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안삼 5주기 추모식이 지난 9월11일 성남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 열리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작곡가 이안삼(1943~2020)을 만나러 가는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지난 9월 11일, 파란 물감이 금세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화창한 날이다. 그는 고향 경북 김천이 아니라 서울에서 가까운 성남 분당메모리얼파크에 잠들어 있다. 1시간 안팎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한국 예술가곡의 거장’이 별세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향년 77세.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아쉬움과 속상함이 크다. 이안삼과 씨줄·날줄로 촘촘하게 엮인 사람들은 해마다 빠지지 않고 묘소를 찾는다. 올해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16명이 모였다. 인연의 소중함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 ‘찐팬들’이다.
추모식은 소박하게 진행됐다. 사회는 선생의 김천고 제자인 유재훈 전 육군본부 군악대장이 맡았다. 이안삼은 김천고를 졸업한 후 경희대에서 공부했다. 1967년 3월부터 2006년 2월까지 김천중·김천고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했다. 스물네 살에 부임해 38년 동안 수많은 제자를 키웠는데, 유 전 대장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1978년 음악선생님 이안삼을 처음 만났다”라며 “처음에는 악기를 했는데, 선생님 덕에 작곡과 지휘에 눈을 떴고 음악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고백했다.
이안삼 선생이 주최하거나 주관한 음악회 무대에 섰던 가곡 마니아 두 사람이 추모 노래를 불렀다. 먼저 소프라노 김란이 성가곡(聖歌曲) ‘선하신 목자’(신일웅 시·이안삼 곡)를 들려줬다. 김란은 선생이 타계하던 그 해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합창단 동료 40여명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그리고 병실에서 정성을 다해 이 곡을 합창했다. 김란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노래가 끝난 뒤 흡족한 표정을 짓던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김란이 지난 9월 11일 성남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 열린 작곡가 이안삼 5주기 추모식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테너 최경일이 지난 9월 11일 성남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 열린 작곡가 이안삼 5주기 추모식에서 노래하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이어 테너 최경일이 ‘솟대’(김필연 시·이안삼 곡)를 연주했다. “오늘도 긴 기다림 속절없이 높아만 가고/ 한 뼘 길어진 꽂발은 아린 가슴으로 야위어 가는가/ 한 뼘 길어진 꽂발은 아린 가슴으로 야위어 가는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뜨거운 것이 왈칵 밀려왔다. 이젠 돌아오지 못하는 선생님에게 올리는 절절한 사모의 노래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장동인의 추억은 뭉클했다. 두 사람은 음악가라는 공통분모와 함께 선생님의 거의 모든 음악회에 피아노 반주를 맡아 각별한 관계를 이어갔다. 장동인은 지난해 초 첫 노래곡집 ‘꿈에서 데려온 노래’를 출간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첫 만남 과정을 소개했다.
“국방부 군악대에서 군대 생활을 했어요. 마침 대대장님(유재훈 전 군악대장)의 은사가 이안삼 선생님이었어요. 대대장님 소개로 인연을 맺었죠. 휴가 때마다 선생님 작업실에 찾아가 손으로 스케치한 악보를 컴퓨터로 옮기는 일을 도와드렸습니다. 처음엔 선생님 연세 때문에 깍듯하게 대해야 할 것 같아 많이 긴장됐지만, 마치 친구처럼 격식 없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순수하고 따뜻한 분이셨어요.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아요. 군대 생활하면서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묻길래 ‘짜장면이다’라고 말하자 곧바로 시켜주시기도 했어요. 꿀맛이었습니다.”
선생님과의 인연 때문에 시작된 장동인의 가곡 활동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최근 한양대 작곡과 출강을 시작한 그는 “선생님께 받은 사랑이 늘 고마웠다”며 “그 사랑을 발판 삼아 열배의 정성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말해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얼마 전 발라드곡을 작곡했는데, 선생님께 꼭 들려주고 싶다”며 휴대폰 속에 저장된 ‘널 사랑하는 마음보다’(피처링 방성원) 음원을 틀었다. 아름다운 헌정의 시간이다. “선생님, 하늘에서도 저를 잘 이끌어 주셔서 훌륭한 음악가가 되게 해주세요”라는 간절한 기도 같았다.
작곡가 이안삼 5주기 추모식이 지난 9월11일 성남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 열리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작곡가 이안삼 5주기 추모식 참석자들이 지난 9월11일 성남 분당메모리얼파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김문기의포토랜드 제공
그리고 다른 참석자들도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시인 한상완(이안삼가곡제운영위원장)은 “전국 방방곡곡 가곡 음악회를 함께 찾아다니던 때가 어제 일처럼 새록새록하다”며 “그를 만난 것은 축복이었다”고 밝혔다. ‘이안삼카페’ 전·현직 회장인 시인 서영순과 황여정은 “지난 5년 동안 선생님을 잊지 않고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감사하다”며 “선생님의 주옥같은 한국 가곡은 언제나 향기를 잃지 않는 감동이다”라고 말했다.
권영탁 목사(예사랑 회장)는 추도 기도를 했고, 김문기 사진작가는 행사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했다. 시인 김정주(아리수사랑 대표)는 별세 5주년 추모식을 총괄 기획했다. 이밖에도 시인 최숙영·송영기, 가곡애호가 송영기·이명숙·리나 등이 함께 했다.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내 마음 그 깊은 곳에/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버린 그대여/ 내 마음 먹구름 되어/ 내 마음 비구름 되어/ 작은 가슴 적시며 흘러내리네/ 아~ 오늘도 그날처럼 비는 내리고/ 내 눈물 빗물 되어 강물 되어 흐르네”
참석자 모두는 김란의 지휘로 ‘내 마음 그 깊은 곳에’(김명희 시·이안삼 곡)를 합창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값으로 매길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안삼을 이토록 그리워하고 있으니 그의 삶은 분명 값진 것이었으리.
이안삼 작곡가을 기리는 마음은 오는 10월 22일(수) 더 확대된다. 서울아트센터 도암홀에서 ‘제5회 이안삼 가곡제’를 연다. 5주기를 맞아 사운드를 더 풍성하게 키웠다. 지금까지 피아노 반주로 음악제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서희태가 지휘하는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는다.
성악 라인업도 ‘어벤저스 사단’이다. 소프라노 강혜정·김성혜·임청화, 메소소프라노 이주영, 테너 이정원·이현, 바리톤 송기창이 출연한다. 또한 편곡·피아노 장동인, 사회 장장식, 기획 김정주, 사진·영상 김문기가 힘을 보탠다.
/eunki@classicb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