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극복 왼손 피아니스트 이훈 “오른손 마비도 점점 나아져...이게 음악의 힘”
새 앨범 ‘My Left Hand: The Melody of Courage’ 발매
“늘 도전하는 연주자 모습 보일것” 11월 독주회도 기대감
박정옥 기자
승인
2024.09.24 09:17
의견
0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쳤는데 오른손까지도 마비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반드시 오른손도 회복돼 두 손으로 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이게 음악의 힘입니다.”
뇌졸중을 극복한 기적의 피아니스트 이훈이 23일 서초동 스타인웨이 갤러리 서울에서새 음반 ‘My Left Hand: The Melody of Courage’ 발매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훈은 고등학교 시절 독일 유학길에 올라 다양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촉망받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불행은 갑자기 찾아왔다. 미국 신시내티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이후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왔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재활에 전념한 끝에 2016년부터 왼손 피아니스트로서 제2의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이번 앨범은 그가 겪었던 좌절과 회복, 그리고 음악을 통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특별한 음반이다.
앨범 제목처럼 그에게 ‘용기를 준 멜로디’를 묶었다. 지금까지 선보인 두 개의 디지털 싱글 앨범을 하나로 모아 만든 베스트 음반이다.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의 ‘Prelude and Nocturne for the Left Hand(Op.9)’, 레오폴드 고드프스키의 ‘Meditation and Elegy for the Left Hand’,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요하네스 브람스의 ‘Chaconne in d Minor for the Left Hand(BWV 1004)’를 담았다.
기자간담회에 앞서 이훈은 직접 스크랴빈의 ‘Prelude and Nocturne for the Left Hand’를 연주했다. 왼손으로만 건반을 터치하고 왼발로만 페달을 밟았지만 감동의 물결은 엄청났다. 끊어질 듯 소리가 줄어들더니, 다시 힘을 내어 이어지는 스크랴빈의 선율 속에 “음악 인생을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그의 강렬한 의지가 엿보여 뭉클했다. 이제 이훈의 시그니처곡이 됐다.
이훈은 “피아노를 칠 때는 열심히 치느라 몰랐는데, 막상 녹음을 들어보니 너무 불안해 걱정이 컸다”라며 “솔직히 음반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른 피아니스트의 레코딩을 들으면 좋게 느껴지지만, 정작 본인의 피아노 소리는 부족하게 들리는 모든 연주자들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
그는 “특히 바흐-브람스를 신경 써서 연주했고 세밀한 부분까지 집중하며 심혈을 기울였다”면서 “이번 앨범을 출발점으로 다음 녹음에서는 더 많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훈은 처음엔 걸을 수조차 없어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왼손으로 피아노를 치게 되면서 점차 건강을 되찾았다. 지금은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다. 모든 게 음악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음악은 즐거운 것이며 장애가 나아지는데 도움이 됐다”며 “피아노를 치면서 무의식 중에 어떻게 하면 피아노가 더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이게 건강 회복의 일등공신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음악은 친구이자 은인이다.
그는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툴뮤직장애인예술단의 단장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며, 최근 경기도장애인오케스트라의 홍보대사로도 위촉돼 장애인 이미지 제고와 인식 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훈은 오는 11월 5일 예술의전당 인춘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건반 위에 희망의 선율을 새겨나가는 피아니스트답게 이번 독주회에서도 도전하는 연주자의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park72@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