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공예가 서지민 선생이 오는 5월 9일부터 21일까지 북촌 코너갤러리 & 가회헌에서 ‘푸르를 녹, 빛날 옥’ 전시를 연다. ⓒ코너갤러리&가회헌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서지민(서울산업대 명예교수) 선생은 ‘옥(玉)’을 다듬어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옥공예가다. 특히 궁중에서 사용하던 여러 장신구를 옥으로 제작해 이름을 떨쳤다. 그의 솜씨는 최고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더해,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경기도 화성에서 생산되는 특별한 옥, 바로 ‘남양옥(南陽玉)’으로 작품을 만든다. 화성의 옛 이름이 남양부였기 때문에 남양에서 나오는 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남양옥은 중국산 옥과는 다르다. 색깔이 좀 더 은은하고 곱다. 그리고 재질이 견고하다.
서지민 작가는 원래 역사학도였다. 경북대 사범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연세대 대학원에서도 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주된 관심사는 고대의 보물이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가 테네시 주립대학에서 고대 보석을 연구했다. 옛 보석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자 직접 제작까지 익혀 서울산업대학 금속공예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가 처음 옥을 만난 것은 대학원 재학 시절이다. 사학을 공부하면서도 고대 보석에 한눈을 팔았다. 그때 눈에 자주 띈 보석이 옥이었다. “군자는 반드시 옥을 지녀야한다”는 군자필패옥(君子必佩玉)이라는 말처럼, 옥은 가장 이상적인 사람의 상징이었다. 또한 아름다운 인연을 두고 ‘옥연(玉緣)’이라고 했고, 가냘프고 고운 여인의 손을 ‘섬섬옥수(纖纖玉手)’라고 표현했다.
서지민 선생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양옥과의 인연을 털어 놓았다. 1970년 초, 서울 상도동에 살았는데 어느 날 기이한 꿈을 꿨다. 꿈에서 산길을 헤매다가 커다란 비취를 발견했다. 어디선가 “이건 네 것이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꿈이다.
그때 한 지인이 화성에 옥 광산이 있는데 매입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서울대 지질학 교수와 함께 화성으로 내려갔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상도동 집까지 처분해 옥 광산을 덜컥 매입했다.
옛 문헌을 샅샅이 살펴보며 옥에 대해서 공부했다. 그러다가 조선왕조실록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세종대왕 때 왕의 영양사 역할을 하는 식의(食醫) 벼슬을 하던 서하가 처음으로 화성에서 남양옥을 발견해 박연(1378~1458)에게 보냈다. ‘3대 악성’(고구려 왕산악·신라 우륵·조선 박연) 중 한 사람인 박연은 옥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들어보니 중국에서 건너온 옥과는 다르게 매우 청아했다.
이를 세종에게 바치자 세종은 박연에게 악기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박연은 남양옥으로 편경을 제작했다. 이후 남양옥은 품질이 뛰어나 최고의 옥으로 인정받으며 조선 왕실을 대표하는 옥이 됐다. 그래서 ‘궁중옥(宮中玉)’으로도 불린다.
더욱 놀라운 일이 있다. 알고 보니 궁중옥을 처음 발견한 서하는 서지민 선생의 직계 조상이었다. 6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남양옥은 결국 서하의 후손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것. 그래서 남양옥으로 궁중 장신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서 작가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옥 세공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마침내 장인이 됐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모습을 더욱 단아하게 만들었던 옥비녀와 옥가락지를 유독 좋아했다”고 인연을 밝히기도 했다.
서지민 선생이 5월 9일(금)부터 21일(수)까지 서울 종로구 북촌 코너갤러리 & 가회헌에서 전시회를 연다. 옥으로 만든 도장과 노리개 등 작품 120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Green like Her, Shine like Oke(푸르를 녹, 빛날 옥)’이다.
궁중옥 장신구 연구·제작에 평생을 바쳐온 작가의 이번 전시는 궁중옥과 함께 한 90년 삶을 뒤돌아보는 의미 있는 전시다. 10일(토) 오후 4시부터 시작되는 공식 오프닝에는 한국의 문화를 알려온 작가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작은 공연이 열린다. 미스코리아 출신 엄채영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고, 테너 김기선과 박영필의 아름다운 노래로 ‘작은 한옥 음악회’도 개최한다.
서지민 선생의 시계는 어느덧 한 세기에 다다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석 중 하나이자 왕실의 보석인 궁중옥을 지키며 살아온 그의 인생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어쩌면 이번 전시는 작가 인생의 마지막 전시가 될지도 모른다. 시간을 빚어낸 왕실의 보석, 그리고 왕실의 보석으로 빚어낸 시간. 그 모든 여정이 담긴 이번 전시에 깊은 경탄과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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