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부인’ 공연하는 강민우 단장 “밋밋한 움직임 없애려고 무용 전공 연출가 섭외”

누오바오페라단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
“나가사키항 전체로 배경 확대해 지루함 없애
​​​​​​​초연 많이 했다는 자부심은 저의 소중한 훈장”

송인호 객원기자 승인 2024.06.18 18:58 | 최종 수정 2024.06.18 19:04 의견 0
‘나비부인’을 무대에 올리는 누오바오페라단 강민우 단장은 “나가사키항구 전체로 배경을 확대해 지루함을 없애겠다”고 말하고 있다. ⓒ누오바오페라단 제공


[클래식비즈 송인호 객원기자] ‘2024 제15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시작됐다. 이번 축제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해 전부 민간단체에서 전액 자부담으로 축제를 치른다. 그중에서도 누오바오페라단은 ‘나비부인’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6월 28·29일)한다. 특별히 올해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아 선택한 작품이다. 올해 창단 19년째를 맞이하는 누오바오페라단 강민우 단장을 만나 ‘나비부인’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전막 오페라 ‘나비부인’을 올린다. 이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

“저희가 ‘나비부인’을 전막 공연으로 무대에 올리는 건 처음입니다. 원래는 아리고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를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번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금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작품을 바꿨습니다. ‘메피스토펠레’는 한국에서 민간단체로 저희가 초연이라 제작비가 워낙 많이 듭니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공연에 저희가 이번에 공연을 하게 되어 있는데 지원금을 못 받았다고 해서 작품을 안올릴수는 없고 해서 마침 푸치니 서거 100주년이기도 해서 작품을 바꿨습니다.”

- 특히 이번 공연에 임세경 소프라노가 출연한다. 출연진에 대해 소개해 달라.

“제가 생애 최초로 본 오페라가 바로 ‘나비부인’입니다. 고등학생 때 입니다. 처음에는 지루했습니다. 막 성악공부를 시작할 때였으니 아직 음악에 대한 깊이가 없었죠. 게다가 ‘나비부인’ 자체가 조금 단조로운 패턴으로 전개 되니까 어린 학생으로서는 당연히 지루하죠. 당시 세종문화회관 맨 꼭대기 4층에서 봤는데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더 그랬습니다. 푸치니도 ‘나비부인’을 처음 올렸을 때 흥행에 실패했을 정도로 지루합니다. 근데 제가 본격적으로 성악가가 되고 여러 음악들을 접하면서 오페라 ‘나비부인’의 음악을 이해하게 됐죠. 그 다음부터는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은 없더라고요.

이런 경험으로 이번에 저희가 올리는 ‘나비부인’은 지루함을 없애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일단 주인공인 초초상으로 출연할 사람으로 처음에 오디션을 봤습니다. 정말 노래를 잘하는 외국 소프라노들이 많더라고요. 근데 이 초초상이 일본인이기 때문에 동양인이라야 제 맛이 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고의 소프라노에게 맡기자 생각했습니다. 단원들이랑 여러분들의 의견이 바로 임세경 소프라노였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했는데 처음에 거절 하더라고요. 자기는 이 배역이 너무 힘들다고요. 분량이 많거든요. 연습도 다른 배역보다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얼마 전 오페라 한 작품을 끝내서 에너지가 고갈됐다는 거예요. 겨우 설득을 해서 하게 됐습니다. 아마 최고의 배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더블캐스팅으로 젊은 소프라노 이다미를 캐스팅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신경 쓴 것은 기존의 밋밋한 무대 콘셉트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는 초초상의 집이 주배경이었지만 나가사키 항구를 주배경으로 바꿨습니다. 그렇게 지루함에 대한 변화를 주고자 했고 연출도 무용하신 분(임선경)을 섭외해서 배우들의 움직임을 통해 좀 더 흥미롭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누오바오페라단이 6월에 ‘나비부인’을 무대에 올리는 가운데 출연자들이 연습하고 있다. ⓒ누오바오페라단 제공


- 누오바오페라단은 언제 창단됐나. 그동안의 활동은.

