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섭’ 역의 박성웅과 ‘지희’ 역의 이수경이 연극 ‘랑데부’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무대 중앙에 설치한 트레드밀(러닝머신)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각자 방백(배우가 대사를 할 때 상대배우는 못 듣고 관객만 들을 수 있게 말하는 것)을 할 때는 트레드밀이 움직여 두 사람을 멀리 떨어뜨렸다. 그러다 서로의 방향으로 걸어 갈 때는 트레드밀이 역방향으로 작동해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두 인물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과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줘 극의 몰입도를 높인 것. 거기에 더해 공연은 100분 동안 한 번의 퇴장도 없이 단 두 명이 이끌어 가며 집중도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예술의전당이 더그레이트쇼·옐로밤과 공동제작한 연극 ‘랑데부’가 지난 4월 5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해 관객의 뜨거운 호응 속에 순항하고 있다.
14일 공개된 공연 사진은 무대 위에서 포착된 배우들의 감정, 눈빛, 움직임 등 작품의 섬세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며 관객의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랑데부(rendez-vou)’는 프랑스어다. 특정한 시각과 장소를 정해 즐기는 밀회, 특히 남녀 간의 만남을 이른다. 또한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이 우주 공간에서 만나는 일, 또는 군대나 배가 집결하는 장소나 지점을 뜻하기도 한다. 관객들과의 랑데부에도 성공한 ‘랑데부’다.
●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2인극...두 남녀의 깊은 감정선 공감
‘태섭’ 역의 박건형과 ‘지희’ 역의 범도하가 연극 ‘랑데부’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랑데부’는 로켓 개발에 몰두하는 과학자 ‘태섭’과 춤을 통해 자유를 찾고자 하는 짜장면집 딸 ‘지희’가 우연한 만남을 통해 각자의 상처와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2인극이다.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만의 법칙에 스스로 갇혀버린 태섭 역은 박성웅·박건형·최민호가 맡았다.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났던 여정 끝에 가장 아팠던 장소로 돌아오게 된 지희 역은 이수경·범도하·김하리가 연기한다.
총 6명의 배우가 고정된 세 페어로 무대에 오르며, 각 페어만의 해석과 분위기로 인물의 심리를 깊이 있게 표현해내며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극을 쓰고 연출을 맡은 Yossef K. 김정한은 “연극 ‘랑데부’는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상대를 어떻게 품고 사랑할 수 있는지 뚜렷하게 보여주기보다는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과정 속의 인물을 담은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번 작품은 2인극으로 배우들의 영혼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무대다”라며 “배우들 각자의 표현 방식에 따라 세 개의 페어로 나누어 각기 다른 매력을 살렸다. 배우의 독특함과 고유성이 돋보일 수 있도록 각각의 성향에 따라서 다르게 연출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혁신적 무대디자인
‘태섭’ 역의 최민호와 ‘지희’ 역의 김하리가 연극 ‘랑데부’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배우들은 100분간 중간 퇴장 없이 무대를 가득 채우며, 각자의 캐릭터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방백으로 풀어내 관객들로 하여금 인물의 속마음을 엿보는 듯한 몰입을 유도한다.
특히 두 주인공이 마치 우주 속을 떠다니듯 서로에게 닿을 듯 말 듯 다가갔다 멀어지며 춤을 추는 장면은 주목할 만하다. 대사 없이도 몸짓과 움직임, 눈빛만으로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랑데부’의 무대는 이채롭다. 폭 2.5m, 길이 17m의 긴 무대를 중심에 두고 객석을 양옆에 배치했다. 관객은 무대 양옆에서 공연을 관람하며, 마치 펜싱 경기를 보듯 배우를 마주하게 된다. 또한 중앙에 설치된 움직이는 트레드밀 장치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캄캄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수십 개의 조명 장치로 서정적으로 표현한 부분도 인상 깊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한 두 인물이 등을 맞대고 앉아 별을 바라보는 순간은 작품의 정서를 응축해 보여주는 장면으로 많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중력이라는 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며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랑데부’는 오는 5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며 전석 7만원이다. 예매는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와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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