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혜선 “제 삶과 비슷해 애착”...플로렌스 프라이스의 ‘스냅사진’ 한국 초연

미국 첫 흑인여성 교향곡 작곡가 작품 연주
4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서 리사이틀
서주리 ‘피아노 소나타 2번 봄’ 세계 초연

민은기 기자 승인 2023.03.21 16:48 의견 0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오는 4월 11일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스냅사진’과 서주리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봄’ 등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리사이틀을 연다. ⓒ예술의전당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플로렌스 프라이스(1887~1953)는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교향곡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치과의사 아버지와 음악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오르간과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을까 두려워 고향을 ‘멕시코 푸에블로’로 기재했다. 신분세탁을 한 것이다.

결혼해 리틀록으로 돌아온 뒤 흑인에 대한 폭력 사건이 계속되자 1927년 시카고로 이사했다. 35세 때 워너메이커 재단 작곡상에 응모한 프라이스는 교향곡 1번으로 1등상을 받았다. 1933년 시카고 박람회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시카고 교향악단이 교향곡 1번을 연주하면서 그는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가 작품을 연주한 첫 미국 흑인 여성이 됐다.

세상을 떠난 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프라이스가 다시 조명을 받은 것은 2009년. 그가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던 빈 집에서 수많은 악보와 논문이 나왔다. 바이올린 협주곡 2곡과 교향곡 4번도 처음 발견됐다. 9년 뒤인 2018년, 악보출판사 셔머가 프라이스의 악보 전체에 대한 판권을 사들여 화제가 됐다. 그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프라이스의 대표곡 ‘스냅사진’을 한국 초연한다. 오는 4월 11일(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연다.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특별 음악회로 준비했다. ‘거울 호수’ ‘구름에 걸친 달’ ‘타오르는 불꽃’ 세 곡으로 구성됐다. 후기 낭만의 형식과 인상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은 이 곡은 여성과 흑인이라는 편견에 저항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그의 용기와 진심이 담겨 있다.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오는 4월 11일 플로렌스 프라이스의 ‘스냅사진’과 서주리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봄’ 등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리사이틀을 연다. ⓒ예술의전당 제공


백혜선은 “미국에서 동양인 여성 피아니스트로 겪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을 해왔다”며 “나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라고 선곡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최근 출간된 첫 에세이집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에서 1993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본선 1차에서 탈락한 뒤 전화회사 영업직으로 취업한 이야기 등을 진솔하게 털어 놓아 감동을 줬다.

예술의전당 장형준 사장은 “개관 이후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며 관객과 소통해 온 예술의전당과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진실 된 선율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 백혜선은 닮은 점이 많다”며 “이번 무대에서는 그의 음악인생을 엿볼 수 있는 의미가 큰 초연 작품들을 선보일 것이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백혜선은 공연의 전체적인 구성을 온고지신(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으로 설정했다. 가장 고전적인 작곡가 모차르트, 낭만주의 러시아 음악의 개혁자 무소륵스키, 20세기 초 미국음악을 보여주는 플로렌스 프라이스, 한국인 작곡가 서주리의 작품을 선보인다.

서주리(1981~) 작곡가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봄’은 세계 초연이다. 홍난파의 ‘고향의 봄’을 바탕으로 서양음악의 전통적인 형식과 현대적인 음향이 결합된 특별한 곡이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더 많은 연주자들에게 연주되길 바라는 백혜선의 바람이 녹아 있다.

백혜선이 가장 사랑하는 곡으로 알려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5번 F장조(K.533)와 무소륵스키(1839~1881)의 ‘전람회의 그림’도 연주한다. ‘전람회의 그림’은 빅토르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으로, 독특한 구성과 대담한 표현이 청중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특히 이 곡은 피아노 연주와 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무대로 꾸며져 공연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백혜선은 ‘현존하는 세계 100대 피아니스트’ ‘원조 콩쿠르 여제’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로 표현되는 세계적인 음악가다.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한국인 최초 입상을 시작으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리즈 콩쿠르 등 굵직한 해외 콩쿠르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주목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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