“저희 누오바오페라단은 2005년에 창단 했습니다. 내년이면 20주년이 됩니다. 지금부터 20주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욕심이 좀 있습니다. 남들이 안하는 걸 해보자는게 제 성격이다보니 오페라 작품들 중에서 국내 초연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저와 단원들만 행복했지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초연이다보니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더군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저희가 최초로 초연을 했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텼습니다.(웃음).”

- 원래 선구자는 외로운 법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어떻게 견뎌냈나.

“특별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깡으로 버틴 거죠. 제가 직접 스폰서 구하러 다니고 티켓 팔러 다니고 출연자 섭외하러 다니고 다 했습니다. 초기에는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습니다. 지금은 저의 열정을 아시고 많이들 도와주십니다. 맨 처음 창단공연으로 마스네 ‘베르테르’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많은 관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돈으로 1억 적자가 났습니다. 너무 충격이 커서 한동안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었습니다.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서 간신히 해결하고 그 뒤로부터는 절대 부모님께 걱정을 안끼쳐 드리겠다고 다짐을 하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말렸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작품을 정하고, 악보를 구하고, 단원들 뽑고, 연습을 하고, 드디어 무대에 막을 올리는 그 순간까지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너무 좋았습니다. 행복했고요. 그때부터 저의 일상은 후원 받으러 뛰어 다녔습니다. 나만 행복하면 안되고 다같이 행복하자 싶어 정말 구두굽이 닳도록 뛰어 다녔죠.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주변에서 조금씩 도와주시고 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원래 성악을 전공했나.

“네,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세종대를 졸업하고 바로 이탈리아로 넘어가 Treviso 시립음악원과 Padova C. Pollni 국립음악원을 수료했고 Pescara Accademia Diploma, Accademia Re Manfredi canto Diploma를 했습니다. 이후 Umberto Giordano 국립음악원에서 합창지휘를 공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Accademia Europea delle Arti Professioni e Mestieri Diploma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귀국하고 뉴서울 오페라단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죠. 이게 인연이 되어 결국 누오바오페라단을 창단하게 됐습니다.”

누오바오페라단은 국내 오페라단 중 가장 많이 초연한 단체로 유명하다. 사진은 ‘호프만의 이야기’ 중 한 장면. ⓒ누오바오페라단 제공


- 이번 오페라페스티벌은 지원금을 한 푼도 못받았다. 그래서 제작에 더 힘들었을건데 어떻게 작품을 하기로 했나.

“제가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부이사장으로 있습니다. 오페라페스티벌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심사로 들어가면서 페스티벌 사무국에서 예산 지원을 못받을 걸 예상하고 올해 공연하는 단체들에게 사전에 동의를 구했습니다. 예산지원이 없더라도 공연을 하겠노라고 했죠. 지원금이라는 것이 받으면 좋지만 못 받을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페스티벌인데 지원을 받던 못 받던 공연은 해야 된다고 봅니다. 다른 단체도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누오바오페라단은 초창기부터 어렵게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런 정신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뭘 못하겠습니까. 오페라가 있고 성악가가 있고 관객이 있다면 저희는 작품을 무대에 올릴 겁니다.”

- 앞으로의 계획과 발전 방향은.

“내년이 창단 20주년이라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차차 말씀드리고 중요한 것은 20년 이후가 문제입니다. 저도 나이가 쉰을 훌쩍 넘겼는데 젊은 친구들에게 이 오페라단을 물려주고 싶은데 사람이 없습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오페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목표는 우선 젊은 사람들에게 오페라가 정말 멋진 아트워크라고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뮤지컬은 대중적이라 젊은 친구들이 많이 몰려 갑니다. 그러나 같은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하는 오페라야 말로 더 고상하고 최고의 예술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오페라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저희들의 계획이자 발전 방향입니다.”

/classicbiz@classicbiz.kr

저작권자 ⓒ ClassicBiz,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