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조수미가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코망되르를 공개하고 있다. ⓒSMI엔터테인먼트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저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광입니다.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이렇게 걸고 나왔습니다.”
16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 소프라노 조수미의 목이 유난히 반짝였다. 큼지막한 초록색 꽃 모양의 훈장을 목에 건 채 등장했다. 지난달 프랑스 정부로부터 받은 최고 등급(코망되르)의 문화예술공로훈장이다.
문화예술공로훈장은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탁월한 창작 활동을 펼치거나 프랑스 문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된다. 슈발리에, 오피시에, 코망되르 세 등급으로 나뉘며, 이 중 코망되르가 최고 등급이다. 코망되르를 받은 한국인은 2002년 김정옥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2011년 지휘자 정명훈에 이어 그가 세 번째다.
조수미는 이날 오페라 콘서트 ‘더 매직, 조수미 & 위너스(The Magic, Sumi Jo & Winners)’ 개최를 위해 열린 간담회에서 수훈 소감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SMI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국제무대 데뷔 후 40년간 제가 걸어온 길이 저 혼자만의 길이 아니었다”며 “저의 루트(뿌리)를 잊어본 적이 없고, 힘든 일이 있으면 뭉치는 게 매력인 한국인으로서 메달을 목에 자랑스럽게 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애국심 충만한 조수미다.
이어 “첫 솔로 앨범이 프랑스 오페라 아리아를 모은 음반이었고, 그동안 수많은 프랑스 오페라·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등 프랑스에 공을 많이 들여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면서도 “프랑스에서 문화훈장을 받는 것은 엄청난 일이어서 믿을 수가 없었다”고 상기된 표정을 드러냈다. “내년이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여서 외교 사절로서 열심히 일할 생각이다”라고 각오도 밝혔다. 그러면서 살짝 푸대접 받았던 지난 40년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1983년에 처음 유학하러 가서 3∼4년간 이탈리아에서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제가 막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해외에 돌아다니기 시작할 때는 한국 여권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남한인지, 북한인지 확인하느라 항상 잡혀 있었고 저 때문에 비행기 출발이 딜레이되기도 했어요. 그런 거를 겪다 보니 대한민국이 더 잘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수미는 오는 19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시작으로 21일 성남아트센터,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24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더 매직, 조수미 & 위너스’ 콘서트를 연다. 지난해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입상한 차세대 성악가들과 함께하는 공연이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더 매직, 조수미 & 위너스’ 콘서트 출연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줄리엣 타키노, 지하오 리, 조수미, 조르주 비르반, 이기업. ⓒSMI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수미 콩쿠르는 지난해 프랑스 중부 루아르 지방에서 처음 개최됐다. 우리나라 성악가의 이름을 딴 첫 국제 성악 콩쿠르다. 1회 콩쿠르에 전 세계 15개국에서 500명이 지원했다. 2회 콩쿠르는 내년에 열린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도 조수미 콩쿠르는 영원하도록 만들어 놓을 것이다”라고 했다.
1등을 차지한 중국 출신 바리톤 지하오 리를 비롯해 루마니아 출신 테너 조르주 비르반(2등), 한국인 테너 이기업(3등), 프랑스 소프라노 줄리엣 타키노(특별상)가 조수미와 함께 무대에 올라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준다. 조수미가 ‘조수미 키즈들’과 함께하는 공연이다.
“이탈리아 유학 당시 생활고에 찌든 고학생이었기에 콩쿠르 상금이 탐났어요. 다행히 7개 대회에서 입상하면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을 수 있었죠. 하지만 상금을 받은 뒤엔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더라고요. 정말 힘들었어요. 이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여러 국제 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나 같으면 이렇게 도와줄 텐데’ 같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세계에서 커리어를 쌓아봐서 알잖아요. 절대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거든요. 앞으로도 음악가로서의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책임감을 지닌 후배들을 온 마음 다해 끌어주고 싶어요.”
그러면서 조수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콩쿠르에 명확한 기준이 있음을 강조했다, “노래를 잘해서 1, 2, 3등 순위를 매기는 콩쿠르가 아니다”라며 “노래는 기본으로 잘하면서 세계를 음악으로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생각, 언어와 문화에 대한 철저한 이해심 등 한마디로 준비된 스타를 찾는 대회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제가 커리어가 있는 아티스트지만 영아티스트들과 함께 연주할 때 더 많이 배운다”고 했다. 월드 클래스의 품격이 느껴지는 멘트다. 그러면서 “젊은 예술가들이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신경 써주는 게 제 역할이다”라며 “같이 노래하면서 이들을 알리고 기회를 주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이번 공연으로 스타 탄생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더 매직, 조수미 & 위너스’ 콘서트 출연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소프라노 줄리엣 타키노, 바리톤 지하오 리, 지휘자 최영선, 소프라노 조수미, 테너 조르주 비르반, 테너 이기업. ⓒSMI엔터테인먼트 제공
간담회 자리에 함께한 콩쿠르 입상자들은 조수미와 함께 서는 무대에 들뜬 감정을 드러냈다. 테너 이기업은 “10년 전 군악대에 있을 때 조수미 선생님이 오셔서 합창을 같이했다. 그때 마음속으로 선생님과 무대에 함께 서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꿈이 이루어졌다. 콩쿠르를 통해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스럽다”고 했다.
조수미는 데뷔 40주년을 맞는 내년 ‘조수미 페스티벌’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창(唱)을 비롯해 K팝, 뮤지컬 등 모든 장르의 노래를 선보이는 축제가 기본 콘셉트다. 그는 “제가 받은 사랑을 대한민국에 돌려주고 싶고 그것은 음악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며 “음악 축제를 만드는 게 제 꿈이었다. 그것을 내년에 꼭 해보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다.
조수미는 내년 봄 즈음 음반도 선보일 예정이다. 드라마 ‘명성황후’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나 가거든’, 2002 한일 월드컵 응원가로 유명한 ‘챔피언’ 같이 대중이 사랑하는 곡도 실을 예정이다. 그는 “우리나라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여러분과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이다”라며 “많은 분에게 클래식이 아닌 다른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은 게 제 욕심이다”라고 했다.
조수미는 스스로를 ‘일 중독자’라고 표현했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원동력을 묻자 “싱글(독신)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재치 여왕이다.
“일하는 게 재미있어요. 외로움과 고독이 어깨를 누르다가도 일과 관련된 이메일을 받으면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어요. 남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할 때 굉장히 기뻐요. 제가 걸어온 길에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도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에너지가 많습니다. 굉장히 활발하고 웬만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일이지만 재미가 있으면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에요. 아마 활동이 계속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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