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다시 온 ‘지젤’ 유일한 한국 무용수 강호현 “발 테크닉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

세계 최고 파리오페라발레 8~11일 LG아트센터 공연
“솔리스트와 군무진으로 출연 ‘쉬제의 실력’ 보여줄것
다음 공연엔 한국인 정단원 3명 함께 무대 오르고 싶어”

박정옥 기자 승인 2023.03.08 09:17 | 최종 수정 2023.03.10 12:11 의견 0
무용수 기욤 디옵, 무용수 도로테 질베르, 무용수 강호현, 호세 마르티네즈 예술감독(왼쪽부터)이 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파리 오페라 발레 ‘지젤’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30년 만의 공연에 참여하게 돼 영광입니다. 저를 포함해 세 명의 한국인 정단원이 있는데 이번엔 저만 오게 됐어요. 곧 저희 세 명이 한 무대에서 한국 관객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35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 발레단 ‘파리 오페라 발레(POB)’가 프랑스 낭만 발레의 시그니처 작품인 ‘지젤’로 30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17년에 입단해 지난해 ‘쉬제’로 승급한 강호현은 유일한 한국인 무용수로 이번 무대에 오른다.

7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세은 언니가 문자 메시지로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 줬다”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파리 오페라 발레의 정단원은 ‘카드리유’(군무진)→‘코리페’(군무 리더)→‘쉬제’(솔리스트)→‘프르미에르 당쇠르’(제1무용수)→‘에투알’(수석무용수) 등 5단계의 엄격한 등급 체계로 나뉜다. 동양인 최초로 에투알(‘별’이라는 뜻)에 오른 박세은은 출산으로, 그리고 코리페인 윤서후는 다른 일정 때문에 이번에 동행하지 못했다.

“저는 한국에서 대학교 과정까지 교육을 마치고 파리 오페라 발레에 처음 입단했어요. 가장 큰 차이점은 프랑스 발레와 한국 발레의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 저는 학생 신분(예원학교·서울예고·한예종)으로 춤을 추었고, 프랑스에서는 발레단에 입단한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에 학교와 사회생활의 차이점이 아닐까 싶어요. 발레단에서는 ‘직업’으로 임해야하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발레로 서로 소통하는 점에서는 한국이나 프랑스 모두 똑같고요.”

파리 오페라 발레 ‘지젤’에서 솔리스트와 군무진으로 출연하는강호현이 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장 코랄리와 쥘 페로가 안무하고 아돌프 아담이 음악을 쓴 ‘지젤’은 낭만주의 시대가 배출한 걸작 발레로 평가받는다. 파리 오페라 발레가 1841년 6월 파리 르펠르티에 극장에서 초연했다. 예술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며 발레단의 상징적인 작품이 됐다. 이후 ‘지젤’은 다양한 안무가에 의해 변주돼 왔는데, 이번에 선보일 ‘지젤’은 원작에 기초해 파트리스 바르와 외젠 폴리아코프가 1991년 재안무한 버전이다.

‘지젤’은 유럽에 널리 퍼져 있는 배신당한 처녀의 유령 ‘윌리(빌리)’ 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아름다운 시골 처녀 지젤은 마을 사람으로 변장한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지젤을 짝사랑하던 마을 청년 힐라리온에 의해 알브레히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슬픔 속에 죽게 된다. 지젤은 윌리가 되었지만 윌리들의 여왕 미르타가 알브레히트를 밤새도록 춤을 추어 죽게 하려 하자 그를 지켜 준다.

‘지젤’은 무용수들의 테크닉을 극한까지 선보이는 고난도의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연인의 배신을 깨닫고 실성해가는 지젤의 모습을 그린 1막의 ‘매드신’, 하얀 발레복을 입은 발레리나들이 펼치는 2막 ‘윌리들의 군무’는 하이라이트로 손꼽힌다. 강효현은 8일부터 11일까지 LG아트센터서울 시그니처홀에서 열리는 공연에서 쉬제와 카드리유로 참여한다.

