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미래 오페라 관객 사로잡은 ‘마님이 된 하녀’...재치대사·웃음폭탄에 눈못뗐다

오렌지팩토리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참가
​​​​​​​홍민정 연출...오효진·김성국·황자람 연기도 굿

박정옥 기자 승인 2024.07.08 17:49 의견 0
‘마님이 된 하녀’에서 오효진·김성국·황자람(왼쪽부터)이 연기하고 있다. ⓒ오페라팩토리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마님이 된 하녀’라는 제목에서부터 엄청난 신분상승 스토리가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앞뒤로 인쇄된 두 쪽짜리 프로그램북의 프런트에 하녀 그림이 인쇄돼 있다. 옛날 옛적 모습이 아닌 지금의 차림새다. 왼손에 긴 먼지털이를 들고 오른손에는 청소용 분무기를 들었다. 노란 고무장갑도 끼었다. 시대배경 설정이 최근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타이틀 위에 ‘가족오페라’로 명시돼 있다. 초등학생 이하의 자녀가 엄마 아빠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것. 타깃이 명확하게 정해진 만큼 문턱을 낮췄다. 원작은 이탈리아어 오페라지만 노래와 대사를 한국어로 번안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했다. 모두 함께 보는 작품이니 분명 새드엔딩은 아닐 것. 중간에 한바탕 소동이 있겠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오페라팩토리가 ‘가족오페라-마님이 된 하녀’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렸다. 박경태 단장이 이끌고 있는 오페라팩토리의 제15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참가작이다. 6월 29일(토)과 30일(일) 모두 네 차례 관객을 만났다. 30일 막공(오후 3시)을 감상했다.

오페라팩토리가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를 선보이고 있다. ⓒ오페라팩토리 제공


‘마님이 된 하녀’는 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가 만든 ‘오만한 죄수’라는 작품의 막간극으로 공연됐다. 막과 막 사이에 선보인 양념 같은 공연이었지만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아 당당하게 독립된 공연으로 승격됐다. 뜻하지 않게 대박이 터진 셈이다. 부파(buffa)적 요소, 즉 유쾌하고 풍자적 요소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희극 오페라다.

무뚝뚝한 심술쟁이 우베르토(바리톤 김성국 분)는 비록 하녀지만 마님처럼 당당하게 행동하는 예쁘고 착한 세르피나(소프라노 오효진 분)를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총 때문에 마음을 숨기고 있다. 답답한 우베르토와 달리 똑똑하고 자신감 넘치는 세르피나는 직진녀다. 머뭇대는 우베르토를 놀리기라도 하듯 당당하게 청혼한다. 우베르토는 계속 망설인다. 세르피나는 하인 베스포네(배우 황자람 분)의 도움을 받아 우베르트의 마음을 바꿀 묘안을 짜내는데...

등장인물은 단출하다. 무대에 단 3명만 나오지만 촘촘한 구성 덕에 빈틈없이 돌아간다. 적당한 때에 유쾌한 웃음이 터졌고, 또 적당한 타이밍에 관객참여가 이루어져 몰입도를 높였다.

연출뿐만 아니라 무대 디자인까지 맡은 홍민정은 시각적인 효과를 사용해 공연의 분위기를 띄웠고 아티스트들의 움직임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동선을 선보였다. 무대 정중앙에 큰 천을 걸어 우베르토가 세르피나에 대해 푸념하는 장면, 베스포네가 템페스타 대위로 변장해 터프가이 모습을 뽐내는 모습 등에서 그림자 효과를 잘 살려냈다. 소품으로 사용된 의자 두 개를 사선으로 배치해 단조로운 무대를 보완하는 센스도 돋보였고, 극중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장면에서는 출연자의 머리 위에서 전구불이 반짝 켜지도록 연출한 장면도 재치 넘쳤다.

오페라팩토리가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를 선보이고 있다. ⓒ오페라팩토리 제공
오페라팩토리가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를 선보이고 있다. ⓒ오페라팩토리 제공


또한 귀에 익숙한 유명 클래식 음악을 효과음으로 사용해 귀를 사로잡았다. 우베르토가 이러지도 저러지고 못하고 멘붕에 빠졌을 때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가 흘렀고, 세르피나와 우베르토의 뗄려고 해고 뗄수 없는 관계를 암시할 때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사용했다. 베스포네가 짐승남 템페스타로 변장할 때는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을 활용했다.

대중음악 가사도 살짝 녹였다. 똑같이 하인 신세인데도 왠지 세르피나가 더 신분이 높아 보이는 상황을 설명할 때 베스포네는 소유와 정기고의 달달한 듀엣곡 ‘썸’을 패러디해 노래했다. “내꺼인듯 내꺼 아닌 너”를 “직장 동료인 듯 동료 아닌듯 세르피나”로 바꿔 불렀다.

맛깔스러운 대사도 넘쳤다. 페르골레지 원작에서 말을 못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베스포네는 극을 이끌어가는 내레이션 역할뿐만 아니라 폭포처럼 달변을 쏟아내며 관객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세르피나와 우베르토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냐”고 묻고 대다수 관객이 “세르피나!”라고 대답하자 “이길 사람 편을 들겠다”고 선언하는 베스포네의 질문 장면은 기발했다. 객석을 메운 성인 관객들도 아이들처럼 큰 소리로 답했다.

우베르토가 양복으로 갈아입은 뒤 모자가 왠지 작아 보이자 “쿠팡에서 프리스타일로 샀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리거나, 멋진 동작을 선보이려고 다리를 꼬았지만 끝내 다리를 꼬지 못하는 모습에서도 폭소가 터졌다. 페르골레지의 흥겨운 음악이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 오효진, 김성국, 황자람은 열정적인 노래와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음악코치 안희정의 피아노와 백순재의 엘렉톤은 원래 체임버오케스트라 편성인 음악에 견줘도 꿇리지 않을 만큼 효과적으로 커버했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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