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동환,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소프라노 황수미 등이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공연 ‘파우스트’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연극과 오페라가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다양한 관객이 찾아올 수 있다면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느라, 정신병으로 앓아 눕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잠을 잘 수가 없는 나날입니다.”
정동환은 데뷔 57년 차 베테랑 배우다. 연극, TV, 영화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오페라에 도전한다. 독특하게도 노래 대신 한국어 대사를 선보이는 역할을 맡았다.
정동환은 2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열린 서울시오페라단 ‘파우스트’ 기자간담회에서 “연극하는 정동환입니다. 여기 와보니까 제가 신인이네요”라며 “오페라를 막 시작해서 헷갈리는 것도 많고 걱정이 태산이다”라고 말했다.
‘파우스트’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집필한 희곡을 바탕으로 프랑스 낭만주의 오페라 거장 샤를 구노가 작곡한 작품이다. 1859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된 이후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배우 정동환등이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공연 ‘파우스트’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는 오페라와 연극이 결합한 ‘오플레이(O’play)’를 콘셉트로 내세웠다.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기존 오페라와 달리 대사를 추가해 복합적인 감정을 더욱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4월 10∼1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정동환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젊음을 되찾는 노인 파우스트를 연기한다. 1막 초반에 등장해 인생의 회한과 젊음을 향한 욕망, 고통에 관한 감정을 한국어 대사로 풀어낸다.
그는 ‘파우스트’ 소재 연극에 두 차례 출연한 적이 있다. “평소 대사는 말이 아닌 음악처럼 들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기를 해왔다”면서 “이 작품으로 연극이 음악, 오페라와 제대로 맞아떨어질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면 어떨까 싶었다. 어떻게 방법을 찾을지 고민하며 잠을 못 자고 있긴 한데, 조금씩 접근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은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나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관객도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새로운 감각을, 오페라 애호가에게는 연극적 요소가 더해진 신선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엄숙정 연출은 정동환이 나서는 1막 노년의 파우스트 등장 장면을 두고 “공연이 5막까지 가는 데 핵심적인 모티브가 된다. 전체 작품을 아우를 수 있는 내용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연극과 오페라가 만나는 1막 연출을 두고는 고민도 깊었다고 말했다. “연극 대사는 텍스트 안에서 느끼는 말맛이 있고, 오페라는 음악으로 전달한다. 두 가지가 굉장히 다르다”며 “당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그대로 가고, 그 위에 노년 파우스트 대사를 얹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결국 정동환이 연기할 때는 음악을 멈추는 등의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2막부터는 또 그런 연극 형태가 아니라 밸런스를 찾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정동환이 퇴장한 뒤 2막부터는 성악가들이 메인이 되어 기존 오페라 형식을 따라 작품을 끌어간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역은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과 베이스 전태현이 맡는다. 젊음을 얻은 파우스트 역에는 테너 김효종과 박승주가 출연하며, 파우스트와 사랑을 나누는 순수한 연인 마르그리트는 소프라노 손지혜와 황수미가 연기한다.
테너 김효종이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공연 ‘파우스트’ 기자간담회에서 노래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베이스 전태현이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공연 ‘파우스트’ 기자간담회에서 노래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과거 국내외 다양한 프로덕션으로 ‘파우스트’에 참여했던 성악가들은 저마다 작품에 얽힌 인연을 소개했다.
한국 오페라 데뷔 무대인 박승주는 “독일에서 공연한 ‘파우스트’를 계기로 오페라 주역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며 “성악을 하신 아버지의 커리어 첫 작품도 1980년대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여서 뜻 깊다”고 했다.
독일어권 성악가에게 최고 영예로 꼽히는 ‘궁정가수’ 작위를 받은 사무엘 윤은 “1998년 26세의 나이로 처음 ‘파우스트’에 출연했을 당시에는 힘 좋고 박력 있는 메피스토펠레스였다”며 “이번이 열 번 째 프로덕션인데, 역할이 가진 다양한 색깔과 이야기를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존경하는 정동환 배우님과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장르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장르를 덧입혀가면서 대중에게 클래식이 사랑받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진행되는 것 같다. 그 부분에서 용기 내 이 작품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배우 정동환,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소프라노 황수미 등이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공연 ‘파우스트’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소프라노 손지혜는 “서울시오페라단에서 하는 두 번째 작품인데 마르그리트를 오랫동안 하고 싶었다”면서 “나이가 앞자리가 바뀌면서 더 성숙하게 이것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제 모습인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연습을 하고 있다”고 출연 소감을 얘기했다.
손지혜와 더블 캐스트인 소프라노 황수미는 “굉장히 꿈꿔왔던 역이고 이 작품 데뷔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몹시 기대되고 기쁘다”며 “제 옆의 파우스트, 메피스토 역을 하는 선생님들이 모두 여러 번 해보셨던 분들이라 굉장히 많이 의지하고 있다”며 동료들에게 믿음을 드러냈다.
발랑탱 역은 바리톤 이승왕과 김기훈이, 시에벨 역은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메조소프라노 정주연이 연기한다.
지휘는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특별언급상을 받은 이든이 맡았다. 그는 “음악에 연기가 가미된 작품이어서 엄 연출과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관객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파우스트’의 음악을 들으면서도 연기로 표현되는 요소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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