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안토니 헤르무스가 지휘하는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오는 9월 협연한다. ⓒH2아트앤컬처·Marco Borggreve/두나이스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NOB)는 벨기에 클래식 음악의 심장인 보자르의 상주 악단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협력 오케스트라다. 꽤 오랜 시간 콩쿠르 붙박이 오케스트라로 독점 활약했으나 이젠 브뤼셀 필과 사이좋게 나눠 일을 하고 있다.

벨기에 앤드워프 출신의 명지휘자인 앙드레 클뤼탕스(1905-1967)가 초대 음악 감독 및 상임 지휘자를 맡아 기틀을 다졌다. 클뤼탕스가 부임하기 전에는 데지레 데포(1885-1960·창단 지휘자), 카를 뵘(1894-1981), 에리히 클라이버(1890-1956), 피에르 몽퇴(1875-1964) 등 거장 지휘자들과 연주하며 음악 수준을 끌어올렸다.

이후 미하엘 길렌, 앙드레 반데르누트, 유리 시모노프, 미코 프랑크, 안드레이 보레이코 등 명지휘자들이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발전을 거듭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지휘봉을 잡았던 휴 울프는 안토니 헤르무스(1973년 출생)에게 상임 지휘자 자리를 물려줬다.

안토니 헤르무스가 지휘하는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가 한국 팬들에게 첫 인사를 건넨다. 오는 9월 24일(수)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30일까지 총 6회의 공연으로 역사적 첫 내한 무대를 선보인다.

협연자는 원조 콩쿠르 여제 백혜선(1965년 출생)이다. ‘Korea’라고 말하면 북한인지 남한인지부터 물어보던 시절에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 한국 국적 피아니스트로서는 처음 EMI(현재의 워너) 클래식 인터내셔널과 계약한 음악가,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 산업 역사상 팬클럽이 결성된 1호 아티스트, 서울대 음악대학교에 20대의 나이로 최연소 교수 임용 기록을 기록했던 교육자, 늦게 낳은 자녀 둘을 모두 하버드대에 보내 순식간에 주부들에게 유명해져버린 워킹맘, 그리고 현재 피아니스트 임윤찬 때문에 더 유명해진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피아노과의 학과장, 2025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한 김세현을 비롯한 꿈나무 피아니스트들의 스승. 이 모든 표현이 한국이 배출한 월드 클래스 1세대 여성 피아니스트 백혜선을 가리킨다. 철저히 남성 피아니스트 선호로 쌓아진 한국 음악 산업계에서 백혜선은 귀한 존재다.

백혜선과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의 협연은 34년만이다. 백혜선은 199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 진출자 12인 중 한 사람이었다. 로너드 졸만의 지휘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파트리스 샬룰로 ‘비탄의 도시로’를 협연한 적이 있다.

안토니 헤르무스가 지휘하는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는 오는 9월 첫 내한 공연을 연다. ⓒ벨기에국립오케스트라/두나이스 제공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대한민국은 현악, 성악, 작곡에서 모두 우승자를 배출했지만 피아노는 아직 1위를 배출하지 못했다. 한국 국적 백혜선이 세운 4위 입상 기록은 2016년 한지호(4위)가 세운 기록과 더불어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2025년 본선엔 13명의 한국 피아니스트가 진출해 큰 기대를 모았으나 결선에는 아무도 오르지 못해 아쉬움을 자아냈다.

상임 지휘자인 안토니 헤르무스는 네덜란드 음악계가 배출한 최고의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포함해 네덜란드의 모든 주요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는 북네덜란드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있었으며, 현재는 종신 명예 지휘자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독일 데사우 안할트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했으며 이후 이곳에서도 종신 명예 지휘자로 추대됐다. 한국에는 서울시향을 지휘하기 위해 2016년, 2018년, 2019년 방문했으며 이번이 네 번째 내한이다. 당시 공연에서 모차르트, 브루크너, 마르코 니코디예비츠, 마이클 도허티 등 고전에서 21세기를 망라하는 레퍼토리를 다뤘다.

헤르무스는 음악과 삶에 대한 전염성 강한 긍정적인 자세와 음악가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격려하는 타고난 재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드라마틱한 감각, 명확한 음악적 흐름을 이끄는 능력, 그리고 통찰력 있는 접근 방식은 오페라 극장과 콘서트홀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는 다음 세대 젊은 음악가들을 육성하는 데도 깊이 헌신하고 있다. 현재 암스테르담 콘서바토리와 국립 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프로그램의 방문 교수로 재직 중이며,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와 영국 왕립 북부 음악 대학에서 정기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무대에 서는 만큼 후학 양성에도 열심이라 그에게 사사하는 꿈나무 지휘자들의 이력에서 자주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존 엘리엇 가디너, 티에리 피셔, 마렉 야노프스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같은 유명 지휘자를 보유하고 있는 인터뮤지카 소속 아티스트다.

프로그램은 첫 내한인 만큼 고전에서 낭만으로 흐르듯 이어지는 곡을 선택했다. 첫 곡인 모차르트 ‘티토 황제의 자비’ 서곡은 모차르트의 창작열이 절정에 달한 말년에 쓴 곡이다(갑작스런 죽음으로 절정기가 곧 말년이 되었지만). 오페라 세리아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모차르트의 독자적 색채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서곡은 고전 오페라 서곡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르며 이어질 작품의 분위기를 예고하는 듯 펼쳐질 예정이다.

이어지는 협연에서 백혜선이 선택한 작품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다. 그 어떤 음악가가 베토벤을 경외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백혜선의 베토벤 사랑은 유별나다. 정명훈 지휘로 런던 심포니를 만났을 때도, 평소 애정했던 뮌헨 필과의 협연에서도 골랐던 작품이다. 백혜선 특유의 호쾌한 타건과 선 굵은 프레이징은 듣는 이에게 대단한 집중력을 만들어주고 청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후반부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선택했다.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고전주의적 형식미를 토대로 낭만 시대의 자유로움이 작품 전체에 흐른다. 전 세계 모든 오케스트라가 반드시 연주해야 하고 잘 해야 하는 작품이라 좋은 성적표를 기대하며 이 작품을 골랐다.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는 고전 및 낭만주의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연주하면서도 20세기와 현대 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단체다. 작품이 깊숙이 내제하고 있는 해석의 틀을 유지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혁신의 요소를 첨가하는지가 이번 공연의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 최초 내한공연의 티켓은 예술의전당, NOL 티켓, 예스24 티켓을 통해 예매 가능하다.

/eunki@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