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요즘 손열음을 보고 있으면 ‘피아니스트 손열음’만큼 ‘기획자 손열음’도 빛을 발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넘친다. 그가 손을 댄 음악회는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하나를 기대했는데 두 개가 나오고, 열을 기다렸는데 스무 개가 쏟아진다. 늘 횡재하는 느낌이다. 지난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 ‘The Pianists’도 그랬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이 아들 기우(최우식 분)에게 감탄하듯 내뱉은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말과 딱 들어맞는다.
공연 타이틀 ‘The Pianists’에 걸맞게 유명 피아니스트이면서 작곡가·편곡가로도 활동한 음악가들의 곡으로만 꾸몄다. 이런 얼개를 만들기 위해 많이 찾아보고 분석했으리라. 이것저것 책을 들추고 이것저것 음반을 듣는 손열음이 오버랩됐다.
1부는 베토벤-체르니-리스트-질로티-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했다. 공연 도중 마이크를 잡은 손열음은 “이들 모두는 끈끈한 사제지간으로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베토벤은 체르니를 가르쳤고, 체르니는 리스트를 가르쳤고, 리스트는 질로티를 가르쳤고, 질로티는 라흐마니노프를 가르쳤다. 정교한 구성이다. 촘촘하게 얽히고설킨 인연을 엮어냈다. 피아니스트의 역사를 엿볼 수도 있는 짜임이다.
2부는 20세기의 피아니스트들이 주인공이다. 라흐마니노프로 시작해 헤스, 데 라로차, 란도프스카, 니콜라예바, 바이센베르크, 굴다, 와일드로 이어졌다. 장르는 바로크-고전-낭만-후기낭만-샹송-재즈 등이 총망라됐다. 손열음은 “사실 100년 전의 독주회는 지금처럼 대곡이나 전곡 위주의 공연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부분만 뽑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연주하는 형태였다”라며 “이번에 연주할 곡들은 3~4분을 넘지 않는 짧은 곡들이다.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칠 필요는 없다. 곡이 많기 때문에 중간 중간 박수를 치면 집에 못갈 수도 있다. 조용히 곡이 끝나면 여운을 즐기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무대 한 가운데 놓인 커다란 피아노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길이가 무려 3m8cm인 ‘파지올리 F308’이다. 이탈리아 제작사인 파지올리가 만든 피아노로, 이번 공연을 위해 공식수입사인 마스트미디어가 3일 한국에 들여왔다. 현존하는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 중 가장 큰 모델이며 페달도 보통 피아노보다 한 개 더 많은 4개다. 압도적 사이즈다.
손열음은 “원래 다양한 피아노를 좋아한다. 이번 프로그램이 조금 비주류적인, 비일반적인, 비정형화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피아노도 그런 방향에 잘 어울리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선택했다”고 밝혔다. 보통 일반적으로 연주되는 피아노는 독일 회사인 스타인웨이 앤 선스의 모델번호 D274다. 스타인웨이 중 가장 큰 콘서트 모델이고 2m74㎝다. 예술의전당은 이 모델의 그랜드 피아노를 10대 보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아노의 관리 상태인데, 파지올리가 얼마 전 한국에 아예 플래그십 스토어를 낸 것을 보고 그렇다면 관리도 최상급으로 된 피아노가 아닐까 싶어서 308이 있느냐고 문의했는데 마침 주문한 상태라고 해 타이밍이 잘 맞아 연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손열음은 “사실 몸집이 큰 악기다보니 큰 소리가 잘나겠다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오히려 작은 소리를 너무 쉽게 낼 수 있는 그런 악기였다”며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그래서 너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단행본 크기의 빨간색 표지 프로그램북이 예쁘다. 이날 연주하게 될 작곡가와 작품에 관한 글이 가득한데 모두 손열음이 직접 썼다. 글솜씨가 뛰어나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나’ ‘데뷔 무대’ ‘피아노 사부’ ‘어떤 피아니스트였나’ ‘마지막 무대’ ‘언제 어디서 눈 감았나’라는 분류로 음악가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얼굴 사진과 함께 곡을 소개해 놓았다. 이런 친절함 때문에 일반인이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사를 작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손열음 찐팬들에게 이 프로그램북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1부 첫 곡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6개의 변주곡 F장조(Op.34)’. 손열음은 “이 곡을 너무 좋아한다. 이상해서 좋아한다. 각각의 변주가 연관이 없는 듯 흐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협력한다. 이상한 구성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모든 변주가 각기 다른 조로 쓰였다.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F장조로 시작한 주제는 D장조→내림B장조→G장조→내림E장조→c단조→F장조 등 6개의 변주로 이어졌다. 둔탁하면서도 씩씩했고, 와장창 깨뜨릴 것 같이 강렬했고, 가쁜 숨을 멈추며 한결 부드럽게 호흡을 가다듬었고, 이내 새근새근 평온함이 찾아왔다. 소리의 파노라마였다. 앙증맞은 엔딩샷 포즈도 눈길을 끌었다.
