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모두들 바쁜 한해를 보내셨잖아요. 저도 올해 정말 분주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1년을 마무리하면서 ‘오늘’ ‘어제’ ‘내일’ 이라는 콘셉트로 송년 음악회를 준비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연주만큼이나 기획력이 뛰어나다. 2018년부터 ‘대선배’ 정명화·정경화 자매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페스티벌에 그대로 적용해 해마다 큰 화제를 뿌리고 있다.
그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가 특히 많은 신경을 쓰는 시그니처 콘서트가 바로 ‘손열음의 커튼콜’이다. 빼곡한 일정 속에서도 2017년, 2018년, 2021년에 이어 올해 네 번째 공연을 열었다.
손열음은 “연주가 끝나고 관객의 박수에 호응하기 위해 다시 무대로 나가는 ‘커튼콜’은 연주자가 페르소나를 벗고 자신의 본모습으로 관객과 마주하는 순간이다”라며 “엄숙한 형식을 벗어나 청중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는 공연을 구상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12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송년파티 분위기가 가득했다. 손열음은 솔로, 듀오, 사중주를 선사하며 멀티 플레이어의 실력을 뽐냈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처음 연주할 2곡은 올해 처음 익혔기 때문에 ‘오늘’이라는 콘셉트에 딱 들어맞는 곡이다”라고 소개했다.
벨기에 작곡가 기욤 르쾨의 ‘피아노를 위한 세 작품’은 맑은 소리를 통해 예쁜 심상과 정경을 잘 담아냈다. 각 악장마다 제목이 있는 ‘무언가’ ‘잊혀진 왈츠’ ‘행복한 춤’이 차례대로 흐르자 심란했던 마음이 고요해졌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귀도 아고스티의 ‘불새 모음곡’은 정반대다. 활활 타올랐다. 피아니스트 아고스티가 발레 음악인 ‘불새 모음곡’ 중 마지막 세 곡을 피아노 솔로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한 곡이다. 다이내믹한 연주를 통해 열정녀의 모습을 뽐냈다.
손열음은 ‘금호솔로이스트’의 창단 멤버다. 2007년 금호영재, 금호영아티스트, 금호라이징스타 무대에 섰던 클래식 음악계의 젊은 루키들로 구성된 앙상블이다. 올해 15주년을 맞아 금호솔로이스트 멤버로 무대에 설려고 했지만 일정을 맞추기 너무 힘들어 함께 공연하지 못했다. 비록 한곡이지만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고 멤버인 김재영(바이올린), 이한나(비올라), 이정란(첼로)과 호흡을 맞춰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사중주 2번’을 들려줬다. 두 번째 콘셉트인 ‘어제’에 해당하는 곡이다.
콘서트는 인터미션 없이 진행됐다. 전반부에 검은 드레스 차림이었던 손열음은 후반부에 붉은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이번엔 신청곡 타임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미리 문자 메시지로 리퀘스트 곡을 받았다.
그는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니 캐럴을 연주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슈만의 ‘사랑의 꿈’도 있었고요.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로 있네요. 어휴 이건 못합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겨줬다.
그리고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D.935’ 가운데 2번과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파드되’를 플레트네프가 편곡한 버전으로 들려줬다. 잔잔한 감동에 이어 흥겨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콘서트 중간에 이런 소통의 이벤트를 끼워 넣은 점이 돋보였다.
다음은 마지막 콘셉트인 ‘내일’의 시간이다. 손열음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인연이 깊다. 2011년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했을 때 그는 모차르트 협주곡 최고 연주상도 받았다. 2018년엔 영화 ‘아마데우스’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네빌 바리너와 모차르트 음반을 발매했다. 그리고 2020년엔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1번’ 3악장 터키 행진곡을 연주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년엔 모차르트 피아노 소타나 전곡 음반 발매와 함께 전곡 리사이틀을 계획하고 있다.
그 연장선장에서 맛보기로 채 20분이 안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5번을 선사했다. 가슴 짜릿한 기쁨을 순수하게 담아냈고(1악장), 느리고 고요했지만 ‘아임 해피’한 기분을 드러냈고(2악장), 행진곡풍의 익살스러운 장난기도 가득했다.(3악장) 모차르트다운 사운드를 제대로 구현했다.
그는 “모차르트는 하나의 단면만을 묘사하지 않고 항상 이중적이고 다면적이다”라며 “모든 드라마가 굉장히 아이러니하고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서사적인 면도 강해서 아무리 짧은 음악이라도 모두 오페라 같다”고 프로그램북에 적어 놓았다.
손열음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악장을 지낸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와 듀오 무대도 준비했다. 먼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에 나오는 ‘마리에타의 노래’를 들려줬다. 코른골트의 아버지는 음악학자였다. 그래서 코른골트에게 모차르트의 이름인 볼프강을, 형에겐 슈만의 이름인 로베르토를 붙여 주었다.
이어 요제프 수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네 작품’을 연주했다. 요제프 수크는 스승인 드로브자크의 첫째 딸과 결혼했다. 스베틀린 루세브의 말처럼 “낭만주의, 인상주의, 서정주의, 그리고 매우 뛰어난 기교로 이루어진 페르페투움 모빌레(Perpetuum mobile·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움직임을 뜻함) 등 곡 전반에 걸쳐 노래하는 멜로디와 매우 생동감 있는 패시지간의 환상적인 조화가 아주 매력적인 곡”이다.
손열음과 스베틀린 루세브는 내년에 듀오 리사이틀을 개최할 예정이다. 앙코르에서는 두 사람의 환상케미를 예고편으로 선사했다. 크라이슬러가 편곡한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와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사단조’를 들려줬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는 루세브가 비올라로 대체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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