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드라마틱한 탄생 비화가 먼저 마음을 끌었다. 현대 발레의 거장 조지 발란신(1904~1983)은 어느날 뉴욕 5번가에 있는 유명 보석상 ‘반 클리프 앤 아펠(Van Cleef & Arpels)’을 방문했다. 그는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3가지 보석에 눈이 꽂혔다. 영롱한 자태에 감탄하고 있는데 퍼뜩 춤에 대한 영감이 솟아났다. 예술가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천재의 감이 발현된 것이다. 최초의 신고전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주얼스(JEWELS)’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1967년 뉴욕시티발레단이 초연했다
대부분의 발레 작품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얼스’는 왕자와 공주, 사랑과 애증, 우정과 배신 등의 뻔한 줄거리를 담고 있지 않다. 그저 세 가지 보석에서 느낀 순간적 모티브를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펼쳐진다. 발란신은 각기 다른 춤, 의상, 음악, 그리고 분위기를 색칠해 총 3막의 작품으로 엮었다. 국내에서는 국립발레단이 지난해 처음 선보였고, 올해는 아예 시즌 개막작으로 다시 무대에 올렸다. 그만큼 가장 핫한 작품이다.
궁금했다. 어떤 매력 때문에 이렇게 화제가 되는지. 그래서 비록 라이브는 아니지만 발레계의 블록버스터로 통하는 ‘주얼스’를 스크린을 통해 감상했다. 19세기 무용의 전통을 간직한 고전 발레 작품을 섬세하게 안무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지난 1월 볼쇼이 극장 공연 실황을 봤다. 26일 전국 23개 메가박스 지점에서 상영됐고 28일에도 상영된다.
1막 ‘에메랄드’에서는 파리의 우아함과 세련미를 표현했다.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샤일록’이 흐르는 가운데 무용수들은 녹색의상을 입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곡선 위주의 팔 동작과 나풀나풀 섬세한 스텝은 프랑스 고전 낭만 발레를 2022년 2월 서울 한복판으로 소환했다. 13명 군무, 남성 무용수 솔로, 여성 무용수 솔로, 3인무, 2인무 등으로 이어지며 어느새 파리의 하늘 아래로 이끌었다.
2막은 아메리카노 한잔과 햄버거가 연상되는 뉴욕을 형상화했다. 제목 ‘루비’에 어울리게 무용수들의 붉은 옷은 전체적으로 활력과 생동감이 넘쳤다. 음악은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기상곡’을 사용했다. 재즈풍의 선율이 경쾌한 움직임을 돋보이게 했고, 남여 무용수 모두 직선적 동작이 많이 들어있어 톡톡 튀었다. 확실히 현대적이다. 미국 발레 스타일 특유의 자유로운 위트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3막 ‘다이아몬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클래식 발레를 상징한다. 순수하고 웅장한 눈의 궁전을 표현하듯 무용수들은 깔끔한 흰색 의상을 입었다. 표토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3번’이 발레 동작과 어우러져 아름답고 위엄 있는 황실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했다.
3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볼쇼이의 간판스타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등장이다. 유난히 길고 가는 팔다리, 가볍게 한들거리는 몸짓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지만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모습이 감동이다.
큰 화면을 통해 감상하니 공연장 직관 때 경험하지 못한 깨알재미도 쏠쏠하다. 클라이막스에서 무용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니 이마의 송골송골 땀방울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노력과 애씀을 바로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셈이다. 실제 공연과 똑같이 막과 막 사이에 20분과 15분씩 인터미션을 넣어 화장실을 다녀오도록 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객을 위해 의상 디자이너, 예술감독 등의 잠깐 인터뷰를 휴식시간에 삽입해 흥미를 유발했다.
새로운 사실도 알았다. 발란신은 원래 오스트리아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의 곡을 배경으로 ‘사파이어’ 파트를 넣어 4막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작품이 너무 길어 포기한 내용도 나온다. 그리고 3막이 끝난 뒤 커튼콜 때는 무대 뒤 풍경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막을 서로 겹치게 잡고 있는 도우미, 무용수들에게 “잘했어”로 칭찬해 주는 감독, 박수와 환호 소리가 멈추지 않자 다시 무대 앞으로 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도 참신했다.
메가박스가 이번에 상영한 ‘쥬얼스’는 볼쇼이 극장이 제작하고, 프랑스 배급사 파테 라이브가 제공한 ‘볼쇼이 발레 인 시네마’ 시리즈의 하나다. 영화관 스크린을 통해 구현되는 아름다운 영상과 풍성한 음향이 마치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것과 같은 감동을 선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메가박스는 지난해 말부터 21~22년 시즌 볼쇼이 발레단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5편을 시리즈로 상영 중이다. ‘스파르타쿠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주얼스’를 상영했고, 오는 6월 4일과 6일엔 ‘파라오의 딸’을 선사한다.
이번 ‘볼쇼이 발레 인 시네마’ 개봉을 통해 국내외 공연 콘텐츠 투자·제작 및 유통·배급 전문 위즈온센과 손을 잡은 메가박스는 앞으로 위즈온센이 보유한 해외 CP(Content Provider) 네트워크 강점을 기반으로 더욱 다양한 양질의 공연 예술 콘텐츠를 극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메가박스 클래식 소사이어티는 메가박스의 큐레이션 브랜드로 오페라나 클래식, 뮤지컬과 같은 공연 예술 작품의 실황 상영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빈 필하모닉 음악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한 취향저격 스페셜 프로그램을 통해 클래식 음악의 보급과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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