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이 2025년 선택한 해외 초연작 ‘그의 어머니’가 4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배우 김선영이 7년만에 연극 컴백하는 작품이다. ⓒ국립극단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하얀 눈으로 둘러싸인 캐나다 토론토의 한 가정집. 브렌다의 큰 아들 매튜는 아직 10대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세 여자를 강간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어머니는 2층 방에 매튜를 감금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여덟 살의 작은 아들 제이슨은 학교 가기를 거부한다. 브렌다는 아들의 형량을 낮추려고 판사에게 청소년범죄로 적용해 판결을 내려달라고 간청한다. 판사의 선고는 5일 안에 결정된다. 그 사이 모든 언론과 매체는 어머니 브렌다에게 집중된다. 신문의 첫 페이지는 온통 브렌다의 얼굴로 도배돼 있다. 변호사는 말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매튜가 아니라 그의 어미니, 바로 당신이다”라고.

국립극단이 2025년 선택한 해외 초연작 ‘그의 어머니(Mother of Him)’가 4월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그의 어머니’는 영국 유명 극작가 에반 플레이시의 작품이다. 번역은 이인수. 아들의 범죄 형량을 줄이려는 어머니의 맹목적인 모성애를 다루고 있다. 2010년 초연 후 캐나다 극작가상, 영국 크로스 어워드 신작 희곡상을 수상했다.

에반 플레이시는 영국문학왕립학회 문학상, 영국 브라이언웨이 어워드, 영국작가조합 청소년극상,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청소년연극상 등의 수상 경력에 빛나는 작가다. 특히 ‘감옥에서 태어난 아이들’ ‘섹스팅’ ‘트랜스젠더’ 등 비인격화된 상황 속 포착되는 도덕적 딜레마와 윤리적 대립을 그려내는데 탁월하다. 작가의 희곡은 1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에반 플레이시의 장편 희곡 데뷔작이다. 인간 본능의 직시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가치 갈등을 첨예하게 대립시키는 동시에 인물의 치열한 심리적 묘사가 돋보인다. 아들의 범죄 형량을 감량하려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정적 억압과 폭발을 수차례 오가는 인간 본능에 대한 사색을 드러내 보인다.

“평범치 않은 도덕적 갈등 드라마 속에 일어나는 고도의 예술적 기교”(타임스) “감히 단정하기 어려운 질문의 영역으로 관객을 이끄는 다층적인 극작술”(가디언) 등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국립극단이 2025년 선택한 해외 초연작 ‘그의 어머니’가 4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배우 김선영이 7년만에 연극 컴백하는 작품이다. ⓒ국립극단 제공


어머니라는 역할론의 외피, 그리고 무한한 모성애에 균열을 내고 드러난 인간 본성과 자기 보호 본능을 배우 김선영(브렌다 역)이 연기한다. 김선영은 캐릭터에 깊게 몰입해 인물 그 자체가 되는 물아일체한 연기로 TV와 스크린의 대세 배우로 당당히 자리 잡으며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굵직한 연기상 수상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왔다.

1995년 연극 ‘연극이 끝난 후에’로 데뷔한 김선영은 무대 연기에 있어서도 데뷔 30년 차의 노련한 배우다. 특히 직접 극단을 이끌고 연극 제작자로 나설 만큼 연극에 애정이 깊다. 제작자가 아닌 배우로서는 2018년 ‘낫심’ 이후 7년 만에 ‘그의 어머니’로 연극 무대에 돌아온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일타스캔들’, 영화 ‘세자매’ 등에서 인물 성격이 각각 다른 엄마 역을 맡으며 스타덤에 오른 필모그래피만큼 김선영이 무대 위에서 그려낼 또 다른 엄마의 모습에 관심이 집중된다. 브렌다는 말한다. “내 집 앞에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것들! 그냥 굶주린 짐승 같은 것들. 도대체 뭘 원하는데, 뭘 던져줘야 사라질 거냐고?”라고.

