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벨 “예술가 최고덕목은 배우려는 자세...한국관객은 ‘흥’ 느끼게 해줘”

쇼송·비외탕 곡으로 5월18·19일 서울시향과 첫 협연
???????한국인 유학생 장례비용 1000만원 보탠 사연도 화제

김일환 기자 승인 2023.05.16 16:53 | 최종 수정 2023.05.16 18:52 의견 0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진 조슈아 벨이 오는 5월 18일과 19일 서울시향과 첫 협연한다. ⓒ서울시향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56)은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다. 14세에 데뷔해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17세에는 미국 클래식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받았다. 이어 그래미상, 머큐리상, 그라모폰상을 휩쓸었다.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이름 앞에는 늘 ‘꽃미남 바이올리니스트’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바이올리니스트’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바이올린계의 핫 셀럽이다. 그런 그가 예술가의 최고 덕목은 ‘배움의 갈망’이라고 16일 서면 인터뷰에서 밝혔다.

“예술가는 계속해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지휘자들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여러 번 연주했지만, 직접 지휘해야 할 때는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했어요. 모든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연주하는 방식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하면서도 2011년부터 영국의 명문악단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즈 인 더 필즈(ASMF)’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네빌 마리너의 후임이었다. ASMF를 ‘음악 가족’이라고 칭한 그는 지휘를 통해 음악에 더 깊게 다가가면서 더 나은 음악가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올해엔 ASMF와 파가니니 협주곡을 녹음할 계획이다. 현대 작곡가들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저에게 맞는 작곡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5명의 미국 작곡가들에게 위촉한 ‘디 엘리먼츠’라는 곡을 오는 9월 초연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진 조슈아 벨이 오는 5월 18일과 19일 서울시향과 첫 협연한다. ⓒ서울시향 제공


벨은 오는 18일과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다. 한국 무대는 2018년 ASMF를 이끌고 공연한 이후 5년 만이다. 포디움에는 지휘봉 없이 양손으로 오케스트라와 소통하는 마르쿠스 슈텐츠가 선다. 벨은 “슈텐츠와는 10여년 전에 함께 공연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며 “한국에는 자주 왔지만 서울시향과는 첫 연주라 매우 기대된다”고 했다.

프로그램에 신경을 많이 썼다. 에르네스트 쇼송의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시’와 앙리 비외탕의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들려준다. 쇼송과 비외탕의 곡은 오케스트라가 자주 연주하지 않아 낯설 수 있지만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널리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이 곡들은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 더욱 각별해요. 쇼송은 외젠 이자이를 위해 ‘시’를작곡했어요. 제 스승이었던 요제프 긴골드는 이자이의 제자였고, 이자이는 비외탕의 제자였죠.”

그러면서 각 곡들의 특징을 자세히 짚어줬다. 먼저 쇼송의 ‘시’에 대해서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다. 어려서부터 이 곡을 사랑해왔다. 음악으로 지은 시 같은 곡이다. 곡의 제목도 딱 어울린다. 이 곡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비외탕은 니콜로 파가니니 이후 19세기의 슈퍼스타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은 매우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벨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과는 다른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지난 40년간 자주 연주되지 않았지만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곡이다. 마치 작은 오페라 같다. 극적이며, 아름답고, 강렬하다. 느린 악장은 오페라의 길고 아름다운 아리아로도 볼 수 있다.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벨은 항상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올해 여름에는 중국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그는 “익숙한 음악이 다르게 들릴 것이다”라며 “음악을 다른 방법으로 즐기는 재미가 있다”고 전했다.

팬데믹 기간에는 소프라노인 아내 라리사 마르티네스와 ‘보이스 앤드 더 바이올린’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이올린과 성악을 위해 작곡된 좋은 곡들을 찾으면서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같은 유명한 곡도 편곡했다. 그는 “이제는 함께 공연할 만큼 레퍼토리가 쌓였다. 바이올린 소리는 사람의 목소리와 닮았기 때문에 목소리가 어떻게 쓰이는지, 뉘앙스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배우면 바이올린에도 적용할 수 있어 좋은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진 조슈아 벨이 오는 5월 18일과 19일 서울시향과 첫 협연한다. ⓒ서울시향 제공


벨은 한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보여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몇 해 전 벨의 미국 매니지먼트사에서 인턴십 중이던 한국인 유학생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현지 장례비용과 한국으로의 운구 비용 마련을 위한 온라인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그는 마감 하루 전까지도 채워지지 않았던 1000만원 가량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채워 넣어 팬들을 놀라게 했다. ‘지한파’로 불릴만하다.

한국인 음악가들과의 특별한 인연도 언급했다. 그는 “11세 때 뉴욕주에 있는 메도우마운트 여름 캠프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 중에 첼리스트 박상민이 있었죠. 4시간 동안 연습하고 난 후 함께 카드와 탁구를 쳤어요. 그때 캠프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와서 연주했던 것도 기억나요.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 한국인 연주자들이 많았는데 내가 다닌 인디애나 음악대학 재학생의 절반이 한국인이라고 농담할 정도였죠. 이번 한국 방문 때 이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벨은 2007년 거리의 떠돌이 악사로 변장하고 버스킹을 한적이 있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워싱턴 지하철역에서 3억8000만원짜리 바이올린으로 45분간 6곡을 연주해 32달러를 벌었다. 연주하는 동안 현장을 오간 사람은 1097명이었는데 대부분은 단 1초도 연주를 듣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단지 일곱 명의 청년이 1분 남짓 지켜보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일상에 쫓겨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들을 못 보는 ‘현대인의 모습’을 꼬집으려 이런 공연을 기획했다. 그렇지만 한국 팬들은 ‘흥’을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존재라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관객을 꼽으라면 한국 관객이에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는 관객, 젊은 관객들이 많죠.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흥을 느낄 수 있어요.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입니다. 한국 공연은 아주 아주 특별해요. 매년 혹은 격년에 한 번이라도 오고 싶어요. 한국 친구에게 고급 식당 한두곳과 허름하지만 맛있는 집을 찾아달라고 할겁니다.”

/kim67i@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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