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노들섬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열린 세종문화회관 2025년 시즌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발레단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한국에서 컨템퍼러리 발레단이 생긴 데 대해 세계 발레계의 관심이 뜨겁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올해 중 예술감독 선임을 위한 공식 기구를 구성해 해외 발레계 인사를 접촉하는 등 국내외에서 적임자를 찾는 과정을 진행할 겁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21일 서울 노들섬 서울시발레단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5 시즌 사업발표회’에서 “지난해 출범한 서울시발레단이 K무용수들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라며 “컨템퍼러리 발레단과 서울시는 서로 잘 어울리는 환상조합이기 때문에 서울을 업그레이드하는 첨병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 사장은 올해 서울시발레단에 힘을 쏟을 것임을 드러냈다. 장소 선택에서도 애정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즌 라인업을 발표했는데 이번에는 노들섬에 마련한 서울시발레단 스튜디오에서 열었다. 오프닝 영상 화면도 서울시발레단을 내세웠고, 새로운 시즌 무용수들을 소개하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안 사장은 “발레단 예술감독은 경영 능력과 국제 발레계와의 네트워크,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 늦어도 내년 하반기까지 선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21일 오전 서울 노들섬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열린 세종문화회관 2025년 시즌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안호상 사장이 올해 라인업을 발표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작품도 공을 들였다. 먼저 서울시발레단은 혁신적 안무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오하드 나하린의 ‘데카당스’(3월 14~23일)를 무대에 올린다. 이어 요한 잉거의 ‘워킹 매드’와 ‘블리스’(5월 9~18일)를 아시아 최초로 선보인다. 요한 잉거는 무용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우수 안무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무용가 중 한 명이다.

하반기에는 ‘무용계의 몬드리안’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스 판 마넨의 감각적 작품이 두 차례의 더블빌(서로 다른 두 작품을 동시에 공연하는 것)로 찾아온다. 한스 판 마넨의 새로운 라이선스 작품 ‘5탱고스’와 안무가 유희웅의 ‘노 모어’가 함께(8월 22~27일) 팬들을 만난다. 또한 지난해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와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 허용순의 ‘언더 더 트리스 보이스’도 공연(10월 30일~11월 2일)된다.

서울시발레단은 2025년을 빛낼 시즌무용수 18명을 선발했다. 이들과 함께 영국국립발레단 리드 수석 이상은(‘워킹 매드’ ‘언더 더 트리스 보이스’ 출연)과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수석 최영규(‘5탱고스’ 출연)가 올해 객원 수석으로 함께한다.

안 사장은 서울시발레단을 포함해 산하 예술단에 대한 구체적 플랜을 발표했다. 그는 “검증된 레퍼토리(상시 공연할 수 있는 극장의 고유 작품)를 개발하고, 확실한 설득력이 있는 작품으로 올해 승부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우호적이지 않은 시장 상황에 대한 우려도 드러냈다. “올해를 준비하며 가장 큰 걱정은 경제적 불황과 소비 심리 위축이다”라며 “이럴수록 관객들은 확실한 소비 아이템에 집중할 것이다”라며 차별화된 레퍼토리를 강조했다.

올해 세종문화회관이 선보이는 레퍼토리 작품은 총 11편이다.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화제를 모은 서울시극단의 연극 ‘퉁소소리’, 뉴욕 링컨센터서 모든 회차 매진을 기록한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 등이다.

또한 4년 연속 매진을 기록한 서울시합창단의 ‘헨델, 메시아’, 방송인 이금희가 해설을 맡은 ‘가곡시대’, 서양 악기와 국악관현악이 어우러지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믹스드(Mixed) 오케스트라의 ‘넥스트 레벨’, 서울시발레단의 ‘캄머발레’ 등도 레퍼토리로서 무대에 오른다.

세종문화회관의 ‘제작극장 선언’에 맞춰 예술단은 다양한 신작도 선보인다. 올해 세종문화회관 시즌 공연 29편 중 86%인 25편을 예술단 작품으로 구성하는 등 예술단 중심 기조를 가져간다는 계획이다.

21일 오전 서울 노들섬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열린 세종문화회관 2025년 시즌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안호상 사장과 각 예술단 단장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 ‘일무’를 잇는 레퍼토리에 도전 : 서울시무용단

서울시무용단은 한국춤의 뿌리인 장단과 속도의 변주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스피드’(4월 24~27일)를 에스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안무는 서울시무용단 윤혜정 단장이 맡는다. 음악은 황민왕과 해미 클레멘세비츠가 담당하고 비주얼 디렉터 이석이 참여해 다양한 속도의 변주 속에서 움직임을 탐구한다.

