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경쾌 발랄 94초...조성진 손끝서 ‘17세 모차르트’ 되살아났다

248년간 잠자던 미공개곡 ‘알레그로 D장조’ 세계 최초 연주 감동

민병무 기자 승인 2021.01.29 15:32 | 최종 수정 2023.03.20 10:42 의견 0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48년 동안 잠들어 있던 모차르트의 미발표곡 ‘알레그로 D장조’를 연주하고 있다.


[클래식비즈 민병무 기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테움 그레이트홀. 정장을 차려입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열 손가락으로 건반을 터치하자 신선한 멜로디가 펼쳐졌다. 94초(1분34초) 동안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가 홀을 가득 메웠다.

248년 동안 잠들어 있던 모차르트의 미발표곡 ‘알레그로 D장조’가 조성진의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음악의 신동’이 1773년 초 열일곱 살 때 작곡한 곡이다.

대표적인 모차르트 연구기관인 모차르테움재단은 조성진이 세계 최초로 연주한 이 연주 영상을 모차르트의 265번째 생일에 맞춰 27일 오후 6시(한국시간 28일 새벽 2시)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48년 동안 잠들어 있던 모차르트의 미발표곡 ‘알레그로 D장조’를 연주하고 있다.


조성진은 이 미발표곡을 포함해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2번’과 ‘핌피넬라’ ‘알레그로 C장조’도 연주했다. ‘20021 모차르트 주간’ 개막 공연이다. 모차르트 주간은 모차르트 탄생일에 맞춰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축제다. 모차르테움재단이 1956년부터 열어왔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탓에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을 통해 축제를 열었다.

비록 대면 공연은 취소됐지만 재단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깜짝 놀랄 이벤트를 준비했다. 모차르트의 미발표곡을 세계 초연한 것이다. 모차르테움재단은 지난 21일 조성진이 관중 없이 연주한 실황을 미리 녹화해 이날 전 세계 팬들에게 공개했다. 재단 홈페이지와 도이치그라모폰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공연 실황은 하루 만에 조회수 10만을 넘겼다.

조성진은 이날 '알레그로 D장조'를 두번 연주했다. 마지막 곡으로 '알레그로 D장조'를 마치자 진행자인 테너 롤란도 비야손(모차르트 주간 예술감독)은 "완전히 새로운 모차르트의 음악세계를 만났다"며 "아름다운 이 작품을 한번 더 듣고싶다"고 말했다. 비야손의 요청에 조성진은 한 차례 더 알레그로 D장조를 연주했다.

국내 클래식계는 음악 자체를 떠나 새롭게 발굴된 모차르트의 작품을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인 조성진이 초연했다는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조성진은 비록 짧은 소품곡이지만 청년 모차르트의 역동성과 활달함을 잘 표현해냈다.

조성진은 이 곡을 오페라처럼 해석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모차르트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파트는 스토리텔링이다. 피아노곡에서도 오페라적인 요소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태형 클래식 평론가는 “발랄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모차르트 특유의 느낌이 났다”며 “열일곱 살 모차르트답게 천재의 역동성도 느껴진다”고 평했다. 장일범 클래식 평론가 역시 “생동감 넘치고 건강하며 활달한 모차르트 청년기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 곡이다”라며 “한창 피어나는 신선한 피아니스트인 조성진의 연주는 모차르트의 청소년기 곡과 매우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

음악학자들은 ‘알레그로 D장조’가 1773년 초 작곡된 것으로 추정했다. 17세의 모차르트가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를 순회하며 공연했던 시기다. 당시 모차르트는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하며 곡을 썼다. 포르테피아노는 현대 피아노와 달리 소리가 길게 지속되지 않아 섬세한 연주가 필요하다. 음표 사이의 공백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가 피아니스트들에겐 숙제로 남아 있다.

조성진은 건반을 섬세하게 짚으면서도 ‘빠르게(알레그로)’ 진행되는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한정호 음악평론가는 “조성진은 작품을 잘 이해한 것 같다. 현대 피아노로 재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잘 살려냈다”고 설명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48년 동안 잠들어 있던 모차르트의 미발표곡 ‘알레그로 D장조’를 연주했다. 왼쪽부터 모차르트협회 연구소장 울리히 라이징거, ‘모차르트 주간’ 예술감독이자 테너 롤란도 비야손, 조성진, 잘츠부르크 모차르트테움 회장 요하네스 혼싱-어렌버그.


조성진을 통해 248년 만에 빛을 본 ‘알레그로 D장조’의 악보는 원래 모차르트가 막내아들에게 물려줬다. 사유는 불분명하지만 오스트리아 공무원 알로이 포스에게 악보가 넘어갔다. 포스는 실수로 재산목록에서 악보를 빠뜨렸고 소유권을 잃었다. 이후 악보는 전 유럽을 떠돌았다. 1880년대 오스트리아 골동품 상인의 유산 목록에 올라간 뒤 1928년까지 경매장에 여러 차례 매물로 나왔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파리에서 악보를 구입한 한 엔지니어가 가족에게 유산으로 물려줬고, 가족들이 2018년 모차르테움재단에 이를 팔았다.

전문가들이 3년 이상 진위를 확인한 끝에 모차르트가 직접 쓴 것으로 결론 내렸다. 울리히 라이징어 모차르테움 연구소장은 “우리 재단은 그 누구보다 모차르트에 대해 잘 알지만 위험을 피하기 위해 4명의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했고 그들도 모차르트의 곡이라고 감정했다”고 말했다. 도이치그라모폰은 조성진이 연주한 이번 곡을 29일 디지털음원으로 공개했다.

모차르트의 모든 작품에는 'K' 또는 'KV'로 표기되는 쾨헬넘버가 붙는다. 19세기 음악학자 루드비히 쾨헬이 모차르트 작품을 분류해 번호를 부여한데 따른 것이다. 이후에도 현재까지 주기적으로 현대의 연구 결과가 반영되면서 쾨헬넘버는 계속 추가되고 보완돼 왔다. 이번 '알레그로 D장조'는 'K.626b/16'가 부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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