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해녀들과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엔들링스’가 20일 국내 초연됐다. 오는 6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한국의 작은 섬 ‘아일랜드오브만재’에는 할머니 세 사람이 살고 있다. 이들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해녀들이다. 한솔(홍윤희 분), 고민(박옥출 분), 순자(이미라 분) 할머니는 자식들을 육지로 내보내고, 남편도 없이 서로를 의지해가며 물질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구 반대편 ‘맨하탄섬’에는 한국계 캐나다인 극작가 하영(백소정 분)이 산다. 꿈을 찾아 미국 뉴욕으로 건너온 그는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 희곡을 쓰고 있다. 하영은 자기 글에 대한 확고한 고집이 있다. “연극을 위해 내 피부색을 팔고 싶지 않다”며, 자기 이야기가 아닌 백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쓴다.

해녀들은 ‘이곳(아일랜드오브만재)’을 떠나지 않고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살아왔지만 그 삶을 이어갈 후계자는 없다. 하영은 ‘이곳(맨하탄섬)’으로 떠나왔지만 미국과 한국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흔들리는 삶이 불안하다.

세상의 마지막 해녀들과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엔들링스’가 20일 국내 초연됐다. 오는 6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세상의 마지막 해녀들과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엔들링스’가 20일 국내 초연됐다. 오는 6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세상의 마지막 해녀들과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가 5월 20일 무대에 올랐다. 두산아트센터는 ‘두산인문극장 2025: 지역’ 두 번째 공연으로 연극 ‘엔들링스 (Endlings)’를 오는 6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한다. 한국 초연이다. ‘엔들링’은 한 종(種)의 마지막 생존 개체를 의미한다. 이 작품은 개막 전부터 전석 매진되며 관객들의 높은 기대를 받았다.

지역이 사라질 때 우리는 무엇을 잃을까? 지역이 변하면 나의 정체성도 변할까? 끊임없는 이동이 일상적인 요즘, ‘엔들링스’는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엔들링스’는 인간과 지역의 정체성이 어떻게 충돌하고 중첩되며 변화하는지, 그 상호작용으로 인해 우리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여준다.

‘엔들링스’는 2024년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각본상 최종 후보에 오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의 감독인 셀린 송이 쓴 희곡이다. 12세 때 실제로 캐나다로 이민을 온 한국계 캐나다인 극작가인 셀린 송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미국 오프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호평을 받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상의 마지막 해녀들과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엔들링스’가 20일 국내 초연됐다. 오는 6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세상의 마지막 해녀들과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엔들링스’가 20일 국내 초연됐다. 오는 6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한국 공연은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로 2022년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을 수상한 이래은이 연출을 맡아 지역성과 개인의 정체성이 얽힌 서사를 밀도 있게 풀어냈다.

홍윤희(한솔 역), 박옥출(고민 역), 이미라(순자 역), 백소정(하영 역), 이훤(백인 남편/백인 무대감독 역), 경지은(백인 무대감독 역), 양대은(백인 무대감독 역)이 출연한다.

극 중 극작가의 이름 하영은 실제 셀린 송의 한국 이름이다. 목에 ‘백인 남편 겸 극작가’라는 팻말을 걸고 등장하는 하영의 남편처럼 실제 셀린 송의 남편도 백인 극작가다.

이래은 연출가는 “이 희곡은 사유의 틈을 주지 않는다. 생존의 감각이 잔뜩 켜진 이가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한국계 미국 이민자 하영의 자기모순에 대한 고백이자 생존을 위한 선언이다”라고 말했다.

희곡을 쓴 셀린 송은 2019년 초연 당시 쓴 글에서 “이 연극은 내게 가장 소중하다. 내게 그저 나로서 존재하는 법을 알려줬으니까. 이 연극은 나 자신이 되는 지혜를 줬다”라고 밝혔다.

세상의 마지막 해녀들과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엔들링스’가 20일 국내 초연됐다. 오는 6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세상의 마지막 해녀들과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엔들링스’가 20일 국내 초연됐다. 오는 6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연극은 춤과 노래가 뒤섞여 경쾌하게 진행된다. 해녀 할머니들은 무대를 휘어잡으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음악은 제주 해녀들의 노래 ‘이어도사나’부터 21세기 폭스사의 영화 오프닝 음악, 그리고 제이지, 켄드릭 라마, 시아 등의 노래까지 한국과 미국의 노래를 다채롭게 섞어 분위기를 살렸다.

‘엔들링스’는 관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공연 중 대사 및 소리정보 등을 한글자막해설을 통해 전달한다.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는 음향을 설명할 때는 ‘뽀글’이라는 단어가 물방울 모양으로 실제 뽀글거린다.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다. 관람 전 공연 무대를 직접 만져보며 감각할 수 있는 터치투어를 3회 진행한다. 작품 소개 및 시각적 요소인 의상, 소품, 조명 등을 관람 전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음성 및 텍스트 형식의 소개자료도 제공된다.

공연 예매는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와 NOL 티켓(인터파크)에서 가능하다. 장애인 관객, 디지털 기기 이용이 어려운 관객 등 온라인 예매가 어려운 관객에 한 해 접근성 매니저를 통해 음성 통화 혹은 문자로 예매할 수 있다. 티켓 가격은 정가 3만5000원, 두산아트센터 회원 2민8000원, 13-24세/60세 이상/장애인/국가유공자 1만7500원이다.

세상의 마지막 해녀들과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엔들링스’가 20일 국내 초연됐다. 오는 6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세상의 마지막 해녀들과 극작가 하영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엔들링스’가 20일 국내 초연됐다. 오는 6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한편 ‘엔들링스’는 두산아트센터, 대전예술의전당, 제주아트센터가 협력해 공동제작하며 서울, 대전, 제주 순으로 지역 투어를 진행한다. 이번 작품을 통해 ‘지역’이라는 주제를 동시대적 관점으로 탐구하며 창작과 유통을 함께 한다.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의 초연을 마친 후에는 6월 13일부터 6월 14일까지 대전예술의전당, 6월 27일부터 6월 28일까지 제주아트센터에서 각 지역의 관객들과 만난다.

2013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두산인문극장은 과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로 다양한 분야의 관점으로 동시대를 살펴보는 프로그램이다. 빅 히스토리: 빅뱅에서 빅데이터까지, 예외, 모험, 갈등, 이타주의자, 아파트, 푸드, 공정, Age(나이, 세대, 시대), 권리 등 매년 다른 주제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함께 고민해왔다. 올해는 ‘지역(LOCAL)’을 주제로 공연 3편, 전시 1편, 강연 8회를 진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