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활 그을 때마다 쇼송과 비외탕의 슬픔 뚝뚝...조슈아 벨 ‘새드 바이올린’

마르쿠스 슈텐츠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첫 협연
???????서울시향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등 선사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5.23 17:46 | 최종 수정 2023.05.23 17:47 의견 0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조슈아 벨이 19일 마르쿠스 슈텐츠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협연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조슈아 벨이 활을 그을 때 마다 쇼송과 비외탕이 음표에 숨겨 놓은 슬픔이 흘러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바이올리니스트는 두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으로 아름답고 매혹적인 선율을 선물했다.

조슈아 벨은 마르쿠스 슈텐츠가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18일과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두 차례 공연했다. 서울시향과는 첫 협연이었고, 슈텐츠와는 오래 전에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19일 공연을 감상했다.

벨이 처음 연주한 곡은 에르네스트 쇼송의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시’. 쇼송의 안타까운 죽음이 떠올라 콧등이 찡해지는 곡이다. 24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뒤늦게 작곡가의 꿈을 이루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다 벽에 부딪혀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신비로운 관현악 서주 후 벨의 바이올린이 슬픔을 머금은 독백을 읊고, 관현악이 더해지며 점차 열정을 드러낸다. 두 번째 부분은 바이올린이 고음에서 저음으로 하강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참 후에 관현악이 빠른 리듬으로 등장하며 격정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이내 세 번째 부분으로 진입하며 절망과 맞닥뜨린다. 다시 열정을 깨워보지만, 운명적인 거대한 관현악 연주 후 바이올린은 희망을 잃고 쓸쓸히 사라진다.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조슈아 벨이 19일 마르쿠스 슈텐츠가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협연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앙리 비외탕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곡가였다. 모두 7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는데, 벨은 그 중 5번을 연주했다. 선곡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학창 시절 반드시 배우는 작품이지만, 무대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아 아쉬움이 컸어요. 그래서 꼭 들려주고 싶었죠. 두 번째 이유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한 곡들의 특별함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요.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는 앙리 비외탕의 제자였고, 제 스승인 요제프 긴골드는 이자이의 제자입니다. 긴골드는 야사 하이페츠, 프리츠 크라이슬러와 동시대의 분이죠. 긴골드에게 배울 때 저는 그의 어린 손자와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니 음악적으로 이자이는 증조부, 비외탕은 고조부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비외탕의 곡을 연주할 때 매우 특별한 감정을 느껴요.”

전체를 쉼 없이 연주하는 아타카(attacca)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세 악장으로 구분된다. 벨의 말처럼 매우 풍부한 음악적 경험을 제공해 주는 곡이다. 드라마틱한 오페라의 이야기를 바이올린으로 노래하는 듯했다. 많은 아름다운 아리아로 꽉 찬 곡이다.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조슈아 벨이 연주를 마친 후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와 주먹을 부딪히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조슈아 벨이 관객들의 환호에 인사하기 위해 다시 무대로 나오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1악장은 비장미 짙은 웅장한 관현악 서주로 시작하고, 바이올린이 살며시 등장했다. 그러다 화려한 연주를 들려주고, 곧 슬픔의 정서가 가득한 1주제를 제시한다. 노래와 같은 2주제는 차분하면서도 밝은 기분으로 감정을 진정시킨다. 마지막에 관현악 서주 주제를 중심으로 긴 카덴차를 강렬하고 호소력 짙게 연주했다.

2악장은 고요한 가운데 시작한 후 점차 고조되는 열정을 숨기지 않았다. 3악장은 1악장 관현악 서주와 비슷할 정도로 매우 짧다. 몰아치듯 연주하며 코다와 같은 인상을 줬다.

벨은 앙코르로 자신이 직접 편곡한 프레데리크 쇼팽의 ‘녹턴 20번’을 들려줬다. 피아노 곡으로만 익숙했는데 바이올린 곡도 베스트다.

마르쿠스 슈텐츠가 서울시향을 지휘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슈텐츠는 주로 맨손으로 지휘한다. 음악을 만드는데 가장 즉각적으로 임하기 위해 연주자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양손을 자유롭게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통제’는 사실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맨손은 지휘봉으로 주는 박자를 넘어선 연결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2부에서 슈텐츠와 서울시향은 몽환적 단계를 거쳐 원시적·야생적 단계로 넘어갔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가장 상징적인 인상주의 작품이에요. 드뷔시가 이 작품으로 보여주는 자유로움과 시인의 상상력을 음악적 감각으로 변화 시키는 능력은 마법 그 자체입니다. 저는 항상 이 시적인 걸작을 ‘봄의 제전’과 함께 연주하고 싶었어요.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는 대략 같은 시기를 살았고 파리에서 창작 활동을 펼쳤습니다. 참 굉장한 시대였죠. 그런데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 대해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찾았습니다. 지독하게 야만적이고 리드미컬한 에너지를 통해서 말이죠. 드뷔시는 플루트의 부드러운 선율로 시작하고 스트라빈스키는 바순의 좀 묘하게 부드러운 선율로 시작합니다. 두 작품이 이후에 전개되는 방향은 정말 극과 극입니다. 이 엄청난 대비를 함께 경험하고 싶어요.”

서울시향은 클로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연주했다.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에서 받은 인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다. 목신(牧神)은 숲, 사냥, 목축을 맡아보는 신으로 반은 사람, 반은 동물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판(Pan), 로마 신화의 파우누스(Faunus)에 해당한다.

슈텐츠의 손끝을 따라 주제 선율을 연주하는 플루트는 곡의 전체적인 인상을 지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나른한 오후를 표현한 조성감이 흐릿한 첫 선율은 드뷔시를 대표하는 멜로디다. 이어지는 호른과 하프의 앙상블이 매우 감각적이다. 이후에도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현악의 화음과 그 위에서 춤추는 목관악기의 선율은 매우 관능적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1부 ‘대지의 경배’(1~8곡)와 2부 ‘희생’(9~14곡)으로 구성돼 있다. 1913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 초연 당시 경찰까지 출동할 만큼 큰 소동이 일었던 ‘문제작’이었다. 슈텐츠는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며 거친 리듬을 관객 귓속으로 퍼날랐다. 100년이 넘는 에너지가 사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져 쾅쾅쾅 울렸다.

허명현 평론가는 “일일 권장량을 초과하는 조슈아 벨의 당도 높은 연주도 즐거웠지만, 오만가지 맛의 ‘봄의 제전’은 감탄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순간순간이 강렬한 표현을 가지면서도 이야기를 호쾌하게 이끌어 나갔다. 게다가 잘 쌓아올려진 소리 레이어는 아주 생생했는데, 어떤 좋은 오디오도 이 음악이 주는 생동감을 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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