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아홉살 (윤)시아는 피아노를 친다. 발달장애인이다. 지난해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 입학해 선생님들과 함께 열심히 피아노 공부를 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하니 얼굴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 시아와 동갑인 (이)재언이는 성악을 한다. 그도 발달장애인으로, 올해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 들어왔다. 노래의 힘은 컸다. 전문적으로 배우다보니 더 씩씩해졌다.
두 사람이 1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뷰티플마인드와 함께하는 가을음악회’에 섰다. 자신들의 특기인 피아노와 성악으로 데뷔한 것은 아니지만,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작곡한 ‘장난감 교향곡’ 연주 때 토이피아노와 탬버린을 맡아 미션 클리어했다. 시아의 동생인 지오는 누나가 공연한다고 하니 자기도 나가고 싶다고 졸랐다. 그래서 누나 덕에 장난감 피리를 맡았다.
이들은 신종호(비올라)·남승현(첼로) 선생님과 함께 실제 장남감으로 쓰일 법한 간단한 악기를 사용해 뻐꾸기, 메추라기 소리 등의 효과음을 냈다.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추며 ‘낄끼빠빠의 신공’을 선보여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 김일중과 피아니스트 강소연은 “서로 장난감 교향곡 무대에 서겠다고 지원자가 쇄도해 연주자 경쟁률이 엄청났다”고 알려줬다.
‘뷰티플마인드와 함께하는 가을음악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무료 공연으로 2022년부터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하고 있다. 매년 가을과 어울리는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여 ‘가슴 뭉클하고 벅찬 공연’ ‘공연 내내 눈물이 나는 감동의 시간’ ‘음악이 가진 힘을 깨닫는 순간’ 등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도 빅히트했다.
1부에서는 세계적인 첼리스트 임희영과 한국을 대표하는 트럼페터 성재창이 나왔다. 뷰티플마인드 졸업·재학 음악가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과 함께 멋진 무대를 꾸몄다.
오프닝은 흰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똑같이 맞춰 입은 김건호 군(퍼스트 피아노)과 신정양 선생님(세컨드 피아노)이 짝을 이뤄 다리우스 미요의 ‘Scaramouche Op.165b’를 연주했다. 건호는 시각장애인이다. 여섯 살 때부터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서 신정양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맺어온 사제의 케미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곡에서 빛을 발했다. 경쾌하고 활발한 분위기를 선사하더니(1악장), 어느새 분위기를 바꿔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선율을 터치했다.(2악장) 제자의 짝짝 두 번 박수에 스승은 화답하듯 짝짝 두 번 박수로 신호를 주고받은 뒤 빠르고 열정적인 리듬으로 곡을 마무리 했다.(3악장)
뷰티플마인드는 국경과 장애를 넘어 하나를 표방한다. 한국 뷰티플마인드 학생인 박한별 양(퍼스트 플루트)과 싱가포르 뷰티플마인드 학생인 로렌스 가브리엘 빌라 엔젤(세컨드 플루트)이 게리 쇼커의 ‘두 대의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춤곡’ 중 제1곡과 제3곡을 연주했다. 김예리 선생님이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활기찬 분위기의 ‘Easy Going(제1곡)’에서 두 연주자는 입으로 “랄라~” 소리를 넣었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Coffee Nerves, Prestissimo(제3곡)’에서는 또 “헤이~” 추임새를 넣어 흥을 돋웠다. 독특한 리듬과 멜로디를 통해 춤의 생동감과 우아함을 잘 표현했다.
첼리스트 임희영은 뷰티플마인드와 인연이 깊다. 지난 2020년 6월 뷰티플마인드 시각 및 발달 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후원기념식 여는 등 꾸준하게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뷰티플마인드의 바이올린 박준형·권현태, 비올라 김미화, 피아노 배성연과 스페셜한 피아노 퀸텟을 구성했다.
이들은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 오중주 내림E장조(Op.44)’ 중 1악장 알레그로 브릴란테를 들려줬다. 귀를 사로잡는 강렬한 도입부로 시작돼 피아노와 현악기가 번갈아 가며 주제를 주고받는 대화형식이 눈에 띄었다. 에너지 넘치는 리듬과 화려한 멜로디가 쏟아졌다. 낙관적이고 기쁨에 찬 분위기가 관객 모두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트럼펫은 ‘위험한 악기’다. 잘 연주하다가도 한순간 방심하면 ‘삑사리’가 나올 수 있어 늘 긴장하며 연주해야 하고 듣는 사람도 조마조마하다. 성재창(퍼스트 트럼펫)이 뷰티플마인드 이영래·이윤정(세컨드 트럼펫)과 호흡을 맞췄다. 반주는 바이올린 박소영·오유진, 비올라 김미령, 첼로 남승현, 피아노 김예리 선생님이 오중주로 도왔다.
