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아트 노마드로 칭하는 함혜리 작가가 ‘프랑스, 예술로 여행하기’를 출간했다. ⓒ파람북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옅은 사암색의 건물에 나무로 된 육중한 문을 들어서면 리셉션이 나오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전시공간이다. 전시공간의 초입에서 만나는 콘크리트 구조물은 노출 콘크리트를 매끈하게 갈아 만든 것이 딱 보니 안도의 작품이다. 안도와 이우환의 협업 작품으로 소라처럼 속으로 뱅글뱅글 돌아서 들어가는데 가장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하늘을 담은 영상이 있다. 돌 그림자에 영상을 비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이다.”(본문 256쪽)
남프랑스의 강렬한 태양은 와인을 자라게 하지만, 그 햇살의 유혹에 이끌려온 미술가들의 회화도 낳았다.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는 휴양지로 안성맞춤이니 예술가들이 중년이 되면 프로방스로 몰려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로마 시대부터 이어지는 여러 역사적 건축물들이 도처에 즐비해 역사 테마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남프랑스를 대표하는 곳이 ‘고흐의 도시’로 유명한 아를이다. ‘밤의 카페 테라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등의 아름다운 풍경화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장소다. 놀라운 점은 여기에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미술관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아를 이우환 미술관’이다.
16~18세기에 지어진 베르농 저택을 개조해 지난 2022년 4월에 오픈했다. 이우환과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공간 교체작업을 맡았다. 안도는 일본 나오시마에 있는 이우환 공간도 설계했다. 두 사람의 찐우정이 빛난다.
1층 공간에는 천연재료인 돌과 철판, 유리를 다양한 형태로 설치한 ‘관계항’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2층에는 평면 작업들이 시기별로 전시돼 있다. 이국땅에서 K컬처의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핫 스팟이다. 이쯤되면 아를은 ‘이우환의 도시’이기도 하다. 뿌듯하다. 잠시 잊고 있었던 애국심마저 샘솟게 한다.
아를에는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루마 아를’이라는 초현실적 건물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쓸모없어진 프랑스국영철도공사의 기차 생산기지를 탈바꿈 시켰다. 건설 당시에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비난이 빗발치기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엿한 아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옛것과 새것,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며 관광객을 맞이하는 자세는 존경스럽다.
함혜리 작가는 “프랑스는 예술이다!”를 목청껏 외친다. 프랑스 유학생 출신으로 파리 특파원으로 활동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프랑스 여행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그가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프랑스 곳곳을 둘러보는 책을 출간했다. ‘프랑스, 예술로 여행하기’(파람북·392쪽·2만3800원)다.
스스로 ‘아트 노마드’라고 호칭하는 함혜리 작가는 독자들의 예술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뮤즈 역할을 한다. 세계 문화의 수도 파리(1장), 수많은 명작의 배경을 이루었던 남프랑스(2장), 건축예술의 경지를 보여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3장)을 기본 골격으로 삼아 세밀하게 살을 덧붙였다. 특히 아를의 이우환 미술관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플레이스를 두루 다루었다.
1장 파리 여행의 출발은 단연 미술관이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퐁피두 센터 등에서 주로 19세기~20세기 초 회화작품을 감상하는 코스는 ‘필수’다. 세계 예술의 수도 파리에 모였던 여러 예술가들의 뒷이야기와 창작 비화들이 펼쳐진다. 독자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도판들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다음은 에펠탑과 개선문, 산책자들을 유혹하는 숨은 장소들인 공원, 도서관, 생제르맹의 카페들로 이어지는 파리 시내 탐방기다. 개선문의 포장 설치 미술인 ‘개선문, 포장’의 소개가 인상적이다. 파리의 예술 산책 코스로는 재개장된 노트르담 성당을 포함하는 센강 좌안, 죄드폼 국립미술관이 있는 센강 우안, 여러 소품점과 티 전문점이 있는 마레 지구, 소설 ‘다빈치 코드’의 무대가 된 생쉴피스 성당이 위치한 뤽상부르 일대를 추천한다.
함 작가의 파리 투어에서 독특한 요소로 부각되는 장소는 루이뷔통, 카르티에 등의 럭셔리 브랜드 미술관이다. 언뜻 말만 들으면 미술관에 명품 가방이나 파티 드레스 등이 진열돼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이것은 어엿한, 그리고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수준의 현대미술 전시장이다. 미술관 건물의 건축도 그 안의 컬렉션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맛을 선사한다. 안도 다다오 등 유명 건축가들이 앞장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공간을 구현해냈다.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 따스한 햇살의 남프랑스 이야기는 2장을 수놓는다. 고흐의 도시인 아를, 세잔의 도시인 엑상프로방스, 샤갈과 마티스의 생폴드방스, 피카소의 앙티브, 툴루즈-로트레크의 알비에서 화가들의 일대기와 그들에게 모티프를 선사했던 낭만적인 도시를 순례한다.
성채 도시 카르카손, 성모의 고장 루르드, 파리에 버금가는 문화도시 보르도와 마르세유도 빼놓을 수 없는 프랑스 예술 기행의 경유지다. 최근 국내 방송 여행 관련 프로그램에서 단골로 등장하고 있는 꿈과 낭만의 여행지이자, 수많은 명작의 무대가 되었으며 골목과 거리에서 예술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지역이 바로 남프랑스다.
3장은 르코르뷔지에 예술 기행이다. 르코르뷔지에의 삶, 예술 철학, 그리고 그가 남긴 현대의 상징격인 여러 건축물을 돌아본다. 빌라 사부아, 롱샹 성당, 유니테 다비타숑 등에는 오늘날 우리가 ‘힙하다’라고 생각하는 여러 건축적 요소들이 이미 구현돼 있다.
도시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피르미니 르코르뷔지에 건축단지, 절제된 경건함을 드러내는 라투레트 수도원, 후기 건축의 대표작인 롱샹 성당에 이르면 혁신적 디자인과 숭고한 아름다움이라는, 얼핏 상반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두 개념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몇 년에 걸친 함 작가의 예술적 여행을 기록한 것이다. 프랑스를 동경해온 사람이라면, 게다가 예술 애호가라면 알아야 할 대표적인 미술관과 유적지들을 추려 정리했다. 작품들을 찾아다니며 느꼈던 도시와 거리의 인상적인 풍경과 미술관에서 느끼고 마주쳤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각 도시가 자랑하는 주요 문화유산인 건축물과 미술관을 중심으로 예술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도시를 이루는 문화와 역사 전반을 건축과 예술, 예술가들을 통해 만나게 된다. 함 작가는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폴 발레리는 “바람이 분다...살아야겠다!”라고 썼다.
나라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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