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중구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열린 한세예스24문화재단 ‘동남아시아문학총서’ 4∼6권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마리아 테레사 디존-데 베가 주한 필리핀 대사(왼쪽)가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를 쓴 미카 드 리언 작가.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필리핀에는 우수한 작가와 작품이 많은데 제 작품이 한국에 소개되는 영광을 얻어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번에 선보인 책은 사랑 이야기일 뿐 아니라 주인공 에마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현대 여성의 독립성과 자아를 탐구했습니다.”-‘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의 작가 미카 드 리언
필리핀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 미카 드 리언과 국민 작가 닉 호아킨의 소설이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14일 서울 중구 한국국제교류재단 글로벌센터에서 ‘동남아시아문학총서’ 4∼6권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동남아시아문학총서 시리즈는 한세예스24문화재단이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간 문화 교류 증진을 위해 동남아시아 각국의 문학적 정수를 모아 국내에 소개하는 사업이다.
지난 2022년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호평 받은 근현대문학 3권을 번역·출판한데 이어 이번에 닉 호아킨의 ‘배꼽 두 개인 여자’(제4권)와 ‘열대 고딕 이야기’(제5권), 그리고 미카 드 리언의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제6권)를 출간했다. 세 작품 모두 원서는 영어로 집필됐다.
미카 드 리언은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 출간이 살짝 걱정되는 점이 있었음을 내비쳤다. 그는 “필리핀 서사를 담고 있어서 전 세계에 닿았을 때 동남아 지역 밖의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면 어쩌나하고 불안한 부분이 많았다”며 “서사 속에서 모두가 공감할 키워드,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다뤘다”고 덧붙였다.
작품 집필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그는 “2022년 7월 16일부터 8월13일까지 한 달 만에 완성했다”라며 “이전에 판타지 작품을 썼는데 세계관을 만드는 게 어렵다 보니 판타지 요소가 없는 소설에 전념하고 싶어 몰입하면서 썼다”고 밝혔다.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을 소재로 해 국내 독자들이 보다 쉽게 필리핀 문학을 접할 수 있다. 필리핀 출판사를 배경으로 라이벌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그렸다.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를 번역한 허선영 번역가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한국 직장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이 작품을 통해 인간사의 보편성을 확인하고 공감하게 해주는 것이 문학의 힘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리아 테레사 디존-데 베가 주한 필리핀 대사, 미카 드 리언 작가, 백수미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왼쪽부터)이 14일 동남아시아문학총서 4∼6권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미카 드 리언은 2019년 로맨스, 역사, 판타지에 관한 에세이 ‘저를 도서 편집자로 불러주시기를 감히 청해봅니다’와 2022년 필리핀인의 정체성을 다룬 에세이 ‘필리핀 천 년의 단일 신화’로 돈 카를로스 팔랑카 기념 문학상을 수상하며 필리핀 문학계 대표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마리아 테레사 디존-데 베가 주한 필리핀 대사는 “문학 작품은 그 나라 국민과 국가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창이다”라며 “이번에 출간된 책들이 한국 독자와 학자, 예술가, 학생들이 현대 필리핀 사회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이해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리핀은 문학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요소가 굉장히 많다”라며 “한국의 구미호전처럼 필리핀 문학에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 레퍼런스가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정서적 요소가 있어 필리핀 문학이 한국에서도 어필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사랑은 전 세계의 공통적 키워드라고 덧붙였다.
마리아 대사는 미카 드 리언의 작품을 ‘강추’한 사실도 밝혔다. 그는 “필리핀 대학과 출판 업계에 의견을 물어보니 모두 미카 드 리언을 추천했다”며 “현대 필리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닉 호아킨은 필리핀 국민 예술가로 인간 본연의 복잡성을 조명하는 동시에 식민주의와 정체성, 가족과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통해 필리핀 사회의 역사, 문화, 정서를 초현실적으로 그려내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작 ‘배꼽 두 개인 여자’를 통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후 필리핀 대표 소설상인 해리스톤힐상부터 ‘필리핀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돈 카를로스 팔랑카 기념 문학상까지 수상하는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을 보유했다. 특히 1965년과 2017년 영화화된 ‘필리핀 예술가의 초상’을 비롯해 여러 작품이 현재까지도 연극과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배꼽 두 개인 여자’는 필리핀의 사회적 변화와 그에 따른 정서, 문화 등을 독창적인 서사로 그려낸 일곱 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됐다. ‘삼대’ ‘죽어가는 탕아의 전설’ ‘성 실베스트레의 미사’ ‘하지’ ‘메이데이 전야’ ‘배꼽 두 개인 여자’ ‘의장대’ 등이 수록됐다. 대표 단편 소설인 ‘배꼽 두 개인 여자’는 배꼽이 두 개임을 주장하며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혼란과 특별함을 동시에 느끼는 주인공 콘차 비달이 의사이자 신부인 페페 몬손과 나누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콘차 비달이라는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필리핀이 겪은 역사적 상흔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해 필리핀 식민지 역사와 독립 이후의 정체성 혼란을 엿볼 수 있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필리핀 대표작가 작품 3편을 엮은 동남아시아문학총서 4∼6권을 출간했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열대 고딕 이야기’는 닉 호아킨이 1950~1960년대에 집필한 희곡과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필리핀 예술가의 초상’부터 ‘제로니마 부인’ ‘멜기세덱의 반차’ ‘칸디도의 종말’ 등의 작품들은 필리핀의 사회와 문화를 관통하는 정서를 문학적으로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돈 카를로스 팔랑카 기념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제로니마 부인’은 여성 주인공 제로니마가 필리핀의 사회적·문화적 억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냈다. 단순한 여성의 이야기를 넘어 필리핀의 사회적 구조와 변화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추천사를 쓴 지나 아포스톨 작가는 “닉 호아킨의 다언어적 문체와 식민지 역사를 해부하는 통찰력으로 필리핀의 정체성을 탐구한다”며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필리핀 근현대문학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백수미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은 “필리핀의 역사적 서사부터 현대적인 감성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작품으로 구성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며 “이번 필리핀 동남아시아문학총서를 통해 국내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필리핀의 문화와 고유의 역사를 깊이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도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 플랫폼으로서, 더욱 폭넓은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국경을 넘어선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지난 2014년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사회공헌 재단이다. 대학생 해외 봉사단, 국제 문화 교류전, 유학생 장학 사업 등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 간 문화적 교류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