성재창은 관객과 함께 스페인과 프랑스로 음악여행을 떠났다. 스페인 전통 결혼식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호세 라파엘 파스큐알-빌라플라나의 ‘Les Noces del Manya’와 파리의 상징물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프랑시스 풀랑의 ‘에펠탑 폴카’를 연주했다. 삑사리 제로의 흠잡을데 없는 솜씨다.
바리톤 이남현은 ‘바퀴달린 성악가’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시크린 가든’의 롤프 뢰블란이 북아일랜드 민요 ‘Londonderry Air’를 편곡해 기악곡으로 만들었고, 여기에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작곡가인 브랜던 그레이엄이 가사를 붙인 ‘You raise me up’을 노래했다. MR에 맞춰 흐른 이남현이 목소리는 실의에 빠진 모든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희망을 선물했다.
이어 이남현은 뇌종중을 극복한 ‘왼손 피아니스트’ 이훈의 반주에 맞춰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This is the moment’를 들려줬다. 서정적이고 강렬한 멜로디로 시작해 점차 고조되어 힘차게 마무리되는 웅장한 소리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2부는 이원숙이 지휘하는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의 시간이었다. 2010년 창단한 국내 최초의 장애·비장애 통합 오케스트라다. 모두 6곡을 연주했다.
첫 곡은 칼 젠키스의 ‘팔라디오’. 16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아 작곡했다. 강렬한 리듬과 선명한 선율이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이어지며, 대칭과 조화에 포커싱을 맞춘 ‘음악 건축물’을 만들었다. 원래는 바로크 음악 스타일인데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들려줬다. 점점 고조되는 점진적 전개는 곡의 몰입도를 높이며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빨간 드레스로 갈아입은 임희영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 내림E장조(Op.107)’ 중 1악장 알레그레토과 4악장 알레그로 콘 모토를 협연했다.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감정적 깊이와 복잡한 구조, 첼로의 화려한 테크닉이 팽팽하게 긴장감을 형성하며 음악 쾌감을 선사했다.
“아하, 바로 이 음악이구나.” 성재창이 오랫동안 MBC TV ‘장학퀴즈’의 시그널 음악으로 쓰였던 요제프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내림E장조’의 3악장 알레그로를 연주하자 관객 모두는 귀에 익은 친숙함에 반가워했다. 트럼펫의 기교와 화려함을 만끽하기에 제격인 곡이다.
성재창은 트럼펫을 코넷(트럼펫과 비슷하게 생긴 작은 호른)으로 바꿔 장 밥티스트 아르방의 ‘베니스의 사육제’를 연주했다. 이 곡은 원래 니콜로 파가니니가 나폴리 민요를 기반으로 만든 바이올린 곡 ‘동물의 사육제’였다. 아르방이 이를 편곡해 ‘베니스의 사육제’로 내놓았는데 요즘은 이 곡이 더 유명하다.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장난감 교향곡’에 이어 레너드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맘보’를 피날레로 연주했다. 맘보는 1930년대 생겨난 쿠바 댄스 음악의 한 장르다. 야성미 넘치는 강렬한 음색과 신선한 음향, 그리고 시원하고 경쾌한 리듬이 귀를 사로잡았다. 연주 중간에 “맘보~” “맘보~” 추임새을 더해 흥겨움의 끝판을 보여줬다.
프로그램에 나와 있는 모든 곡을 마친 뒤 이원숙 지휘자는 음악 파트별로 단원들을 일으켜 세워 관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앙코르는 잔잔함 속에서 뭉클했다. 영화 ‘뷰티플 마인드’ OST 중 ‘음악하는 마음’을 연주했다. 기타, 첼로, 피아노의 솔로 선율이 점점 오케스트라의 소리로 수렴되면서 엑설런트 사운드를 펼쳤다. 뷰티플마인드의 숨겨진 열정과 노력이 느껴지는 행복한 음악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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