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세계를 돌며 지휘할 때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잠재력 있는 연주자를 늘 살펴봅니다.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들이죠. 그런 사람을 찾으면 먼저 다가가 말을 붙입니다. ‘진짜 멋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있는데 참여해볼래’라고요. 한번 함께하면 항상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 해요.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아직 한 명도 본 적이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로 손꼽히는 파보 예르비는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이처럼 하나로 꽁꽁 묶인 원팀이라고 자랑했다. 지난 2011년 직접 창단해 모든 음악적 애정을 쏟아 붓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휴양지 패르누에서 매해 여름 열리는 ‘패르누 뮤직 페스티벌’의 상주 음악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축제는 파보 예르비의 아버지인 네메 예르비와 동생인 크리스티안 예르비 등 세계적 지휘자로 이름 높은 3명의 ‘예르비 패밀리’가 모두 달라붙어 키우고 있는데, 이 페스티벌을 상징하는 악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파보 예르비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 오는 9월 3일(토)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을 앞두고 23일 서면인터뷰를 진행했다. 4일 통영국제음악당, 5일 경기아트센터 대강당에서도 공연한다. 그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NHK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인 동시에 오랫동안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그의 멤버 찾기는 항상 현재진형이다. 어디를 가든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눈여겨본다. 공식직함은 예술 감독이지만 인재를 영입하는 스카우트 역할도 오랜 미션이 됐다.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보는 탁월한 눈썰미를 갖춘 덕에 지난 12년간 오케스트라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사실 에스토니아의 젊은 연주자들은 실력과는 별개로 다른 나라 연주자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세계의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인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지휘자로서 후배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는 가장 프로페셔널한 방법은 바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였죠.”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는 훨씬 더 좋았다. 처음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던 아이들은 대부분 학생이었는데, 이제 그들은 유명 악단의 악장이거나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음악계의 새로운 리더들이 됐다. 파보 예르비의 자랑거리가 됐다.
단원들은 파보 예르비가 직접 선발한 에스토니아와 세계 각국의 재능 있는 연주자들로 구성돼 있다. 제1바이올린을 맡고 있는 이경은도 마에스트로의 러브콜을 받아 합류했다. 그는 11세에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해 잘츠부르크와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종신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 사람은 뭔가 다른 눈빛을, 다른 심장을 가졌구나 하는 사람을 마에스트로가 직접 초이스한 뒤 초대해요. 무엇보다 한명 한명 직접 선택해 부른 단원들이라 확실히 달라요.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의 친구들이나 마찬가지죠. 단원 모두가 지휘자와 서로 편안한 관계라는 점이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강점입니다.”
그가 피보 예르비를 처음 만난 건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오디션 장소였다. 파이널 라운드가 끝난 뒤 직접 백스테이지로 와서 오케스트라에 대해 소개해줬다. 좋은 기회로 생각해 합류했다. 2019년 일본 투어가 첫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경험이었고 이번 한국 공연이 두 번째 투어다.
“일본 투어 때의 일입니다. 신칸센을 이용해 다른 도시로 가는데 마에스트로는 1등석, 단원들은 2등석에 앉아있었어요. 마에스트로가 심심했는지 2등석으로 넘어와 신칸센 내에 팔고 있는 모든 술을 사서 저희에게 쐈어요. 양이 꽤 많았죠. 저희 때문에 신칸센에는 술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정말 재미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파보 예르비는 팀워크를 중시한다. 오케스트라를 스페셜하게 만드는 힘은 결국 공동체 의식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새로운 연주자가 합류하면 마치 한 가족이 된 듯한 특별한 유대감과 활기가 넘친다”라며 “그야말로 구성원 모두가 하나가 되는데 이건 다른 곳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굉장히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패르누 뮤직 페스티벌’은 ‘예르비 아카데미’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 올해는 한국 지휘자 최재혁이 ‘예르비 컨덕팅 아카데미’에 참여해 파보 예르비에게 특별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예르비 아카데미 유스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파보 에르비는 한국 공연의 프로그램도 소개했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와 에르키-스벤 튀르의 작품을 연주한다. 특히 에르키-스벤 튀르는 그의 오랜 음악 파트너다.
“학창 생활을 함께했어요. 둘 다 젊은 시절 록 음악에 빠졌습니다. 에르키-스벤 튀르는 잘 알려진 록 뮤지션이었고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활동을 했어요. 이를 계기로 작곡도 시작했죠. 그의 음악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오케스트라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여러 층의 소리를 겹겹이 쌓는 방식으로 소리가 끊임없이 흐르게 합니다. 또한 강한 리듬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음악을 더욱 매력적이고 리드미컬하게 만듭니다. 이는 그가 이전에 작곡했던 록 음악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협연자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에스토니안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트린 루벨과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부문 3위를 차지한 첼리스트 마르셀 요하네스 키츠는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을 연주한다.
“두 명 모두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초기 단계부터 함께한 연주자들입니다. 우리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성장했어요. 챔버 뮤지션으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고, 에스토니아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인물들입니다. 한국 팬들에게 선보일수 있게 돼 러시아의 대표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도 연주해 에스토니아가 갖고 있는 지리적·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매일 성장하고 있는 독특한 음색을 경험할 수 있다.
파보 예르비는 9월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에 이어 12월에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함께 또 내한한다. 그리고 12월에는 60번째 생일을 맞는다. 이 특별한 시기에 자신이 애정하는 오케스트라와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하는 기분이 궁금했다.
“한국과 한국 관객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쁩니다. 그동안 한국에 자주 방문하면서 이 나라와 관객들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생일을 맞이하는 시즌에 저에게 정말 특별한 두 오케스트라와 함께 방문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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