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시코디스트 송은주(왼쪽)와 피아니스트 윤철희는 오는 4월 11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공연한다. ⓒ송은주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BWV 988)’은 탄생 뒷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18세기 초 작센의 영주이자 신성로마제국의 주 러시아 대사였던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은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는 바흐에게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수면제 같은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곡이 완성됐다. 백작은 자신이 고용했던 젊은 연주자 요한 고트리프 골드베르크에게 잠이 들기 전 이 곡을 연주하게 해 숙면을 취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정설’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빠른 템포 때문이다. 실제 들어보면 전체적으로 경쾌해 오히려 딥슬립에 방해가 된다.

또 특이한 점은 곡명이다. 일반적이라면 곡을 의뢰한 사람의 이름을 붙여 ‘카이저링크 변주곡’이라고 제목을 달았을텐데, 곡을 연주한 사람을 더 높여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타이틀을 붙인 것도 이채롭다. 악보출판업자와 골드베르크와의 관계가 궁금하다.

모두 32곡으로 구성돼 있다. 주제(아리아)로 시작해서, 서른 개의 변주를 거쳐, 다시 주제(아리아 다카포)로 돌아오는 영원회귀의 음악이다. 다카포는 ‘처음부터’라는 뜻이다. 아리아는 사라방드(느리고 우아한 스페인 춤) 스타일로 되어 있고, 아리아를 앞뒤로 붙여 수미쌍관을 이룬다.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사람은 바흐가 신과 우주의 거대한 섭리를 음악으로 담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바흐가 일생의 음악적 정수들을 철저히 계산해 엮은 하나의 음악적 건축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고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은 글렌 굴드(1932~1982)의 음반이다. 그는 녹음형 연주자로 알려져 있을 만큼 콘서트를 싫어했다. 항상 낡은 등받이 전용 의자를 가지고 다녔고, 연주에서도 흥을 못 이겨 지나친 허밍 소리를 내는 등 수많은 화제와 일화를 남겼다. 한여름에도 종종 코트를 입었고 장갑을 끼고 다녔다. 1955년 컬럼비아 레코드와 녹음한 앨범은 엄청난 음반 판매와 함께 바흐 곡의 독보적인 명연주자로 이름을 날리게 했다. 스타카토로 딱딱 끊어서 치는 기법으로 39분 정도를 빠르게 달렸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신 이상 증세와 공연 기피 등으로 1964년 이후에는 연주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81년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 소니에서 선보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글렌 굴드 생의 마지막 연주이자 녹음이 됐다. 디지털 녹음이 만들어 낸 투명하고 명료한 건반 터치와 과감히 반영된 생생한 그의 허밍 소리는 극치에 가깝다. 러닝 타임은 51분이다. 1955년보다 12분 늘어났다.

월클 피아니스트들도 국내무대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앞다퉈 연주했다. 임윤찬은 오는 3월 23·24·25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정식 리사이틀 공연이 아닌 게릴라 성격의 독주회를 여는데, 여기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려준다. 공연 수익금을 소아환우를 위해 기부하는 착한 공연이다. 이어 30일에는 통영국제음악제의 일환으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다시 연주한다. 바흐에 대한 임윤찬의 해석에 관심이 쏠린다,

이에 앞서 임윤찬의 스승 손민수(2024년 10월)도, ‘아이슬란드의 글렌 굴드’로 불리는 비킹쿠르 올라프슨(2023년 12월)도, ‘클래식계의 영원한 아이돌’ 랑랑(2022년 2월)도 한국팬들 앞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선사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무대는 솔리스트 한 명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이번엔 하프시코드와 포르테피아노가 환상 케미를 이뤄 선사하는 듀오 리사이틀로 열린다. 바로크 시대 후기와 고전시대에는 제법 빈번했던 형태지만 지금은 아주 귀한 형태가 됐다. 하프시코디스트 송은주와 피아니스트 윤철희가 오는 4월 11일(금)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공연한다. 요제프 가브리엘 라인베르거가 두 대의 건반을 위해 편곡한 버전으로 들려준다.

‘아리아+30개의 변주곡+아리아’라는 3개의 큰 틀을 하프시코드와 포르테피아노가 서로 번갈아 가며 퍼스트와 세컨드를 연주한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에 변화를 가미해 훨씬 더 익사이팅하게 전달한다. 두 악기의 설레는 ‘밀당’이 기대된다.

두 사람은 악기 선택에도 공을 들였다. 윤철희는 ‘안톤 발터’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한다. 안톤 발터는 18·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노 제작자였다. 그의 피아노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모차르트는 1782년 쯤 발터를 구입해 작곡과 피아노 협주곡 연주에 사용했다. 윤철희는 1785년 발터 모델을 2013년 독일 제작자 토마스 쉴러가 복제한 악기로 연주한다.

송은주의 ‘무기’는 티투스 크라이넨이 제작한 루커스 개조형 ‘프랑코플레미시 2단 하프시코드’다. 18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지고 널리 사용된 하프시코드는 루커스가 개조한 ‘라발멘트(Ravalment)’라고 불리는 하프시코드였다. 네덜란드 출신의 유명 악기 제작자 티투스 크라이넨이 1624년도 라발멘트를 토대로 2016년 새로 대개조한 모델이 ‘프랑코플레미시 2단 하프시코드’다. 프랑코플레미시는 ‘프랑스 스타일’이라는 뜻이다. 악기 크기를 늘리고 음역을 확장함으로써 보다 섬세하고 유려한 음색을 구현했다.

송은주는 “두 악기의 독특한 음성과 개성을 살려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선보일 계획이다”라며 “바로크 시대의 전통적인 연주법에 충실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두 악기의 음악적 대화를 통해 작품의 새로운 조화와 해석을 시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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