“솔리스트 역할로는 윌리를 두 회차, 그리고 군무진으로는 모든 회차에 나와요. 이번 ‘지젤’은 발 테크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안무로 재해석됐어요. 의상도 발목까지 내려오는 흰색 발레복을 입어요. 그래서 토슈즈를 신고 어떻게 정확히 발 포지션을 표현해낼지를 가장 고민했어요.”

파리 오페라 발레 ‘지젤’에서 솔리스트와 군무진으로 출연하는강호현이 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이번 내한을 이끄는 호세 마르티네스 예술감독은 30년 전 공연(1993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무용수로 한국 관객을 만났던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는 아시아 발레리노 최초로 파리 오페라 발레에 입단했던 김용걸 한예종 교수(2009년 쉬제로 은퇴)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지난해 12월 새 예술감독으로 취임해 3개월째 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마르티네스는 “180여년 전에 만들어진 고전 발레의 정수를 존중하는 동시에 지금의 무용수들이 가진 다양한 잠재력을 보여주는, 한마디로 프랑스 발레의 이상적인 구현 무대가 될 것이다”라며 “기술과 감성이 어우러진 고품격 발레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고 소개했다.

이번 내한에는 70여 명의 무용수뿐 아니라 무대, 분장, 소품 담당자와 무용수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의료진까지 총 120여명의 직원이 함께해 파리에서 열리는 공연과 똑같은 환경을 유지한다. 무용수들의 완벽한 몸상태를 위해 마사지사도 대동했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파리에서는 자체공연만 1년에 180~200회 정도한다. 이런 빽빽한 일정 때문에 해외 투어는 성사가 쉽지 않다”며 “이번 내한에는 발레단의 모든 스태프가 힘을 보태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일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한국인 단원을 포함해 여러 문화권의 무용수가 함께하는 것이 파리 오페라 발레의 전통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며 “한국의 훌륭한 발레 교육 덕에 여러 한국 무용수들이 저희 발레단에 함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 ‘지젤’에서 지젤 역할을 맡은 도로테 질베르가 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이번 ‘지젤’ 내한에서는 간판스타와 신예들이 함께 무대를 꾸민다. 11일 공연에서 주인공 지젤 역을 맡은 도로테 질베르는 2000년 발레단 입단 이후 23년간 파리 오페라 발레의 대표 스타로 활약하며 두터운 팬층을 지닌 에투알이다.

지난해 파리 오페라 발레 갈라 콘서트와 발레리노 김기민 내한 공연의 출연진으로 한국을 찾은 질베르는 “파리 오페라 발레의 ‘지젤’은 난이도 높은 테크닉을 그대로 구현하며 다른 무용단과 차별화되는 공연이다”며 “제 스스로도 15년 전에 추던 지젤과 지금 추는 지젤이 다르다. 그게 바로 오늘날까지도 ‘지젤’이 활발하게 공연되는 이유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작년 7월과 8월 잇따라 한국 무대에 올라야 했기 때문에 남편·딸과 함께 들어와 아예 한국서 생활했다”며 “딸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언어소통이 안돼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게 많이 속상했던지 결국 스스로 영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은 게 큰 소득이었다”라고 공개해 웃음을 안겨줬다.

예술과 삶에 대한 뚜렷한 주관도 밝혔다. “언젠가 춤은 멈춰야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노력은 꼭 결실을 맺는다. 예술에는 결코 불공정이 없다”고 강조했다.

호세 마르티네즈 예술감독, 무용수 기욤 디옵, 무용수 도로테 질베르, 무용수 강호현, 이현정 LG아트센터장(왼쪽부터)이 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파리 오페라 발레 ‘지젤’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LG아트센터 제공


23세의 나이로 파리 오페라 발레의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고 있는 발레리노 기욤 디옵은 남자 주인공 알브레히트 역으로 질베르와 호흡을 맞춘다. 그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작품이지만 제겐 엄청난 기회다”라며 “극적 순간이 많기 때문에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은 “올 정규시즌을 ‘지젤’로 화려하게 오픈하게 돼 기쁘다”라며 “대형 발레와 오페라 공연에도 최적화된 공연장이니 앞으로 더 좋은 무대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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