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베를린필 간판모델’ 됐다...내년부터 모든 연주자의 꿈 상주음악가 선정

세계 최고악단 6년만의 내한 11·12일 예술의전당 공연
조성진은 페트렌코와 첫 호흡 ‘베토벤 협주곡 4번’ 연주

박정옥 기자 승인 2023.11.11 09:50 | 최종 수정 2023.11.11 09:52 의견 0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오른쪽)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빈체로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조성진은 매우 직관적인 연주자입니다. 내년부터 베를린필의 상주 음악가로 함께하게 됐습니다.”

조성진이 2024/2025시즌 베를린필의 ‘간판 모델’ 역할을 한다. 모든 연주자들의 꿈을 이룬 것이다. 깜짝 소식은 기자 간담회 중간에 발표됐다.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궁화홀.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마에스트로 키릴 페트렌코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6년 만에 방문한 베를린필은 11일과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한다. 조성진은 12일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다. 베를린필은 통산 7번째 내한공연이다.

안드레아 쥐츠만 베를린필 대표는 “조성진의 상주음악가 선정은 사실 유럽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다”라며 “유럽 관객들이 한국 신문을 읽지는 못할 테니까 밝혀도 될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조성진과 베를린필은 특별한 기회에 첫 협연을 한 만큼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한다”며 “조성진은 음악가로서 더 다양한 면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인이 베를린필 상주 음악가(artist in residence)로 발탁된 건 조성진이 처음이다. 아시아 연주자로는 2008/2009시즌 일본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에 이어 두 번째다. 쥐츠만 대표는 “상주 음악가는 오케스트라 협주곡 1∼2개를 연주하게 되고, 실내악에도 참여한다”며 “30여명의 음악가들이 함께 하는 카라얀 아카데미 교류 프로그램에도 원하면 참여하게 된다. 아티스트의 다양한 면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성진은 2017년 11월 독일 베를린에서 피아니스트 랑랑의 ‘대타’로 라벨의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하면서 베를린필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약 2주 뒤 베를린필이 내한하면서 같은 곡으로 다시 호흡을 맞췄다. 2020년 12월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지털 콘서트홀 녹화 공연에서 관중 없이 베를린필과 협연했다. 이때 연주곡은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키릴 페트렌코(오른쪽)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벌써 6년이나 됐어요. 시간이 참 빨라요. 그때도 11월이었죠. 처음 베를린필을 만났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많은 연주자들이 베를린필과 협연하는 게 꿈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오케스트라잖아요. 설레지만 긴장도 많이 됐죠. 세계에서 가장 연주를 잘하고, 특별한 사운드를 지닌 악단과 또다시 연주할 수 있게 돼 영광입니다. 이번이 프로그램 기준으로 세번째 컬래버레이션인데 감사하죠. 가장 좋아하는 협주곡 중 하나인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으로 합을 맞출 수 있어 더 기뻐요.”

조성진은 선곡 과정도 설명했다. “작년 여름쯤에 결정됐다. 오케스트라 측이 고전 레퍼토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생각한 곡이다. 제안했더니 곧바로 수락했다”라며 “한국에서 이 곡을 연주한 마지막 공연이 2019년인 것 같다. 꽤 오래돼서 다시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베를린필과 협연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제가 베를린에 살고 있기도 하다. 베를린필에 음악가 친구가 많아서 할 때마다 재미있다”고 밝혔다.

베를린필 단원인 바이올리니스트 에바-마리아 토마시는 조성진의 데뷔 무대를 떠올리며 “랑랑이 연주를 못 하게 돼 조성진이 대신 하게 됐는데, 당시 23세라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고 회상했다.

2019년부터 베를린 필의 열두번째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키릴 페트렌코는 “코로나로 오랫동안 연주를 못 해 이제서야 진정한 여정을 시작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을 같이 실행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한 적이 있지만 베를린필과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

베를린필은 20세기 들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재임 기간 1955∼1989), 클라우디오 아바도(1989∼2002), 사이먼 래틀(2002∼2018)의 지휘 아래 자신들만의 색채를 가꿔왔다.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무궁화홀에서 열린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드레아 쥐츠만 오케스트라 대표, 피아니스트 조성진, 키릴 페트렌코 상임지휘자, 단원 에바-마리아 토마시, 단원 필립 보넨. ⓒ빈체로 제공


베를린필은 첫날(11일)에 모차르트 ‘교향곡 29번’, 베르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 개의 작품’,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들려준다. 이튿날(12일)에는 조성진과의 협연은 물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연주한다. 페트렌코는 “브람스와 슈트라우스는 베를린필의 사운드 완성에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다”라며 “카라얀 등 베를린필의 주요 지휘자들이 이 곡들로 베를린필 사운드를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쥐츠만 대표와 단원들은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필에 대해 “또 다른 시대가 시작됐다”고 입을 모았다. 토마시는 “최근에 카라얀, 아바도와는 또 다른 흥미진진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페트렌코와 음악을 하다 보면 같은 레퍼토리를 연주해도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음악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솔직한 음악가다. 어떤 지휘자는 ‘작곡가는 이렇게 썼지만, 나는 다르게 하는 걸 좋아한다’며 작곡가를 넘어서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페트렌코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또 다른 단원인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보넨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다듬는 정말 디테일한 작업을 한다”며 “자신이 원하는 음악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으면서도 오케스트라의 전통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페트렌코와 함께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조성진 역시 “베를린에서 리허설을 했을 때 너무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존경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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