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저희는 지휘자가 없어요. 각 파트별 연주자 간의 긴밀한 소통으로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또한 모두 서서 연주합니다. 상대에게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기 위해서 입니다.”
‘바로크 바이올린의 여왕’으로 불리는 레이철 포저가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35회 이건음악회 기자간담회에서 함께 무대에 서는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강점을 설명했다.
레이첼 포저와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Bach and Baroque Brilliance(바흐와 바로크의 탁월함)’라는 주제로 10월 25일부터 11월 2일까지 다양한 바로크 음악을 선사한다.
수석 객원 음악감독 겸 협연자로 활동 중인 포저는 “바로크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는 음악이다.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을 준다”라며 “비록 구조는 복잡하지만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감정을 전달해 효과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을 중심으로 폭넓은 작품을 준비했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1번 서곡’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외에도 영국(헨리 퍼셀·찰스 애비슨), 체코(안토닌 레이헤나우에르) 작곡가의 음악을 들려준다.
포저는 “최대한 다양한 바로크 곡들을 선보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짰다”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애비슨의 이탈리아 스타일(이탈리아 작곡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곡을 편곡)과 레이헤나우에르의 체코 스타일 등 여러 나라의 바로크 음악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7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창단한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Tafelmusik Baroque Orchestra)는 40년 넘게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17·18세기 기악·합창 음악을 바로크 시대 악기와 스타일로 연주한다. 타펠무지크는 영어로 ‘테이블뮤직’을 뜻한다. 식탁에서 식사를 하며 편안한 기분으로 듣는 음악이라는 의미다. 단원은 포저를 포함해 브랜든 추이(비올리스트), 마이클 언더만(첼리스트), 크리스티나 자카리아스·페트리사 아헌(바이올리니스트) 등 17명이다.
간담회 현장에서는 퍼셀의 ‘판타지아’와 바흐의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1악장을 맛보기 연주해, 메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없는 악단으로 유명하다. 연주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소통하며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생긴 전통이다.
바이올린 단원인 페트리사 아헌은 “이름에서 짐작하듯 우리는 경직된 연주가 아니라 마치 파티하는 것처럼 서서 돌아다니며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한다”며 “지휘자 없이 모든 단원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력한다”고 소개했다.
비올라 단원인 브랜던 추이도 거들었다. 그는 “지휘자가 없으면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 연주하게 된다”면서 “저희가 서서 연주하는 것도 더 많은 소통을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단원들간의 긴밀한 협력은 기자들과의 질문과 답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 단원이 대답을 하면, 뒤이어 다른 단원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설명해줬다. 이런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멋진 팀워크다.
브랜든 추이는 바로크 음악의 특성을 순두부찌개에 재미있게 비유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시대 연주는 그 당시 했던 방식과 똑같이 연주하는 것이다”라며 “순두부찌개도 시대가 흐르면서 조리법과 요리사에 따라 맨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연주 전에 작곡가의 의도와 시대배경 등을 철저하게 고증하고 분석한다”고 말했다.
첼로 연주자인 마이클 언더만은 한국 특유의 ‘정’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연주에서 관객과 하나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에너지다”라며 “이건음악회 역사를 배우면서 한국 특유의 ‘정’이라는 감정을 알게 됐는데, 그러한 것이 타펠무지크 오케스트라에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에는 오보이스트 신용천이 유일한 한국 연주자로 참여한다. 2019년 한국 최초의 바로크 목관 연주 단체인 ‘서울 바로크 앙상블’을 창단한 국내 대표적인 고음악 연주자다. 네덜란드 국립 필하모닉 위트레흐트의 수석 오보이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는 “지휘자가 있다면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누그러뜨리는 경우가 생긴다”면서 “반면 타펠무지크 오케스트라와는 서로 대화하듯이 재미있게 연주하고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국내에선 드문 바로크 연주자답게 바로크 음악 사랑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해외에서 열리는 고음악 콘서트에는 흰머리 관객이 대부분이지만, 국내에선 젊은 관객들이 많이 찾아온다”라며 “한국 고음악의 미래가 밝다는 증거다”라고 강조했다
1990년 시작한 이건음악회는 시스템 창호 전문기업 이건창호를 비롯한 관계사가 문화나눔 차원에서 매년 국내외 클래식 음악가를 초청해 여는 무료 연주회다. 올해는 25일 아트센터인천을 시작으로 26일 대구콘서트하우스, 27일 부산문화회관, 29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관객을 만난다. 이어 11월에는 서울로 장소를 옮겨 1일 롯데콘서트홀, 2일 예술의전당에서 무대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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