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귀에 착착 감긴 신작 한국 가곡 14곡...보름달 뜨듯 ‘휘영청 장동인’

신작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콘서트
​​​​​​​피아노 반주뿐만 아니라 작곡 뒷이야기 곁들여 훈훈공연

박정옥 기자 승인 2024.03.29 17:55 | 최종 수정 2024.03.30 21:23 의견 0
작곡가 장동인이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작곡가 장동인의 힘이다. 14곡 모두가 귀에 착착 감겼다. 무엇을 부르든 ‘고막여친’ ‘고막남친’의 마법이 펼쳐졌다. 아직은 낯선 신상 우리 가곡들이지만 멜로디가 쉽고 편안해 금세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앞으로 서너 번 더 듣게 된다면 흥얼흥얼 따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장동인이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아이러브아트센터(EYE LOVE ART CENTER)에서 한국 신작 가곡 제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꿈에서 데려온 노래’라니! 멋진 타이틀이다. 공연에 앞서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를 설명해줬다.

“저는 시를 마음속에 품고 잠에 들어요. 시와 주인공이 되어 꿈속을 헤매는 동안 귓가에 화음과 선율이 아련히 들려옵니다. 아침에 눈을 떠 어젯밤 꿈속에 흘러나온 음악을 되새기며 음표 하나하나를 옮겨 적습니다. 하지만 꿈에서 떠온 샘물, 즉 영감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고 흘러내리죠. 더듬더듬 옮겨 적은 짧은 악구의 앞뒤에 살을 덧붙여 하나의 곡을 완성합니다. 이처럼 저의 음악적 영감은 꿈에서부터 찾아옵니다. 그런 이유로 꿈속을 헤엄치듯 여러 조성을 이리저리 넘나드는 것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곡가 장동인이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장동인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 작곡뿐만 아니라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다. 출연 성악가 라인업도 짱짱하다. 소프라노 임청화·최예슬·라하영, 테너 강신주·타피에브 누르카낫, 바리톤 김우주, 어린이 성악가 정승민이 나왔다. 시인 전하나는 시낭송으로 음악회에 릴렉스를 선사했다.

거기에 원훈기(바이올린)·윤석우(첼로)·윤승호(플루트)는 미니 앙상블을 이뤄 아름다운 우리 시에 선율을 붙인 한국 가곡에 팔딱 팔딱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바리톤 김우주는 노래와 진행까지 맡아 1인2역 활약했다. 장동인은 연주 사이사이에 작곡 스토리를 털어놓으며 흥미진진한 시간을 만들었다.

첫 곡으로 ‘Happy Birthday to Me...’를 연주했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기악곡이다. 신작 가곡 1집을 칭찬해 주고 또한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자기 자신을 쓰담쓰담 해주는 셀프 축하곡이다. 첼로를 연주한 윤석우는 장동인의 ‘군대 형’이다. 두 사람은 국방부 군악대에서 함께 생활했다. “당시 형의 연주를 들었는데 반했다. 언젠가 작품 발표회를 하면 꼭 모시고 싶다고 미리 약속했다. 드디어 오늘 함께 하게 됐다”며 기뻐헀다. 끈끈한 전우애다.

소프라노 라하영이 장동인의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봄이 왔네’(공한수 시)는 가곡집 제목 ‘꿈에서 데려온 노래’의 모티브가 된 곡이다. 정말 꿈에서 데려온 노래다. 그는 “시를 받고는 어떻게 노래를 만들까 며칠 동안 고민했다. 한 줄 한 줄 읽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라며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바람에 벚꽃이 펄펄 날렸다. 또 ‘동막골 소녀’처럼 힘껏 달리기도 했다. 퍼뜩 잠에서 깨어나 이런 풍경을 음표로 묘사했다”고 밝혔다.

장동인은 노래에 들어있는 여러 전경을 피아노로 직접 터치해 보여주었다. 곡을 들을 때 이런 부분에 집중해 들으면 더 즐겁게 들을 수 좋다는 감상팁을 준 것이다. 친절한 장동인이다. 소프라노 라하영의 목소리를 타고 봄이 성큼 다가왔다.

이어 라하영은 ‘속삭임이 날아갔네’(이현경 시)를 들려줬다. 현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장동인은 “물감이 스며드는 것처럼 화성이 교묘하게 감춰지고 교차하는 매력적인 곡이다”라고 소개한 뒤, 곡의 흐름에 따라 피아노를 치는 손의 위치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남녀가 처음 만나 서로 데면데면할 때는 건반에서 왼손과 오른손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랑을 느끼며 좋은 감정이 생길 때는 왼손과 오른손이 가까워진다”고 설명했다. 애틋한 감정이 싹트는 순간을 청각을 뛰어넘어 시각으로까지 담아내는 장동인 스타일의 작곡 포인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프라노 최예슬이 장동인의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서귀포 아리랑’(오안일 시)은 두 가지 측면에서 눈길을 끌었다. 노랫말이 모두 제주도 방언으로 되어 있다. 우리 귀에 익숙한 사투리도 있고 처음 들어본 것도 즐비하다. “놀멍 쉬멍 힐링 해영/ 건강 증진하민 일 잘해여진다” 등을 표준말로 따로 적어 스크린에 띄워줬다. 그리고 아리랑이라는 제목이 붙으면 왠지 우리의 전통 정서인 ‘한’이 짙게 배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예상이 깨졌다. 전체적으로 세련된 느낌이었고 오히려 힘차게 도약하는 파워가 느껴졌다. 아리랑의 파격이다.

