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로 정성들여 키운 잡초 갑자기 제거...‘인간 이율배반적 행위’ 들춰낸 이다슬 작가

‘우리 꿈나라에서 만나지 말아요’ 개인전
​​​​​​​28일까지 을지로 스페이스유닛4 개최

김일환 기자 승인 2023.10.11 16:35 의견 0
이다슬 작가는 오는 10월 28일까지 서울 을지로 스페이스유닛4에서 ‘우리 꿈나라에서 만나지 말아요’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다. ⓒ스페이스유닛4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지난해 10월이다. 제주 월정리 밭담(돌을 쌓아 자신의 밭 경계를 표시한 담)에 이다슬 작가의 ‘종달새 날아오르면 나를 꼬옥 안아주세요_가을이 오기 전에’라는 감각적이 제목의 미술작품이 설치됐다. 2022 제주세계유산축전 ‘불의숨길 아트프로젝트’ 행사로 열린 전시다.

작가에게 잡초는 뽑아서 제거해야 할 존재임과 동시에 정성을 다해 키우는 대상이다. 이 작업은 모순된 두 가지의 행위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하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풍경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영양가 없는 모래 위 죽어가는 잡초들(사실은 망초와 개망초다)에게 1008개의 영양제를 투여하는 작업을 통해 난개발로 인해 사라져 가는 제주의 풍경과 인간 행위의 부조리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밖에서만 보지 말고 작품 3분의 1 지점까지 들어가서 감상하세요. 바람 불면 더욱 좋습니다. 오전 7시와 10시 사이를 강추합니다.” 작가는 친절하게 이런 팁까지 주며 자신의 작품을 깨알 홍보했다.

제주 출신의 이다슬 작가가 서울 을지로 143에 위치한 스페이스유닛4(SPACEUNIT4)에서 ‘우리 꿈나라에서 만나지 말아요’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다. 11일(수)부터 28일(토)까지 관객을 맞는다.

스페이스유닛4는 작가와 평론가가 함께 운영하는 예술실험공간이다. 폭넓은 예술적·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다슬 작가는 오는 10월 28일까지 서울 을지로 스페이스유닛4에서 ‘우리 꿈나라에서 만나지 말아요’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다. ⓒ스페이스유닛4 제공


이번 전시 ‘우리 꿈나라에서 만나지 말아요’는 작가가 지난 3년간 천착해왔던 ‘잡초 재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잡초 재배 프로젝트’는 4개의 이야기와 5개의 에피소드로 계획됐다. 그 시작은 지난해 8월 아트스페이스 신사옥 ‘종달새 날아오르면 나를 꼬옥 안아주세요’다. 그리고 올해 3월 오픈 스페이스 배 ‘단풍을 볼 수 없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이제 세 번째 이야기 ‘우리 꿈나라에서 만나지 말아요’를 시작한다.

‘우리 꿈나라에서 만나지 말아요’는 딸 아이의 잠자리 인사다. 매일 밤 꿈에 나타나는 무서운 동물 때문에 꿈꾸는 것을 두려워하는 딸은 아빠도 꿈나라에서는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다. 얼마나 무섭고 싫었으면 그렇게까지 말을 했을까 싶지만 돌이켜보면 작가에게 잡초라는 존재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다슬은 제거 대상인 잡초를 정성껏 재배하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모순을 표현해왔다. 그는 지난 전시에서 식물 재배 조명등과 함께 영양제를 투여해 인위적으로 잡초들을 키우는 상황을 연출했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잡초 재배가 아닌 잡초 제거를 택하면서, 이전과 역전된 행보를 취한다. 전시장 한쪽에는 4년 넘게 애정을 쏟아 부은 잡초들이 더 이상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사각형 트레이에 올라가 있다. 불과 7개월 전, 부산(스페이스 배의 전시)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잡초들은 죽어서 시커멓게 변했고 말라 버린 줄기와 떨어진 이파리들, 그리고 지저분한 플라스틱 화분은 처음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트레이는 잡초들의 햇빛 나들이를 위한 것이지만 지금의 그 모습은 너무나 차다.

작가가 가장 사랑했던, 그래서 특별히 화분까지 만들어 주었던 잡초의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가혹할 정도로 눈부신 초록색 조명 스탠드는 사랑했던 존재를 부정하는 형태이자 색이다. 또한 침착한 나무로 만들어진 좌대 위에 놓인 물 조리개는 7년이 넘는 시간동안 잡초들에게 물을 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활동할 일이 없다.

이다슬 작가는 오는 10월 28일까지 서울 을지로 스페이스유닛4에서 ‘우리 꿈나라에서 만나지 말아요’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연다. ⓒ스페이스유닛4 제공


잡초들의 성장 과정을 촬영한 사진 속 잡초와 그 안에서 살아갔던 곤충들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잡초들의 죽음에 관한 죄책감을 면죄 받기 위한 장치로서 스님의 부적과 주문을 담은 영상이 함께 전시된다. 온갖 애정을 쏟아왔던 잡초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쓸모없는 행위로, 작가는 그의 관심사인 ‘한 사람에 의한 이율배반적 행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이다슬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으며, 사진을 주매체로 시작해 복합매체 설치로 작업을 확장해왔다. 2012년 아일랜드 코크의 베이스먼트 프로젝트 스페이스와 2019년 제주 예술곶 산양 등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23년 부산 아트스페이스 배, 2022년 서울 아트스페이스 신사옥, 2021년 제주 스페이스 126 외 여러 공간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202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샌프란시스코 아츠 커미션에서의 그룹전과 2022 제주세계유산축전 ‘불의숨길 아트프로젝트’, 2022 아트페스타 인 제주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kim67@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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