카를 체르니는 무려 1000곡 이상을 남긴 다작 작곡가였다. ‘Opus’라고 표기하는 작품번호 목록만 861번에 이른다. 손열음은 두 번째 곡으로 체르니의 ‘피에르 로드 주제의 변주곡(Op.33), 회상’을 연주했다. 피에르 로드는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린 대가로, 베토벤의 마지막 바이올린 소나타인 ‘10번 G장조(Op.96)’를 헌정 받은 인물이다. 체르니는 로드가 작곡한 현악사중주 ‘Air varie(Op.10)’의 주제 선율을 활용해 ‘회상’을 작곡했다.
추억이 방울방울 샘솟는 속사포 연주였다. 건반에 물방울이 튀듯 음이 톡톡 튀었다. 소나기가 후두둑 떨어지며 흙탕물을 퍼지기도 했다.
프란츠 리스트는 19세기 피아노계 최고의 스타였다. ‘낭독’ ‘암송’이라는 뜻의 ‘recite’라는 단어를 활용해 리사이틀의 개념을 만든 이도, 갑자기 악보를 외워서 암보로 연주한 이도, 오른쪽 뺨을 보이게 연주하는 모습을 정립한 이도, 여성 팬들을 거느리고 다니던 최초의 아이돌형 피아니스트도 모두 리스트의 차지였다. 또한 당대 최고의 편곡자로서 셀 수 없이 많은 선후배와 동료 음악가들의 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했다.
최고의 피아노 귀재였던 만큼 리스트는 연습곡도 많이 남겼다. ‘콘서트용 연습곡’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연습곡’ 등 다양한 연습곡 가운데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모두 12곡으로 구성된 ‘초절기교 연습곡’일 것이다.
손열음은 그 중 ‘9번 내림A장조, 회상’을 연주했다. 전체 열두 개의 연습곡 중 가장 감성적인 곡이다. 어느 가을날, 찬바람에 날리는 낙엽의 소리를 닮았다. 은행잎에 떨어지는 가을비를 닮았다. 페루치오 부조니는 그의 저서 ‘음악의 정수’에서 이 곡을 ‘빛바랜 연서 묶음’ 같다고 표현했다. 곡이 모두 끝난 뒤에도 손열음은 몸을 풀지 않고 오랫동안 여운을 충분히 느꼈다. 관객 모두도 얼음이 돼 손열음과 하나가 됐다.
알렉산더 질로티는 자신을 가르쳐줄 마땅한 스승을 찾지 못했다. 다행히 러시아 왕립 음악협회의 경제적 도움으로 리스트에게 배울 기회를 잡았다. 갓 스물의 청년에게 리스트는 “너를 가르칠 수 있어 영광이야”라고 말했다. 여기저기 추천서를 보내며 질로티를 힘껏 밀어주던 스승은 안타깝게도 3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질로티는 잠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그때 그가 가르쳤던 제자 중 한 사람이 친척이기도 했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였다. 질로티는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독일과 영국 등지에서 연주하며 제자의 이름을 여기저기 알리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질로티는 작곡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창작곡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0곡이 넘는 편곡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는 일생의 지음인 라흐마니노프의 곡도 여럿 있다. ‘보칼리제’는 라흐마니노프가 완성한 ‘14개의 로망스(Op.34)’ 중 마지막 곡이다. 앞의 열 세곡은 모두 알렉산더 푸시킨, 아폴론 코린프스키 등 러시아 대문호들의 글을 노랫말로 삼았는데, 이 마지막 곡만은 가사가 없는 노래로 만들었다. 손열음의 손가락을 타고 선율이 흐르자 관객 모두는 마음속으로 ‘아아아~’ 노래를 불렀다.