소프라노 최예슬은 ‘서귀포 아리랑’을 부른 뒤 ‘잔설’(조재선 시)도 노래했다. 장동인은 이 곡으로 지난해 열린 당진 한국가곡 대축제 콩쿠르에서 작곡부문 입상했다.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말이라서 울컥했다. 나는 응달 한 구석에 채 녹지 못하고 앙상하게 남아있는 눈이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고, 춘삼월 봄바람 불면 나를 아예 잊어달라는 당부가 애절하다. 최예슬은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두고 떠난 연인의 절절함을 잘 표현했다.

소프라노 임청화가 장동인의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소프라노 임청화는 ‘머리산 아리랑’(공한수 시)을 연주했다. 머리산은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으로, 지금은 흔히 마니산으로 부른다. 정상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참성단이 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성스러운 장소다. 역시 베테랑이다. K클래식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임청화는 한국적인 것의 소중함을 파노라마처럼 노래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테너 강신주가 장동인의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테너 강신주는 ‘본향’(한상완 시)을 불렀다. 본향(本鄕)은 본디의 고향이다. 우리가 태어난 호적상의 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영혼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순수한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 강신주는 “사랑으로만 엉겨 버무려지는/ 그때나 본향이 아닐까”라는 대목에서, 시인이 생각하는 삶의 근원적 문제를 잘 묘사해 브라보 환호를 이끌어냈다.

‘가슴에 담은 별’(임하영 시)은 사부곡(思父曲)이다. 하늘로 떠나신 아버지를 그리는 노래다. 강신주가 “지금까지 바라보며/ 지켜 주시던 그 마음으로/ 잘 살아라 하시며/ 그렇게 저 먼 곳으로 가셨어도/ 가슴에 담은 저 별처럼/ 언제나 빛나는 당신에 사랑을/ 기억하고 간직하렵니다“라고 노래할 때 눈시울 붉어지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테너 타피에브 누르카낫이 장동인의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타피에브 누르카낫은 카자흐스탄 출신의 테너다.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그는 ‘수선화’(이석수 시)를 불렀다. 시집 간 누나를 그리워하는 노래인데, 누르카낫도 카자흐스탄에 있는 누나를 생각하며 불렀다.

바리톤 김우주가 장동인의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바리톤 김우주는 ‘깨벗고’(이해선 시)를 들려줬다. ‘깨벗고’는 ‘발가벗고’의 전라도 사투리다. 예전에 어린아이들이 잠자리에서 오줌을 싸면 머리에 키를 뒤집어 쓰고 소금을 얻으러 다녔다. 그러면 어른들은 “어이구~ 또 쌌냐”하면서 부지깽이나 빗자루로 장난삼아 키 쓴 머리를 두들기고는 됫박에 소금 한줌을 주곤 했다.

어린이 성악가 정승민 군이 장동인의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이 추억 속의 풍경을 서울 한복판으로 데려왔다. 노래를 부르던 김우주가 사인을 주자 객석에 있던 한 어린이가 무대로 나왔다. 그리고는 실로폰으로 동요 ‘학교종이 땡땡땡’을 연주하고는 오줌싸개로 변신했다. 깜짝 퍼포먼스와 함께 오랜만에 보는 키와 됫박도 정겨웠다.

어린이 성악가 정승민 군(예원학교 1학년)은 멋진 연기를 선보인 뒤 동요 ‘초록향기’(장동인·김만희·양아인 시)를 불렀다. 또박또박 발음으로 정확히 음정을 지켜 불렀고, 중간중간 율동도 곁들였다. 싱그러웠다.

김우주는 ‘그 곳에 사랑이 있니’(이해선 시)를 선사했다. 하늘하늘, 나풀나풀, 졸졸졸 등의 의태어가 생기 있게 표현된 곡이다. 시적 화자는 갈대밭, 코스모스 꽃길, 시냇물을 따라 여기저기를 다니며 사랑을 찾는다.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 갈망하는 아름다운 사랑은 과연 어디에 숨어있을까라고 생각하게 해줬다.

최예슬과 김우주가 장동인의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라하영과 강신주가 장동인의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듀엣송도 두 곡 선물했다. 최예슬과 김우주는 ‘결혼을 축하합니다!’(이해선 시)를 불렀다. 할머니의 사랑이 가득하다. 먼 훗날 결혼식을 하게 될 손자와 손녀를 미리 축하하기 위해 할머니가 쓴 시에 곡을 붙였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을 마지막 부분에 넣었다. 빛나는 센스다.

라하영과 강신주가 호흡을 맞춘 ‘아름다운 이 밤’(서영순 시)은 현대판 로미와 줄리엣이 생각나는 러브송이다. 장동인은 이 곡으로 뮤직 비디오까지 찍었다. 다른 곡과 마찬가지로 애정 있는 곡이라는 방증이다.

전하나 시인이 장동인의 한국 신작 가곡 1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 출판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제주에 살고 있는 전하나 시인은 자신이 쓴 ‘추자도 연가’를 낭송했다. 전 시인은 “전국을 여행하다 추자도 풍광에 반해 아예 이곳으로 내려와 살고 있다”며 “여기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으니 제게는 귀한 섬이다”라고 예찬했다.

장동인은 젊다. 흰색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옷도 두 번씩 갈아입고, 작은 반짝이 귀고리도 하는 등 개성만점의 작곡가다. 자기만의 아이덴티티가 확실하다. 그래서 내일이 더 기대된다. 공연을 마칠 때쯤 콘서트장 뒤편 유리창으로 환한 보름달이 떴다. 장동인의 휘영청 앞날을 보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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