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봄-여름-가을-겨울-봄...아드리엘 김의 스토리텔링 빛난 부천아트센터 1주년

오케스트라디오리지널과 함께 페스티벌 개막 공연
'리웨이크' 주제로 미니멀리즘 네오클래식 음악 선사
바이올리니스 한수진·오르가니스트 최민지 등 협연

민은기 기자 승인 2024.05.25 10:58 | 최종 수정 2024.05.25 13:09 의견 0
지휘자 아드리엘 김과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부천아트센터 개관 1주년 페스티벌 개막공연을 마친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아드리엘 김이 2부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16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그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을 이끌고 부천아트센터 개관 1주년 페스티벌 개막 무대에 섰다. ‘곡 특유의 분위기를 창조해 내는 감각과 더불어 통찰력 있는 곡 해설 능력을 갖춘 지휘자’(일간지 라인팔츠)라는 평가를 받으며 현재의 클래식을 대표하는 창의적인 지휘자로 손꼽힌다.

“이번 공연의 부제는 ‘리웨이크(RE: wake)’, 즉 ‘다시 깨어나다’입니다. 그래서 ‘시간의 초월성’을 테마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네오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을 준비했어요. 이들은 전통의 고전미와 첨단의 현대미를 조화롭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반복이 되풀이되지만 그 속에도 미세한 변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무의식을 파고 드는 음악이죠.”

아드리엘의 김의 스토리텔링이 눈에 띈다. 막스 리히터의 ‘리컴포즈드 사계’ 중 봄과 여름을 연주하고, 이어 역시 막스 리히터의 ‘어텀뮤직2’로 가을을, 올라퍼 아르날즈의 ‘오직 바람만이’로 겨울을, 그리고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봄’으로 다시 봄을 소환해 사계절의 순환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16일 아드리엘 김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과 호흡을 맞춰 막스 리히터의 리컴포즈드 사계를 연주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나왔다. 독일 태생의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의 ‘비발디 사계 리컴포즈드(Recomposed by Max Richter: Vivaldi, The Four Seasons)’ 중 봄과 여름을 연주했다. 리히터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 선수다. 안토닌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에서 75%를 지우고 25%만 남겨, 이를 자르고 붙이고 반복하면서 재구성했다. 그래서 다시 작곡했다는 ‘리컴포즈드’를 붙였다. 2012년에 발매한 앨범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빅히트했다.

한수진은 이토록 햇볕이 좋은데도 왠지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지는 봄날을 담아냈다. 공원에 가득한 노랑·빨강 꽃을 봐도 마냥 기쁘지 않고 그냥 먹먹해지는 날이 있다. 한수진의 연주한 봄이 그랬다.

하지만 여름날은 강렬했다. 현대 댄스음악이 가지고 있는 특성인 끊임없는 펄스가 엿보였다(1악장). 바이올린과 첼로의 솔로 파트가 가슴을 멍하게 만들더니(2악장), 두 악기는 금세 돌변해 배틀을 벌이면서 긴장감을 높이기도 했다(3악장). 좋았던 날씨가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려 한바탕 비를 퍼붓는 모습 같았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막스 리히터의 ‘어텀뮤직2(Autumn Music 2)’로 가을날을 선물했다. 국내 초연이다. 피아노의 서주가 끝나면 바이올린의 독주가 배턴을 이어받고, 다시 비올라와 첼로가 가세하며 전체적으로 사운드를 키워 나갔다.

정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한 장면을 생각나게 했다. 이 곡은 2006년 발매된 ‘Songs from before’ 앨범에 수록됐는데, 총 12곡(재발매 때는 13곡을 담았다) 중 4곡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인용한 내레이션을 더해 눈길을 끌었다.

아이슬란드 태생의 올라퍼 아르날즈의 ‘오직 바람만이(Only the Winds)’는 원래 펄스가 더해진 전자 음향이 사용됐지만,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현악 앙상블과 피아노로 편곡된 버전으로 들려줬다.

피아노의 서주 후에 호른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고 가녀린 비올라가 뒤를 이었다. 일반적으로 현대 작곡가들의 악보는 저작권 문제로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아르날즈는 음악의 보편화를 위해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공개해 놓았다. 현대 음악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한 친절한 배려다.

봄에서 시작해 다시 봄으로 왔다. 아드리엘 김의 번뜩이는 재치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봄(Primavera)’은 아름답고 소박한 피아노와 현악앙상블을 위한 작품이다. 전반부는 온유하고 평화롭게 진행돼 광고나 영상에 많이 사용된다. 후반부는 스케일이 빠른 현악기 선율로 이루어져 있어 변화무쌍하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선사한 계절 순환 음악의 피날레로 안성맞춤 선곡이다.

