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 지금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다 어느덧 한 해가 지날 즈음 귓가에 맴도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캐럴! 한 해가 다 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한 해 동안 달려온 길을 돌아보게 하는, 그리고 힘들고 지친 마음에 위로를 주고 환상을 꿈꾸게 하는 마법과 같은 노랫소리다.
한국 정상의 연주단체 ‘앙상블오푸스’가 오는 12월 22일, 성탄을 앞둔 일요일 오후 2시에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꿈을 꾼다. 공연 타이틀을 아예 ‘꿈꾸는 오후’로 달았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리더)과 송지원,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이한나, 첼리스트 김민지와 이정란, 그리고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이 무대에 오른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네 빛~” 앙상블오푸스가 꾸는 꿈은 우리가 어린 시절 배웠던 독일 캐럴 ‘소나무’로 시작한다. 원래 이 곡의 원제인 ‘오 탄넨바움(O Tannenbaum)’은 ‘전나무’를 뜻하지만 우리 나라의 대표 수종이 ‘소나무’여서 번역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앙상블오푸스의 예술감독이자 작곡가인 류재준이 현악사중주로 편곡했다. 겨울에도 푸르른 전나무가 사랑스럽고 용기를 준다는 내용으로, 편안하고 소박한 음악이 저절로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류재준의 이 ‘캐럴 변주곡’은 선물 포장을 하나씩 풀 듯 12개의 변주곡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때로는 춤으로, 푸가로, 캐논으로, 재즈로-찾아온다. 우리가 살아왔던 열두 달도 이러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해준다.
이어 류재준의 ‘클라리넷과 현악사중주를 위한 오중주’를 연주한다. 2015년 작곡돼 서울에서 초연된 후 프랑스, 폴란드, 미국 등에서 연주됐다. 클라리넷과 현악사중주가 주도권을 놓고 다투기보다는 모든 앙상블이 어우러지는 공존과 화합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음악으로 우리의 삶에 대해 질문하고 메시지를 전했던 류재준의 작품세계가 농도 짙게 표현됐다.
이번 공연에서는 새롭게 수정된 3판의 초연이 이루어진다. 베토벤을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이 더 높은 완성도를 위해 이미 완성된 작품을 여러 번 수정하곤 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작곡가가 꿈꾸었던 ‘최후의 걸작’을 듣게 됐다.
마지막 곡 드보르자크의 ‘현악육중주(Op.48)’는 드보르자크가 밝은 미래의 꿈으로 부푼 시기에 탄생했다. 적잖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 전업 작곡가로 지낼 수 있게 된 때였고, 그리고 처음으로 외국에서 초연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이 곡은 그에게 꿈을 실현하는 작품이었다.
이러한 성장의 기회에 그는 특이하게도 여섯 개의 현악기를 위한 작품을 작곡했다. 악기가 많아지면 화음과 음향이 풍부해질 뿐만 아니라 주선율에 대응하는 ‘대선율’의 역할 또한 강조돼 더욱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든다. 그래서 브람스와 차이콥스키도 사중주곡보다 육중주곡이 더 인기가 높은데, 드보르자크가 남긴 육중주도 그들과 나란히 놓을 수 있다.
특히 드보르자크의 곡은 보헤미아의 민속적인 요소가 더해져 에너지 충만한 리듬과 삶의 현장에서 느낀 감성이 짙게 배어있어, 현악육중주의 묘미를 더욱 감각적으로 전한다.
이렇게 한국 최고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꿈의 앙상블 ‘앙상블오푸스’가 연주할 음악은 우리의 삶과 공명하고, 오늘의 삶 속에서 꿈을 나눈다.
한편 2009년 창단한 앙상블오푸스는 올해 ‘꿈꾸는 저녁’이라는 타이틀로 첫 전국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4일부터 8월 13일까지 천안·익산·제주·강릉에서 여름 공연을 개최했고, 12월 7일부터 28일까지 광주·울산·순천·함안에서 겨울 공연을 연다.
여름·겨울 공연 프로그램은 류재준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캐럴변주곡’, 모차르트의 ‘클라리넷과 현악사중주를 위한 오중주(K.581)’, 드보르자크의 ‘현악육중주(Op.48)’다.
<백브리핑> 대중가요로도 히트한 ‘소나무’...바비킴 ‘오 탄넨바움’ 샘플링
바비킴의 ‘소나무’는 1824년 에른스트 안쉬츠가 작사·작곡한 독일의 캐럴 ‘오 탄넨바움(O Tannenbaum)’를 샘플링해 만든 노래다. 연인에 대한 굳은 믿음을 전나무(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제목이 ‘소나무’로 바뀜) 푸름에 빗댄 사랑 노래였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크리스마스 캐럴로 변신했다.
바비킴은 서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가족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떠났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건 스무 살 때인 1993년.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 채 귀국했다,
캐럴 ‘소나무’는 바비킴의 청소년 시절 애창곡이기도 하다. 미국 사회에서 겪었던 동양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을 겪을 때마다 그의 마음을 잡아준 노래가 바로 ‘소나무’였다.
“두 눈을 감으면 선명해져요/ 꿈길을 오가던 푸른 그 길이/ 햇살이 살며시 내려앉으면/ 소리 없이 웃으며 불러봐요/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너/ 바람이 얘기해줬죠 잠시만 눈을 감으면/ 잊고 있던 푸른 빛을 언제나 볼 수 있다/ 많이 힘겨울 때면 눈을 감고 걸어요/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아 편한 걸까/ 세상 끝에서 만난 버려둔 내 꿈들이/ 아직 나를 떠나지 못해/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하지 않는 너/ 바람이 얘기해줬죠 잠시만 숨을 고르면/ 소중했던 사람들이 어느새 곁에 있다/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소나무(김형준·임보경 작사, 김형준 작곡, 바비킴 노래)
독특한 창법의 가수 바비킴이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디에 새로운 메시지를 담아 들려주는 ‘소나무’. 힘들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해주고 더불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노래가 됐다. MBC TV 드라마 ‘하얀 거탑’의 주제곡으로 쓰여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eunki@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