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프 헤레베허 “인간승리 담아낸 ‘주피터’ ‘영웅’...한국 관객 생각하며 선곡”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6년 만의 내한공연
고음악 대가 “고음악 연주는 명료성이 중요”

김일환 기자 승인 2023.04.30 20:08 | 최종 수정 2023.04.30 20:11 의견 0
‘고음악의 대가’ 필리프 헤레베허가 모차르트 ‘주피터’와 베토벤의 ‘영웅’으로 5월에 내한 공연을 연다. ⓒ크레디아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모차르트 ‘주피터’와 베토벤 ‘영웅’은 둘 다 긍정과 희망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어요.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얻어낸 ‘인간의 승리’를 담았죠. 어떤 면에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도 비슷합니다. 특별히 한국 관객을 생각하며 선곡했어요.”

벨기에 출신의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76)가 자신이 직접 창단한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6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그는 옛 음악을 그 시대의 악기와 기법으로 연주하는 고음악 전문 지휘자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5월 17일)과 부천아트센터(5월 20일)에서 열리는 내한공연을 앞두고 28일 서면 인터뷰에서 ‘음악신동’의 교향곡 41번과 ‘악성’의 교향곡 3번을 초이스한 이유를 설명했다.

“연주 여행은 예술적인 측면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같은 시대악기(곡이 탄생한 시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앙상블은 더욱 그렇죠. 베토벤 교향곡과 브람스, 드보르자크 교향곡을 함께 연주할 수는 없습니다. 악기도 다르고 편성도 달라지니까요. 예술적 측면에서 봐도 한 시대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심포니를 한 무대에서 선보이는 것은 시대적·양식적·예술적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뜻이다. 더욱이 한국에 자주 올 수 없으니 두 작곡가의 교향곡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인 ‘주피터’와 ‘영웅’은 멋진 선택이라는 셀프 칭찬이다.

‘고음악의 대가’ 필리프 헤레베허가 모차르트 ‘주피터’와 베토벤의 ‘영웅’으로 5월에 내한 공연을 연다. ⓒ크레디아 제공
‘고음악의 대가’ 필리프 헤레베허가 모차르트 ‘주피터’와 베토벤의 ‘영웅’으로 5월에 내한 공연을 연다. ⓒ크레디아 제공


그러면서 두 곡의 개별적 특징을 짚어줬다. 관객들에게 주는 감상팁이기도 하다. ‘주피터’에 대해서는 “수많은 오페라를 작곡하며 발전시킨 극(drama)에 대한 재능과 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 기법인 대위법에 대한 재능이 결합해 탄생한 곡이다”라며 “천재임을 실감할 수 있는 마지막 4악장을 들어보면 이 곡이 왜 대위법과 푸가(하나의 선율을 한 성부가 연주한 뒤 이를 따라 다른 성부가 다른 음역에서 모방하는 것. 쉽게 설명하면 ‘기악적 돌림노래’)에 있어 모차르트의 걸작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헤레베허는 ‘영웅’에서는 대위법이 점점 더 발전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으로 가는 길이 이미 이 작품에서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교향곡3번의 관악과 팀파니 파트는 베토벤 시대의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베토벤이 이 곡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 대해 우회적으로 경의를 표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1947년생인 헤레베허는 특이한 커리어의 소유자다. 의사였던 아버지와 음악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의학과 음악을 함께 공부했다. 의대생이던 1970년에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창단했고, 정신과 의사가 된 이후에도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사로서의 일은 흥미가 떨어졌다. 반면에 음악 활동은 더 많은 주목을 받으며 그의 삶의 전부가 된다. 이 시기에 거장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2016)와 구스타브 레온하르트(1928~2012)를 스승으로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터닝포인트했다.

그는 1991년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악 단체이자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고음악 악단으로 파리 샹젤리제 극장과 브뤼셀 보자르 궁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헤레베허는 ‘임선혜의 은인’이기도 한다. 1999년 독일 유학 중이던 23세의 소프라노를 깜짝 발탁해 유럽 무대에 데뷔시켰다. ‘아시아의 종달새’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고음악의 대가’ 필리프 헤레베허가 모차르트 ‘주피터’와 베토벤의 ‘영웅’으로 5월에 내한 공연을 연다. ⓒ크레디아 제공
‘고음악의 대가’ 필리프 헤레베허가 모차르트 ‘주피터’와 베토벤의 ‘영웅’으로 5월에 내한 공연을 연다. ⓒ크레디아 제공


헤레베허는 고음악의 핵심은 ‘명료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음악을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라며 “다만 이는 어프로치 방법일 뿐이고, 고음악의 목표는 명료성에 있다. 명료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되풀이 했다. 이어 그는 “나와 내 동료들의 비전과 목표는 구시대적이지 않은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고음악이 옛 음악을 단순히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이런 점은 ‘지휘란 무엇일까’에 대한 헤레베허의 가치관과 연결된다. 그는 지휘에서는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오케스트라가 조화롭게 연주하는 것, 두 번째는 악보가 쓰인 그대로 연주하는 것, 세 번째는 악보에 담긴 정신적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헤레베허는 “때로는 악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다른 견해를 가진 음악가들이 있다”며 “결국 오케스트라는 합심해 다른 견해를 조율하면서 함께 악보의 내면을 연주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세 번 공연했다. 네 번째 공연에 대한 설레는 마음도 드러냈다.

“팬데믹 직전(2019년 12월 통영)에도 몬테베르디를 연주했는데 좋은 공연이었습니다. 한국 청중은 음악을 정말 사랑해요. 거기다가 반응도 아주 직접적이고요. 또 훌륭한 연주회장도 많아요. 그리고 한국 팬들은 매우 활기차고, 젊고, 교양 있는 관객들입니다. 곧 한국에서 여러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매우 기대가 큽니다.”

/kim67@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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