2부의 마지막 곡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작은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 1번과 2번’. 원래 스트라빈스키가 자녀들의 위한 교육용으로 만든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자녀들이 연주할 오른손 부분은 쉽게, 자신이 연주할 왼손 부분은 복잡하게 만들었다)이었는데, 나중에 오케스트라 모음곡으로 편곡했다. 전체 5분 남짓으로 짧았지만 두 곡 모두 네 악장으로 구성돼 있어 균형잡힌 형식미도 느낄 수 있었다.

오르가니스트 최민지가 16일 아드리엘 김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과 함께 프랑시스 풀랑크의 오르간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1부는 요제프 하이든의 오페라 ‘무인도’의 서곡으로 열었다. 무인도에서 만난 남녀 네 명의 사랑과 상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하는 스토리를 담았다.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은 각각 다른 네 개의 얼굴이 돌변하듯, 악기들의 조합과 상호작용을 통해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현했다.

이어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1번 D장조 ‘고전적’의 3·4악장을 들려줬다. 25세 때 작곡했는데 18세기 고전주의 스타일에서 받은 영향을 담아내고 싶어, 제목을 ‘Classical’이라고 붙였다. 주요 3화음이 서로 충돌하는 경쾌한 리듬(3악장)과 시종일관 밝고 활기찬 분위기(4악장)가 절묘하게 믹스됐다.

1부 마지막은 오르가니스트 최민지가 프랑시스 플랑크의 ‘오르간 협주곡 g단조’ 4~7악장을 연주했다. 부천아트센터의 ‘으뜸 자랑’은 단연 파이프 오르간이다. 클래식 전문 공연장으로는 롯데콘서트홀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설치했다. 4576개의 파이프와 63개의 스톱, 2대의 연주 콘솔로 구성돼 있다. 최민지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과 호흡을 맞춰 환상곡 형식의 협주곡을 하나씩 풀어놓으며 풍성한 볼륨업을 선사했다.

<백브리핑> 개관 1주년 페스티벌 6000명 방문 ‘음향의 전당’ 입증

부천아트센터 개관 1주년 페스티벌로 17일 BAC 예술포럼이 열린 가운데 국내 클래식 극장의 사회적 역할과 비전에 대해 토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김선욱이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이 17일 부천아트센터 개관 1주년 페스티벌에서 피아니스트 정규빈과 협연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클래식의 성지’ ‘음향의 전당’이라고 평가받는 부천아트센터의 개관 1주년 페스티벌은 나흘 일정에 약 6000명이 방문해 고품격 선율을 즐겼다.

첫째 날(16일)은 지휘자 아드리엘 김이 이끄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이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과 오르가니스트 최민지와 협연했다. 고전미와 현대미가 조화롭게 연결된 음악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둘째 날(17일)에 열린 BAC 예술포럼에서는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강은경 서초문화재단 대표, 윤보미 부천아트센터 공연사업팀장 등 각계 문화계 인사와 함께 국내 클래식 극장의 사회적 역할과 비전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눴다.

오후에는 지휘자 김선욱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 정규빈이 나섰다. 이들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와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연주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18일 부천아트센터 개관 1주년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곡으로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첼리스트 최하영이 19일 부천아트센터 개관 1주년 페스티벌에서 요나스 알버가 지휘하는 부천필하모닉과 협연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셋째 날(18일)은 한국 클래식의 살아있는 전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첫 모차르트 리사이틀이 열렸다. 백발의 거장이 선사하는 모차르트의 순수함에 객석은 기립박수와 환호로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진 사인회에서도 거장과의 만남을 위해 수십 미터의 줄이 이어졌다.

축제의 마지막 날(19일)은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지휘자 요나스 알버·첼리스트 최하영과의 환상적인 호흡을 선보이며 부천아트센터 생일날을 빛냈다. 최하영은 샤를 카미유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1번’을 연주했고, 부천필은 표트로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1번 ‘겨울날의 환상’ 등을 들려줬다.

이 밖에도 세계적 명기인 스트라디바리의 정신을 계승한 ‘현(呟): 울림Ⅱ’ 전시(17·18일)가 열렸고, 부천아트센터 대형 외벽 DID를 통해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공연이 중계되며 문화예술의 하모니를 나눴다. 특별히 부천문화재단의 ‘도시사파리 예술시장’과의 콜라보도 성황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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