서양 철학에서 ‘미메시스’는 모방의 대상 속에서 이전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특성을 발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미메시스’(11월 6~9일)가 엠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서울시무용단은 전통춤의 해체와 재결합을 통해 한국 창작춤의 산실 역할을 해왔으며, 이번 공연에서는 민속무·궁중무·교방무 등 다양한 전통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해 무대에 올린다. 역시 윤혜정 단장의 안무로 선보이는 이번 작품은 전통춤에 기반한 창작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창단 60주년, 새로운 미래를 제시 :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은 대극장에서 ‘창단 60주년 헤리티지’(4월 18일)를 개최한다. 김영동·황병기의 국악관현악 명곡과 함께 영화 ‘올드보이’ ‘건축학개론’의 음악 작업 경력의 이지수,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 작곡가를 역임한 최지혜의 초연곡들을 통해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제시한.

여름에는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이승훤 단장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수석·부수석 단원들로 구성된 에스엠티오(SMTO) 앙상블이 실내악 시리즈 ‘소리섬’(7월 25일)을 선보인다.

또한 김홍도의 ‘월하선유도’에서 영감을 받은 수상음악 프로젝트 ‘웨이브’(8월 29일)도 개최된다. 이 공연에서는 물과 자연을 주제로 고대가요, 시조, 설화, 역사 등을 바탕으로 한 검증된 연주곡과 공모를 통해 선정된 신곡이 어우러져 연주된다.

21일 오전 서울 노들섬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세종문화회관 2025년 시즌 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 고선웅의 유령과 임도완의 코믹이 함께한다 : 서울시극단

서울시극단은 올해 4편의 공연 중 2편을 신작으로 선보인다. 첫 번째 신작은 ‘유령’(5월 30일~6월 22일)이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서울시극단 고선웅 단장이 처음으로 에스씨어터 무대에 작품을 올린다. 고 단장은 이번 작품을 통해 밀도 높은 작업을 선보이며, 실존과 삶의 본질에 대해 관객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독일 극작가 카를 발렌틴 원작의 ‘코믹’(3월 28일~4월 20일)은 짧은 단막 옴니버스극으로 국립극단의 ‘스카팽’과 신체극의 대가로 유명한 임도완 연출이 각색·연출·음악을 맡았다.

● ‘예그린악단’의 역사를 잇는다 :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뮤지컬단은 엠씨어터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탄생 과정을 그린 감동적인 드라마 ‘더 퍼스트 그레잇 쇼’(5월 29일~6월 15일)를 선보인다. 국가 소속 정보부 실장과 무능한 연출가가 수많은 사건과 갈등을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김동연 연출, 박해림 작가, 최종윤 작곡가가 참여해 뮤지컬의 역사적인 순간을 생동감 있게 담아낸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 창단 40주년, 최고의 캐스팅과 참신한 무대 : 서울시오페라단

서울시오페라단은 창단 40주년을 맞아 11월에 베르디의 명작 ‘아이다’(11월 13~16일)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뮤지컬 ‘시라노’의 연출가 김동연이 참신한 구성과 해석으로 웅장한 무대를 선보인다. 아이다 역에는 임세경, 암네리스 역에는 양송미, 아모나스로 역에는 유동직과 양준모가 출연한다.

또한 12월에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인기 공연 ‘오페라 갈라’(12월 13일)가 관객들을 만난다.

● 관객과 소통하는 다양한 공연들 : 서울시합창단

서울시합창단은 2025년에도 관객과의 소통을 강화하며 다양한 공연을 준비한다. 여름에는 클래식과 대중 레퍼토리를 아우르는 ‘여름 가족 음악회’(8월 29일)를 개최하며, ‘합창, 피어나다’(4월 16·17일)와 ‘낙엽 위에 흐르는 멜로디’(10월 30·31일) 등 폭넓은 프로그램을 통해 합창의 매력을 관객에게 전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올해 관객의 확실한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공연 경험의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무대에 눕거나 앉아서 작품 속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청음회, 국악관현악단 공연 전날 유명 요리사의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이벤트, 세종문화회관 구독 서비스 등이 그 일환이다. 더현대서울과 협업해 ‘해리포터 팝업 공간’도 운영한다.

제2세종문화회관 건립도 진행 중이다. 이에 맞춰 대극장, 챔버홀 등 기존 세종문화회관 시설의 리모델링도 계획하고 있다.

안 사장은 “제2세종문화회관으로 이전한 다음에 세종문화회관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서울시와 스케줄 일정을 맞췄다”며 “1970년대 세종문화회관이 누렸던 예술적 입지를 다시 찾아가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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