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 오는 6월 국내 초연된다. 거대한 과일바구니를 연상시키는 무대와 친근한 한국간판도 등장한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왕은 왕자의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파티를 연다. 어릿광대 트루팔디노는 왕자를 웃기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마녀 파타 모르가나와 실랑이를 벌이다 그를 내동댕이친다. 이를 본 왕자가 웃음을 터트린다. 모욕감을 느낀 마녀는 왕자에게 세 개의 오렌지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건다.
왕자와 어릿광대는 오렌지를 찾아 떠나고, 선한 마법사 첼리오는 그들에게 물가에서 오렌지를 깔 것을 충고해 준다. 하지만 심한 목마름을 느낀 트루팔디노는 첼리오의 조언을 무시한 채 오렌지를 깐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오렌지에서 공주들이 나오지만, 이들은 갈증을 호소하다 죽는다.
마지막 오렌지에서 나온 니네트 공주만이 물 한 모금에 살아남고 왕자와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결혼을 서두르지만 마녀는 결혼을 훼방 놓는다. 하지만 첼리오의 마법 덕분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축복 속에 결혼한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다채로움의 끝판’을 보여주는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 국내 초연된다. 국립오페라단은 카를로 고치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작곡한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을 오는 6월 26일(목)부터 6월29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다.
독특한 환상과 날카로운 풍자가 어우러진 20세기 명작인 이번 작품은 콘서트 형식이 아닌 오페라 전막으로는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오페라 애호가들뿐 아니라 새로운 무대를 찾는 젊은 관객층의 시선을 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메리트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 편의 오페라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장군 레앙드르와 왕의 조카인 클라리스 공주가 꾸미는 음모에서는 권력 드라마를 맛볼 수 있으며, 왕자와 니네트 공주 사이에서는 로맨틱 스토리를 느낄 수 있다. 또 왕자와 트루팔디노의 여정에서는 로드 무비 스타일의 오페라 부파를 감상할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매력을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리듬감과 기발한 멜로디로 풀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음악에서는 뒤뚱거리는 듯한 분위기의 행진곡이 유명하며, 특히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사랑하는 곡이다.
● 드문 오페라에 특화 펠릭스 크리거 지휘...아이디어 넘치는 연출 로렌조 피오로니
제작 라인업이 파워풀하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한여름 밤의 꿈’ 지휘를 맡아 현대 오페라의 매력을 관객에게 소개해 주었던 지휘자 펠릭스 크리거가 다시 한 번 지휘봉을 잡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펠릭스 크리거는 특히 무대에서 자주 찾을 수 없는 드문 오페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어 이번 공연에 기대가 모인다.
연출은 만하임 국립극장, 루체른 극장, 베를린 국립극장 등에서 ‘보리스 고두노프’ ‘이도메니오’ 등을 연출한 로렌조 피오로니가 맡았다. 2020년 선보인 ‘이도메니오’는 “그를 부른다면 경악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경악의 순간을 넘기고 나면 피오로니만의 아이디어로 가득 찬 세계가 펼쳐진다”라는 평을 얻기도 했다. 또 그는 2012년, 2013년 독일 최고 권위의 극예술상인 ‘파우스트상’ 후보에 올랐으며 2017년에는 ‘그리스 수난’으로 오스트리아 음악극상에서 최우수 오페라작품상, 최우수 연출상을 수상했다.
● 무대 위에 펼쳐지는 상상력의 과일 바구니...한국거리에서 영감 받은 디자인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이 오는 6월 국내 초연된다. 거대한 과일바구니를 연상시키는 무대와 친근한 한국간판도 등장한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이번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의 무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들려주는 ‘극장 기계’라는 콘셉트로 디자인됐다. 움직이는 무대장치, 커튼, 자동차 등 연극적인 수단과 동시에 현실적인 요소들이 무대 위에 펼쳐져 환상적이고도 몽환적인 여정을 나타낼 예정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거대한 과일바구니를 연상시키는 무대다. 과일과 채소로 초상화를 그렸던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독특한 작품에서 영감 받아 과잉과 환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또한 무대에서는 친숙한 한국 간판을 볼 수도 있다.
파울 졸러 무대 디자이너는 “한국의 거리는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 현대적이고 생생한 에너지를 가진 공간이다. 이런 점이 서로 다른 세계, 문화 간의 교차,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상징할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거리의 이미지가 무대 위에 옮겨갔을 때 어떤 낯선 감각을 느끼게 할지 기대된다. 의상 역시 작품 특유의 동화적 매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참신하고도 독특한 느낌의 디자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 독일 중심으로 K클래식을 이끌어온 테너 김영우·신현식 주역 맡아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을 위해 국내외 실력파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왕자 역은 테너 김영우와 신현식이 맡는다. 김영우는 독일 퀼른 오페라극장 솔리스트로, 신현식은 독일 로스톡 시립극장에서 솔리스로 활동하며 독일을 기점으로 K클래식을 이끌어온 테너들이다.
클라리스 공주 역엔 도이치 오퍼 베를린 장학생으로 활동을 시작해 현재 국립오페라단과 도이치 오퍼 베를린 교류 성악가로 선정된 메조소프라노 카리스 터커가 선보인다. 카리스는 풍부하고 파워풀한 보이스가 인상적인 드라마틱 메조소프라노로 한국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파타 모르가나 역엔 풍부한 성량과 섬세한 음악성으로 사랑받고 있는 소프라노 박세영과 독보적인 음색으로 국립오페라단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줄리에타 역을 선보여 주목받았던 소프라노 오예은이 함께 한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