2023년에 이어 세 번째로 펼쳐지는 무대다. 지난 두 번의 공연이 박창수의 솔로 연주였다면, 이번에는 프리뮤직 아티스트 치노 슈이치와 함께 두 대의 피아노로 즉흥 연주를 진행한다.
박창수는 ‘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Ⅰ’(2019년)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며 절정으로 치달은 순간 음악을 멈췄다. 음들이 정지된 순간, 그 반작용으로 연주자는 피아노 뒤로 튕겨져 나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박창수는 ‘박창수의 프리 뮤직-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Ⅱ’에서 안대를 쓰고 연주해 화제를 모았다. ⓒ더하우스콘서트 제공
‘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Ⅱ’(2023년)에서 박창수는 안대를 쓰고 연주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빚어낸 음악은 안으로 안으로 더 단단하게 침잠하는 에너지를 보여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번에 호흡을 맞추는 치노 슈이치는 전위 미술가 ‘이불’과의 퍼포먼스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박창수에 의해 시작된 하우스콘서트 제1회 공연의 초청 연주자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으며 이후 여러 차례 한국과 일본에서 즉흥연주 공연을 가졌다.
두 사람이 연주할 프리뮤직은 실험정신의 최전선에 있는 음악으로, 가장 원초적이면서 현대적인 음악이다. 그러나 프리페어드 주법(피아노 현을 뜯거나 현에 이물을 장치하여 음색을 변화시키는 주법)을 쓰거나 퍼포먼스가 불가능한, 즉 전통적인 연주 관습에 따라야 하는 공연장의 특성상 이번 공연에서 프리뮤직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유는 제한돼 있다. 국적과 세대, 연주 스타일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두 대의 피아노 건반 위에서 펼칠 즉흥연주에 오롯이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박창수(오른쪽)는 일본의 프리뮤직 아티스트 치노 슈이치와 듀엣으로 ‘박창수의 프리 뮤직-침묵을 자유롭게 하다 III’를 진행한다. ⓒ더하우스콘서트 제공
박창수는 2002년 자신의 집에서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하며 우리나라 문화 생태계를 바꾼 기획자다. 1986년 데뷔 이래 독창적인 뮤직 퍼포먼스를 선보여온 그는 눈을 가리고 주먹을 쥔 채 연주한 ‘레퀴엠 Requiem I’(1990), 24시간 12분 동안 연주한 ‘에바다 Ephphatha’(1998) 등으로 날 선 실험정신을 표현해 왔다.
2017년부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을 활용해, 한 달간 매일 공연을 하거나 24시간 동안 연주하는 프로젝트 등을 벌이기도 했다. 피아노 위로 점프하고, 피아노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는 이 시기에 선보였다. 박창수가 20년 이상 이끌어 온 더하우스콘서트는 그의 이러한 실험정신에서 시작된 공연이기도 하다.
프리뮤직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40여 년간 왕성히 활동해 온 박창수는 자신이 만든 하우스콘서트 형식의 저변을 확대했듯, 프리뮤직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며 그 활동 범위를 넓혀왔다. 오는 26일 공연은 실험음악 분야에 오랜 시간 헌신하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그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청중과 공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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