라흐마니노프는 두개의 전주곡집을 남겼다. 10곡으로 구성된 ‘작품번호 23’과 13곡으로 이루어진 ‘작품번호 32’다. 손열음은 작품번호 32의 마지막 곡인 ‘전주곡 내림D장조(Op.32 No.13)’를 연주했다. 이 곡의 맨 끝부분에 인용된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열아홉 살에 썼던 ‘모스크바의 종’, 스승 질로티가 1890년대 투어마다 빠뜨리지 않고 연주하며 라흐마니노프를 세상에 처음 알렸던 바로 그 곡, ‘전주곡 올림c단조(Op.3-2)’다.
라흐마니노프는 다른 사람들처럼 12+12=24로 전주곡을 쓰지 않고, 생애 첫 자신의 전주곡을 잊지 않고 끄집어내 1+10+13=24로 전주곡집을 완성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렇듯 자진의 본원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손열음은 젊은 날의 자신에게 찬란한 안녕을 고하는 라흐마니노프를 들려줬다.
1부의 끝과 2부의 시작을 라흐마니노프였다. 1917년 겨울,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를 떠났다. “조국을 떠나며 작곡가로서의 나도 두고 왔다. 나라를 잃었을 때, 나 자신도 잃었다”라는 훗날의 회고처럼, 실제로 미국에 정착한 후 라흐마니노프는 오랫동안 곡을 쓰지 않았다. 유일하게 했던 작품 활동은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이 연주할 곡을 편곡하는 것이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E장조(BWV 1006)’를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것은 1933년쯤이다. 비록 피아노 한 대였지만 거대한 스케일의 러시아가 몰려왔다. 건반 앞에 앉은 손열음이 연주한 ‘가보트’는 ‘파워우먼 손열음’의 진수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마이라 헤스의 인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리어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몇 주 후 런던에서 시작한 ‘런치 타임 콘서트’다. 대분의 공연장이 독일군의 공습 타깃이 되어 문을 닫았기에 트래펄가 광장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 공연을 진행했다. 때때로 갤러리 건물이 폭격을 당하면 재빨리 장소를 옮겨 진행했다. 매월 금요일마다 장장 6년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됐다. 총 1698회, 누적관객 82만4152명에게 라이브 공연을 들려줬다. 이 공연을 진두지휘하고 직접 여러 차례 출연하기도 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연주료를 챙긴 적이 없었다.
손열음은 헤스가 편곡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코랄 칸타타-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연주했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앙코르 곡으로 자주 연주한다. 원래 이 곡은 모두 10곡이 들어있는 바흐의 칸타타 ‘마음과 입과 행위와 삶’에 수록돼 있다. 그 중 이 곡은 여섯 번째 곡이자 열 번째 곡으로, 같은 곡이 각기 다른 가사로 두 번 반복되는 형태다. 여섯 번째 곡으로 등장할 때의 제목은 ‘Wohl mir, dass ich Jesum habe(예수를 가진 나는 족하나니)’, 그리고 열 번째 곡으로 나올 때는 ‘Jesus bleibet meine Freude(예수 나의 기쁨으로 머물러)’다. 이 편곡 작품을 출판할 당시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가 이 두 번째 제목을 영어식으로 의역해 ‘예수, 인간 소망이 기쁨(Jesu, Joy of Men’s Desiring)’으로 달았다.
스페인의 피아노 역사는 알리시아 데 라로차 이전과 이후로 니뉜다. 변방이나 다름없는 스페인의 멋진 피아노곡들을 세상에 알린 1등 공신이다. 특히 아이삭 알베니스, 엔리케 그라나도스의 작품을 연주한 그의 음반은 아직까지도 모두가 첫 손에 꼽는 앨범이다. 그는 150cm가 채 안되는 작은 키에 손도 아주 작았지만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했다.
데 라로차는 이미 일곱 살 때부터 작곡을 했지만 자신의 곡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연주하지 않았다. 틈틈이 곡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거의 아무에게 알리지 않았다. 생전에 그저 자신만 들여다보는 일기장에 끄적거린 노트 같은 존재였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가족들에게 “원한다면 나중에 이 곡들을 알려도 좋다”라는 다소 소심한 허락을 내렸다. 데 라로차가 세상을 떠난 뒤, 동향 출신의 후배 피아니스트 마르타 자발레타가 그의 가족과 교류하며 1930년부터 1953년 사이에 쓴 흩어진 악보 원고들을 모아 녹음했고, 2016년에 발매했다.
