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무 음악감독이 이끌고 있는 이마에스트리는 오는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국립극장에서 세계 최초 3D 창작오페라 ‘이순신’을 초연한다. ⓒ이마에스트리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달빛 사이로 흐르는 비탄의 피리 소리는 왜 나를 깨우는가.” 지난해 5월 남성 보이스 오케스트라 이마에스트리(I Maestri)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창단 19주년 기념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이날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노래가 있었다. 바로 ‘한산섬 달 밝은 밤에’다.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 이순신 장군은 남해안 진중에서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 같은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며 시조 한 수를 써내려갔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나의 애를 끊나니.’ 이 유명한 시조를 모티브로 해 작곡한 곡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산산이 산산이 부서질지라도 자유를 위해 평화를 위해 헤쳐 나가 끝내 승리하리라”라는 대장부의 다짐을 들으면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확 올라온다. 한 사나이의 우국충정이 뭉클하다. 애국심 샘솟게 하는 마법의 노래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는 이마에스트리를 이끌고 있는 양재무 음악감독이 작곡한 창작 오페라 ‘이순신’에 나오는 대표 아리아다. 지난해 맛보기로 몇 곡을 살짝 선보였던 오페라가 드디어 3년의 산고 끝에 완성됐다.

이마에스트리는 오는 4월 25일(금)부터 27일(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한국 오페라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이순신’을 초연한다. 이번 작품은 이순신 장군(1545~1598) 탄신 480주년을 맞아 제작됐다. 또한 남성 성악가 120여명으로 구성된 이마에스트리의 창단 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순신’은 전통 창작 오페라의 문법에 첨단 기술을 접목한 3D 오페라다. 세계 최초로 다양한 시도를 선보여 공연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돌출형 무대에 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하고 무대 옆면에도 3D 그래픽을 투영해 관객은 실제와 같은 경험을 한다.

눈앞에 거북선이 등장해 적을 향해 돌진하고, 적과의 치열한 해전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마치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생생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첨단 기술과 오페라 연출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새로운 형태의 융합 공연 예술을 실현해낸다.

음악과 기술, 역사와 드라마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전통 오페라의 경계를 확장하며 한국 창작 오페라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대작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마에스트리 단원을 주축으로 수군의 전투를 묘사하는 합창 장면에는 태권도 안무가들이 등장해 역동적 움직임을 보여준다.

예술총감독이자 지휘자인 양재무는 이번 작품에서 극본과 음악까지 홀로 도맡아 하나의 통합된 예술 언어를 구현했다. 작곡가와 대본가가 분리된 기존 오페라 제작방식과 달리 그는 서사와 음악의 유기적 융합을 통해 극 전체의 리듬과 정서를 일관되게 이끌어냈다.

‘이순신’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명량해전의 결단과 감동) ▲‘한산섬 달 밝은 밤에’(내면의 고뇌를 담은 아리아) ▲‘거북선을 만들자’(미래를 향한 집단적 결의)다. 또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에서는 남성 성악 앙상블의 대합창을 통해 깊은 울림을 전하며 이번 공연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원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궤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선조는 “해전이 불가능할 경우 육지에 올라 도원수 권율을 돕도록 하라”는 명을 내린다. 장군은 급히 장계(왕에게 보내는 문서)를 올린다.

피를 통하는 심정으로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전선수과(戰船雖寡) 미신불사즉(微臣不死則) 불감모아의(不敢侮我矣)’라고 적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전선의 수가 절대 부족하지만, 보잘 것 없는 신이 살아 있는 한 감히 적은 조선의 바다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뜻이다. 나라를 생각하는 절절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 글에서 힌트를 얻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를 만들었다.

“깊은밤 소리없는 침묵의 바다/ 해와 달도 빛을 잃고 어두운데/ 멀리서 들리는 전쟁의 북소리/ 칼에 베어 버려진 주검마다/ 하얀 옷에 피맺힌 통곡 있네/ 결연히 일어나라/ 일어나라/ 내가 죽어 길을 열리라/ 내가 죽어 길을 열리라/ 앞서 가니 나를 따르라/ 우리/ 우리/ 끝내 이기리라” 명량 앞바다의 거센 물결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장군의 함성이 쩌렁쩌렁 국립극장을 채우리라.

양재무 감독은 “단순히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승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군 곁에서 함께 전략을 세우고 위기를 극복했던 류성룡과의 협력, 끊임없는 전투 속에서 리더로서 결단을 내려야했던 고뇌, 그리고 국난 앞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신념과 책임감을 조명해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하겠다”고 강조했다.

부제를 ‘이순신과 류성룡의 위대한 만남’이라고 단 만큼 이번 오페라는 영웅 서사의 전형적인 틀을 넘어선 입체적 드라마로 전개된다.

연출 김지우, 영상연출 강민수, 연주 프라임필 오케스트라. 이순신 역은 테너 김충희·김지호·이규철, 류성룡 역은 바리톤 안대현·한경석·박정민, 선조 역은 테너 강신모·이인학·전병호, 원균 역은 테너 김성진·오상택·하세훈,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은 바리톤 나의석·최병혁·석상근 등이 맡는다.

<백브리핑> 공연 날짜·공연 장소까지 공들인 양재무 감독

양재무 음악감독이 이끌고 있는 이마에스트리는 오는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국립극장에서 세계 최초 3D 창작오페라 ‘이순신’을 초연한다. ⓒ이마에스트리 제공


양재무 음악감독은 오페라 ‘이순신’의 공연날짜와 공연장소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4월 28일은 이순신 장군의 양력 생일날(음력 생일은 윤 3월8일)이다. 그래서 공연 날짜를 일부러 25·26·27일로 잡았다. 음악만큼이나 세심한 정성이 빛난다.

이순신 장군은 남산 자락의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건천(乾川)은 마를 건(乾)과 내 천(川)이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다. 순우리말로 바꾸면 ‘마른내’다. 지금의 서울 중구 인현동과 초동 일대를 옛날에는 마른내라고 불렀다. 그래서 새로 바뀐 주소명도 ‘마른내로’다.

서울에는 장군의 생가터 표지석이 두 개 있다. 명보아트홀 앞에 있는 표지석은 1985년 서울시가 세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표지석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실제 생가터가 아닌 대로변에 설치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2017년, 뜻있는 분들이 역사학자의 고증을 받아 신도빌딩 자리를 진짜 이순신 생가터로 확정한 뒤 표지판을 설치했다. 이곳은 명보아트홀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국립극장도 남산 자락에 있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나 곳과 가장 가까운 곳을 공연장소로 골랐다. 장군의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