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85주년을 맞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가 오는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GS아트센터 개관 공연을 장식한다. 사진은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트와일라 타프의 ‘인 디 어퍼 룸’. ⓒQuinn Warton/GS아트센터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올해 창단 85주년을 맞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가 GS아트센터 개관 공연을 장식한다. 수석 무용수 16명을 포함해 모두 104명 규모로 내한해 13년 만에 한국 팬들을 만난다. 그동안 ABT를 빛낸 조지 발란친의 ‘주제와 변주’, 트와일라 타프의 ‘인 디 어퍼 룸’, 카일 에이브러햄의 ‘머큐리얼 손’, 제마 본드의 ‘라 부티크’ 등 고전, 모던, 컨템포러리 등 미국 무용계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ABT는 러시아 마린스키·볼쇼이 발레단, 영국 로열 발레단,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정상 발레단이다. ‘발레계의 할리우드’라는 별칭처럼, 최고 기량뿐 아니라 스타성을 겸비한 무용수들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ABT는 클래식부터 컨템포러리 발레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유명하다. 각 시대별 혁신적인 안무가들의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적극 담아내며 현대의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 왔다. 조지 발란친, 앤터니 튜더, 제롬 로빈스, 트와일라 타프,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크리스토퍼 휠든, 웨인 맥그리거 등 동시대 안무가들의 ABT 초연작들은 20세기와 21세기 무용계의 역사이자 흐름이 되어 왔다.
창단부터 고수해 온 ABT의 ‘다양성 실천’은 다양한 인종과 젠더, 배경을 지닌 무용수와 창작가, 스태프가 뒤섞여 정형화되지 않는 ABT만의 독창적인 미학을 만들어낸다. ABT는 발레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성, 유색인 창작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목소리와 시선을 앞장서서 반영해 왔다. 메이저 발레단으로는 드물게 흑인 여성 수석 무용수 미스티 코플랜드를 임명했고, 2024년 여성 안무가 헬렌 피켓의 전막 발레 ‘죄와 벌’ 초연으로 발레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또한 동시대 감수성과 맞지 않는 일부 고전 발레 레퍼토리 장면과 스토리를 수정하거나 관객에게 주의 문구를 고지하는 등 시대의 변화와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창단 85주년을 맞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가 오는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GS아트센터 개관 공연을 장식한다. 사진은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제마 본드의 ‘라 부티크’. ⓒEmma Zordan/GS아트센터 제공
혁신의 흐름은 ABT의 30년만의 리더십 교체로 이어진다. 22년 동안 ABT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동한 수전 재피가 2022년, ABT 역사상 첫 여성 예술감독으로 선임됐고 단체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며 도전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클래식에서 컨템포러리까지’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GS아트센터 개관 공연에서는 고전에서 현대까지 ABT가 만들어 오고 있는 미국 무용계의 중요한 순간들이 재현된다.
20세기 발레의 혁신가이자 미국 발레의 황금기를 이끈 ‘조지 발란친’, 고전 발레와 현대 무용 언어의 경계를 무너뜨린 미국 무용계의 여왕 ‘트와일라 타프’,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예술적 공감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컨템포러리 안무가 ‘카일 에이브러햄’까지 미국 무용계의 혁신을 이끈 안무가들의 작품을 집중 소개한다. 또한 떠오르는 신인 여성 안무가 제마 본드의 작품은 미국 발레계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1947년 ABT가 세계 초연한 조지 발란친의 ‘주제와 변주’는 차이콥스키의 선율과 함께 러시아 황실발레로 표상되는 발레의 황금기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익히 알려진 ABT의 고전 발레 레퍼토리에서의 저력을 재확인할 수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두 예술가,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와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협업작 ‘인 디 어퍼 룸’(1986)은 지극히 미국적인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구현하며, 여타 발레단과 차별화된 ABT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수전 재피(예술감독)는 “80년대에 소개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한 흡입력을 지닌, ABT만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인 디 어퍼 룸’을 평가했다.
창단 85주년을 맞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가 오는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GS아트센터 개관 공연을 장식한다. 사진은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카일 에이브러햄의 ‘머큐리얼 손’. ⓒQuinn Wharton/GS아트센터 제공
가장 최근 초연한 신작 ‘머큐리얼 손’(2024)은 현재 컨템포러리 무용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안무가 카일 에이브러햄의 작품으로, 전자 음악 리듬을 배경으로 고전 발레의 정확성과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자유로운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며 ABT 무용수들의 뛰어난 표현력과 개성을 실감케 한다.
수전 재피는 ‘머큐리얼 손’에 대해 “각각의 무용수들이 지닌, 틀에 가둘 수 없는 혁신적인 본능과 에너지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ABT 무용수 출신의 떠오르는 안무가 제마 본드의 신작 ‘라 부티크’(2024, ABT 세계 초연)는 영국 안무가 프레데릭 애쉬톤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고전발레와 컨템포러리 감각이 세련되게 어우러진 수작이다. 미래의 창작가-특히 여성 안무가-의 지원으로 지속가능한 무용계를 만들어 온 ABT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수전 재피는 ‘라 부티크’에 대해 “보기에는 굉장히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무용수들의 고도의 기량이 요구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GS아트센터 개관을 기념해 ABT 수석 무용수 거의 전원이 출동해 선보이는 유명 레퍼토리 2인무 시리즈(‘잠자는 숲속의 공주’ ‘실비아’ 등)는 국내 발레 팬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할 것이다.
GS아트센터의 개관과 ABT 창단 85주년을 기념해 추진된 이번 공연은 ABT의 13년만의 내한으로, 16명의 수석 무용수를 포함해 총 104명(무용수 70명 포함)이 대거 내한한다. ABT의 스타 무용수 이저벨라 보일스톤, 커샌드라 트레너리, 데본 토셔를 비롯해 서희, 안주원(이상 ‘수석’), 한성우, 박선미(이상 ‘솔리스트’), 서윤정 등 5명의 한국 무용수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인 무용수 중 박선미의 활동은 독보적이다. 2022년 코르드 발레(군무)를 거쳐 같은 해 9월, 7개월 만에 솔리스트로 초고속 승급하며 화제를 모았다. 박선미는 로열 발레와 ABT가 공동제작한 신작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크리스토퍼 휠든 안무, 2023년)의 주역 ‘티타’, 웨인 맥그리거의 ‘울프 웍스’(2024년) 미국 초연 캐스팅, ABT의 세계 초연작 ‘죄와 벌’ ‘라 부티크’ 출연 등 ABT주요 초연 작품들의 연이은 낙점은 그에 대한 단체의 깊은 신뢰를 보여준다. 또한 2023년 ‘호두까기 인형’의 ‘클라라’ 역에 이어, 2025년 4월 ‘지젤’ 공연의 ‘미르타’ 역 데뷔를 앞두고 있다. 고전과 컨템포러리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서희를 잇는 ABT의 새로운 스타가 등장한 것.
크리스토퍼 휠든(안무가)은 “드라마틱 발레리나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보유하고 있다. 가냘프고 우아한 모습 속에 강렬한 열정과 강인함이 숨어 있다”고 박선미를 칭찬했다.
GS아트센터의 개관 공연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는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총 5회 공연된다.
/park72@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