좋아하는 배우를 답할 때면 항상 김선영을 빼놓지 않는 류주연이 ‘그의 어머니’ 연출을 맡는다. 그는 극단 산수유 대표로 인간 군상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고, ‘경남 창녕군 길곡면’ ‘기묘여행’ ‘12인의 성난 사람들’ ‘1945’ 등을 연출했다. 보편적이고 내밀한 감정 묘사와 층위들로 시대성을 명민하게 담아내며 제47회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 제4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 최우수상, 제37회 영희연극상, 제24회 김상열연극상을 수상했다.

류주연 연출은 ‘그의 어머니’에 대해 “예상치 못한 극적 전개와 흐름이 의외성을 만들어 내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무대 연출과 배우들의 들어찬 연기 밀도로 죄어오는 폐쇄성, 그리고 그 속에서 상승하는 인간의 부정적이고 불편한 감정들을 치밀하게 그려내고자 한다”며 “궁지에 몰렸을 때 드러나는 한 사람, 어쩌면 우리 모두의 본능적인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관람하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국립극단이 2025년 선택한 해외 초연작 ‘그의 어머니’가 4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배우 김선영이 7년만에 연극 컴백하는 작품이다. ⓒ국립극단 제공


연출은 마치 위층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 브렌다에게 속박 같은 책임감과 무게감으로, 아들 매튜에게는 밖으로 나설 수 없는 감옥 같은 구속의 공간으로, 극이 말하고자 하는 숨 막히는 봉쇄의 표상을 무대 위에 자리 잡은 이층집으로 그려낸다. 집 안에 똬리를 튼 먹구름은 그 그림자의 깊이를 점점 자라내어 모두를 집어삼키는 괴물이 된다. 자식이 한 짓은 미워할 수 있으나 어떻게 자식을 미워할 수 있냐며 “자식의 저주”를 외치는 브렌다는 그 집과 자신을 둘러싼 ‘굶주린 짐승들’에게 무엇을 던져줄 것인가?

배우 최호재(매튜 역)와 최자운(제이슨 역)이 두 아들을 연기한다. 브렌다의 친구이자 변호사로서 갈등을 점화하는 로버트 역은 2025-2026년 국립극단 시즌단원이자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는 단정한 연기력을 보유한 홍선우가 맡는다. 스크린과 무대를 오가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 김용준은 아버지 ‘스티븐’으로 분해 함께한다. 2024년 국립극단 시즌단원으로 관객들을 웃고 울리며 진정성을 담은 연기를 전해왔던 이다혜(제시카 역)와 2025-2026년 국립극단 시즌단원이자 노련한 연기력으로 연극계의 사랑을 받는 김시영(테스 역)도 합류한다.

‘그의 어머니’ 4월 2일부터 19일까지 이어진다. 4월 11일부터 13일까지는 소외 없는 관람 기회 제공과 장벽 없는 연극 문화 향유를 목표로 무대모형 터치투어를 비롯해 음성해설, 한국어수어통역, 한글자막해설, 이동지원을 제공하는 접근성 회차를 운영한다. 4월 6일 공연 종료 후에는 류주연 연출과 배우 김선영(브렌다 역), 김용준(스티븐 역)이 참석하는 예술가와의 대화가 예정돼 있다.

한편 국립극단은 2018년 J.T 로저스의 ‘오슬로’부터 2024년 로렌 군더슨의 ‘사일런트 스카이’까지 매해 해외 우수 현대 희곡을 국내 무대에 처음 선보여 왔다. 국립극단의 해외 신작 시리즈는 객석 매진과 높은 관객 호응도로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정치, 노동, 젠더, 위계폭력, 인종차별 등 세계 인구가 집중하는 동시대적 주제로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연극적 담론을 형성해 온 국립극단이 2025년 선택한 해외 초연작 ‘그의 어머니’는 국립극단과 국립극장, 인터파크 홈페이지에서 예매 가능하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