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음악을 통한 나눔을 실천해 온 이건음악회의 진정성에 감동 받았습니다. 이런 좋은 뜻에 함께하고자 초청에 적극적으로 응했습니다. 공연뿐만 아니라 마스터클래스 등 다양한 활동까지 참여하게 돼 무척 기대됩니다.”
독일의 명문 앙상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현악 4중주단(Staatskapelle Berlin String Quartet)’이 제34회 이건음악회를 빛낸다.
올해 무대에 오르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현악 4중주단의 리더인 제1 바이올린 연주자 볼프람 브란들은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현악 연주를 선사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프리미엄 종합 건축자재 전문기업 이건(EAGON)이 주최하는 이건음악회는 서울 롯데콘서트홀(13일)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5일) 공연을 시작으로 17일(화) 광주 예술의전당 대극장, 19일(목) 대구 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21일(토) 부산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 22일(일) 인천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에서 모두 여섯 차례 진행된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현악 4중주단은 450년 전통의 독일 명문악단인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파트 수석 연주자들로 구성된 팀이다. 마에스트로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도를 받아 10년 전 첫 공연을 열었다. 제1 바이올린 볼프람 브란들, 제2 바이올린 리판 주, 비올라 유스트 카이저, 첼로 클라우디우스 포프로 구성됐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가 수 세기 동안 지향해 온 묵직하고 농익은 음색에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한 연주 스타일, 그리고 클래식과 현대음악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세계 곳곳 클래식 마니아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
현악 4중주단은 간담회에 앞서 살짝 맛보기 연주를 들려줬다.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측백나무’(모두 12곡으로 구성) 중 몇 곡을 연주한 뒤, 바로 이어 ‘윤정옥(尹貞玉) 아리랑’을 연주했다. 이건음악회는 해마다 ‘아리랑 편곡 공모전’을 연다. 우리나라 대표 민요인 ‘아리랑’을 해외 연주자 특색에 맞춰 편곡하는 공모전이다.
올해 최우수작으로 대학생 김다연 씨(21)의 ‘윤정옥 아리랑’이 뽑혀 앙코르 곡으로 연주된다. 이 작품은 밀양 아리랑 전설 속 주인공 ‘아랑 윤정옥’의 삶을 경기 아리랑에 대입해 현악 4중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건음악회는 첫 회부터 마지막 곡은 늘 한국 작품을 연주해왔다. 그동안 트로트 ‘어머나’, 가곡 ‘보리밭’이 연주되기도 했다. 그러다 우리 고유의 정서가 담겨있는 ‘아리랑’을 매년 새로운 스타일로 소개하는 것으로 틀을 잡았고, 앙코르 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한다.
볼프람 브란들은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아리랑이 한국에서는 큰 의미를 가진 민요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런 곡을 해석해 공연할 수 있어 영광이다”고 말했다. 클라우디스 포프는 “아리랑을 연주하는 데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 곡이 가진 문화적 중요성과 전통을 고려했을 때 훌륭하게 연주해야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판 주는 “10년 전 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에는 경연에 참가해서 즐길 여유 없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돌아볼 계획이다”라며 “베를린에도 ‘아리랑’이라는 유명 한식당이 있다. 이번엔 오리지널 한국 빙수를 맛보고 싶다. 어렸을 적에 아리랑을 들어 멜로디가 익숙하다”고 말했다.
4중주단은 이번 음악회에서 아리랑 외에도 클로드 드뷔시의 ‘현악 4중주 g단조(Op.10)’,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 f단조(Op.20 No.5)’, 그리고 프란츠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 C장조(D.956)’를 연주한다.
브란들은 “드뷔시가 남긴 유일한 현악 4중주는 걸작으로 불릴 만큼 아름답고 유려한 작품이다”라며 “원래는 프랑스 스타일의 색깔을 입히려고 했지만, 당시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영향을 이미 많이 받고 있어서 그런 특색 있는 멜로디가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하이든은 흔히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그는 또한 ‘현악 4중주의 할아버지’같은 작곡가다”라며 “이번에 연주하는 하이든의 곡은 f단조다. 진중하고 어두운 컬러가 있다. 지난 3월 별세한 박영주 회장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이 곡을 선곡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는 한국인 첼리스트 강민지와 박노을이 협연한다. 슈베르트의 ‘현악 오중주 C장조’는 기본 현악 4중주에 첼로가 한 대 더 붙어있는 곡이다. 두 대의 첼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이끌고 따르는 화음이 일품이다. 강민지가 네 번, 박노을이 두 번 협연한다.
이건창호와 이건산업 등을 운영하는 이건은 1990년부터 무료 클래식 공연인 이건음악회를 개최해 문화 나눔 및 사회 공헌에 앞장서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이 주최하는 가장 오래된 음악 관련 나눔 행사로, 한국을 대표하는 메세나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음악회와 함께 편곡 공모전, 마스터클래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음악 영재 지원에도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
론칭 때부터 음악회를 담당해온 최지훈 이건 홀딩스 매니저는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박영주 회장께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오페라 가수의 공연을 본적이 있다. 미군 트럭을 여러 대 붙여 무대를 꾸민 공연이었다. 그때 세계 최초 흑인 오페라 성악가인 마리안 앤더슨의 노래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나중에 돈을 벌면 ‘음악으로 감동을 나누자’라고 결심했고, 그 꿈이 1990년 인천 이건산업 공장에서부터 실현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매니저는 “회장님께서 작고하기 전에 5년 치 음악회 계획을 미리 짜두셨으며,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음악회가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34회지만 100회까지도 거뜬하게 롱런하는 음악회임을 실감하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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