데 라로차의 ‘소나타 안티구아’는 이렇게 세상에 출생신고를 했다. 손열음은 말 그대로 엔티크한, ‘오래된 소나타’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완다 란도프스카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가장 중요한 여성 음악가 중 한 사람이다. 구시대의 유물로 먼지 쌓여 가던 하프시코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시대악기 수호자다. 유럽 전역으로 빈티지 악기를 탐색하러 다녔고 바흐, 쿠프랭, 라모 등의 바로크 음악을 열성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20세기 들어 최초로 하프시코드 연주하고 녹음했다.
손열음은 란도프스카의 ‘도깨비불’과 ‘왈츠 e단조’를 들려줬다. ‘도깨비불’은 스페인 스타일의 춤곡 리듬과 정서를 담고 있으며, ‘왈츠 e단조’는 폴란드의 춤곡 마주르카를 닮아 쇼팽을 생각나게 했다.
20세기 가장 많은 피아니스트를 배출한 나라는 단연 러시아다. 하지만 이들 100명 중 99명의 피아니스트가 남자다. 전반적인 문화와 환경적 이유도 있겠지만 웅장한 사운드와 큰 스케일을 첫 손에 꼽는 러시아 피아니즘의 특성 때문이다. 이 와중에 여성적 한계를 뛰어넘어 대표적 피아니스트가 티티야나 니콜라예바다.
많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들이 작곡가이고 편곡자였던 것처럼 니콜라예바 역시 정통파 작곡가였다. 그의 ‘엘레지’는 민속적 향취가 가득 담긴 간결한 곡이다.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는 2차 세계대전 발발 후인 1941년 어머니와 함께 독일군이 점령한 불가리아를 탈출해 터키로 건너가려다 붙잡혀 수용소에서 석 달을 보냈다고 한다. 소년 바이센베르크가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는 슈베르트를 들은 수용소의 보초가 그와 어머니를 몰래 빼돌려주어 무사히 터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논란의 피아니스트’로 기억된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왜 내 연주를 그렇게 불편하게 받아들이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타들어가는 촛불의 푸른 심지 부분은 아주 차갑지 않나?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초 심지와도 같은 면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운 마음을 들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손열음은 바이센베르크의 2분 남짓 짧은 ‘연습곡’을 연주한 뒤, 샤를 트르네가 부른 샹송 ‘4월에, 파리에서’를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곡을 들려줬다.
프리드리히 굴다는 20세기 최고의 괴짜 피아니스트다. 심지어 테러리스트 피아니스트로도 불린다. 이번 연주는 반드시 흥행해야 한다며 부고 기사를 낸 다음, 그 연주를 ‘부활공연’으로 만들기도 했고 나체로 즉흥 연주를 하는 기행도 선보였다. 몇 년 동안 함께 음반 작업을 했던 보컬리스트 알베르트 골로윈이라는 인물이 알고 보니 굴다 자신이었다. 수많은 스캔들을 만들고 즐겨 뜨거운 환호와 원성을 동시에 샀다.
그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서의 루틴에 갇힐 생각이 없다”며 장르를 초월한 연주 활동과 음반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특히 재즈에 큰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재즈풍의 곡을 많이 남겼는데, 1971년 작품인 ‘플레이 피아노 플레이’가 대표적이다. 모두 10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손열음은 8번, 9번, 10번을 연주했다.
얼 와일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다. 1931년 백악관에서 초청받아 연주했는데 당시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를 포함해 이후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젠하워,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대통령까지 모두 6명의 대통령이 백악관에 초청해 연주를 요청했다. 1939년 미국 텔레비전이 역사상 최초로 방영한 피아노 콘서트도 와일드 공연이었다.
와일드는 많은 편곡 작품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백설공주의 회상’은 독특하다. 디즈니의 1937년작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사운드 트랙 중 몇몇 노래를 뽑아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손열음은 앙코르도 무려 4곡을 연주했다. 쇼팽의 ‘왈츠 7번 올림c단조(Op.64-2)’, 라흐마니노프가 편곡한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 판데르프스키의 ‘미뉴에트 G장조(Op.4-1)’,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왈츠 카프리스’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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