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삼 작사 유일한 노래 ‘황혼’ 연주...제3회 이안삼 가곡제 8월23일 개최

시인 21명 참여·성악가 11명 출연 ‘풍성’
‘그대가 꽃이라면’ 솔로·합창 두 번 선사"
스승 김동진의 곡 ‘내 마음’ 연주도 눈길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7.31 09:48 | 최종 수정 2024.07.17 09:11 의견 0
한국 예술가곡의 거장 이안삼 작곡가의 3주기를 추모하는 ‘제3회 이안삼 가곡제’가 오는 8월 23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다. ⓒ이안삼카페&이안삼가곡제운영위원회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작곡가 이안삼(1943~2020)은 지난 2018년 5월 그동안 자신이 작곡한 금쪽같은 가곡 138곡을 모아 ‘이안삼 가곡집 제4집’을 출간했다. 570여 쪽이 넘는 두툼한 크기는 ‘한국 가곡의 교과서’로 불려도 손색없을 만큼 한국 예술가곡 거장이 흘린 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안삼은 많은 시인들과 교류했다. 이미 써놓은 시보다는 “제가 곡을 붙일 테니 작품 하나 주세요”라며 적극적으로 창작을 북돋웠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가슴으로 쓴 맑고 고운 시를 그에게 보냈다. 애지중지 쓰다듬으며 자신의 장기인 아름다운 선율을 붙여 세상에 내보냈다. 가곡집 4집 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힌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그대가 꽃이라면’도 각각 김명희 시인, 문효치 시인, 장장식 시인의 작품이다.

“노을빛 고운 하늘 지난날들 눈에 어려 / 서산에 지는 해는 등불처럼 붉게 타올라 / 지나간 세월 속에 사라진 아득한 날들 / 해 저녁 노을 불빛 가슴에 안고 아련히 번져만 오네 / 나 이제 미련 없이 모두 떠나보내고 / 지금은 나그네 되어 빈 손으로 길 떠나지만 / 바람처럼 흔들리다 홀로 떠나가리라 / 아름답던 기억들만 가슴에 안고 / 노을길 걸어가리라”

그런데 시인에게 요청하지 않고 그가 직접 시를 지어 곡을 붙인 노래가 한 곡이 있다. 바로 ‘황혼’이다. 2005년에 만들었다. 오랜 교직 생활 마감을 앞두고 쓴맛 단맛 봐가며 달려온 60여년의 생을 돌아보는 자전적 내용이다. 인생의 큰 챕터를 마무리하는 담담함 속에서, 그래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의지가 읽혀진다. 선생은 블로그에서 이 노래를 만든 과정을 소상히 밝힌 적이 있다.

<오랫동안 김천중학교와 김천고등학교 등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다 2006년 2월에 41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정년퇴임을 몇 개월 앞둔 어느 가을날이다. 수업을 마치고 작품을 쓰다 보니 벌써 날이 저물었다.

교문을 나와 천천히 걸으니 단골 막걸리집 ‘선주골’ 앞에 이르렀다. 탁주에 두부전 하나 시켜놓고 창가 불빛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들녘을 바라봤다. “아 이제 떠나야 하는구나. 긴 방학이 끝없이 이어질 텐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미 서울 광화문 뒤편 ‘경희궁의 아침’에 거처를 마련해 놓았다. 나 홀로 김천을 떠나 작품 활동의 본거지를 서울로 옮기기로 했지만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 심란했다.

갑자기 유행가를 부르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럼 내가 직접 한번 지어볼까’ 생각했다. “아주머니~ 종이 한 장만 줘요.” 쓱싹쓱싹 가사를 썼지만, 앞으로 읽고 뒤로 읽어봐도 맛이 없었다.

글 쓰는 게 전공이 아니니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영 마땅치가 않았다. 다시 고치고 또 고치다보니 어느새 찌그러진 양철 주전자를 반이나 비웠다. 그것도 모자라 며칠 동안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 겨우 짜깁기한 뒤 마침내 선율을 달았다. 이렇게 해서 ‘유행가 같은 황혼’이 탄생했다.>

그는 ‘황혼’을 공식적으로 무대에 올리지 않았다. 소프라노 유미자의 목소리로 녹음된 음원이 유튜브에 있지만, 실제 공연장에서는 불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유행가 스타일로 전개되는 곡이 두고두고 마음에 쓰인 모양이다.

그러다 정선화·김지현·이윤숙·이정원·남완·오동국이 주축이 된 ‘이안삼 가곡과 함께 하는 2020 신년음악회’에서 처음 ‘황혼’이 무대를 밟았다. 선생은 2018년부터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병석에 누웠고, 그런 선생님의 건강회복을 기원하며 바리톤 남완이 공식 무대에서 처음 불렀다.

‘제3회 이안삼 가곡제’가 오는 8월 23일(수)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다. 77세,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난 이안삼 작곡가 3주기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테너 이정원이 ‘황혼’을 부른다. 1부 첫 곡으로 ‘황혼’을 내세운 것은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시인들과 성악가들의 마음이 깊기 때문이다. 이정원이 이 곡을 어떻게 해석해서 부를지 기대된다.

이번 음악제는 이안삼의 곡 18곡과 다른 작곡가의 곡 7곡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씨줄과 날줄처럼 오랜 시간 이안삼과 인연을 맺은 시인들은 모두 21명이 참여했다. 프로그램 선곡은 이안삼의 곡을 바탕으로 시인들의 신청곡 중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추천받아 반영했다. 세 번째를 맞은 가곡제의 위상을 넓히고 이안삼 작곡가가 생전에 한국 예술가곡 부흥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한 뜻을 살리고자했다.

이안삼이 곡을 붙인 노래는 고영복 ‘나지막한 소리로’, 고옥주 ‘위로’, 공한수 ‘오월의 노래’, 김명희 ‘그대 어디쯤 오고 있을까’, 노중석 ‘그 사랑’, 다빈 ‘어느 날 내게 사랑이’, 문효치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유자효 ‘사랑하는 아들아’, 이명숙 ‘고독’, 이향숙 ‘산’, 장장식 ‘그대가 꽃이라면’, 전경애 ‘금빛 날개’, 전세원 ‘그 사람’, 정치근 ‘그리운 친구여’, 조재선 ‘황혼의 숲’, 최숙영 ‘진주의 노래’, 황여정 ‘물한리 만추’다.

다른 작곡가의 작품도 선보인다. 김동진 ‘내 마음’(김동명 시), 김성희 ‘사랑’(조영황 시), 박경규 ‘그대 그리움’(정성심 시), 윤학준 ‘마중’(허림 시), 임긍수 ‘경포 연가’(한상완 시), 정덕기 ‘매미’(김필연 시), 정영택 ‘흐르는 강물처럼’(서영순 시)이 연주된다.

주어진 시간에 한 곡이라도 더 들려주기 위해 사회자를 세우지 않는다. 추모영상 상영, 시인과 작곡가 소개 등도 생략하고 오로지 연주에만 몰입한다. 무대 배경 자막으로 모든 노래와 순서를 안내한다.

이안삼 작곡가의 스승인 김동진 작곡가의 대표곡 ‘내 마음’을 두 번째 순서로 연주하고, 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대가 꽃이라면’을 솔로와 합창으로 두번 들려준다.

이안삼과 오랫동안 콘서트에서 호흡을 맞춘 톱클래스 성악가 11명이 음악회를 빛낸다. 소프라노 임청화·정선화·김지현·이윤숙·정혜욱·김성혜, 테너 이현·이정원·이재욱, 바리톤 송기창·장철준이 출연한다.

피아노 반주는 이성하와 장동인이 맡고, 바이올리니스트 김희명과 첼리스트 강지현도 힘을 보탠다. 기획 김정주, 사진과 영상 촬영은 김문기 작가가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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