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칼라 데뷔·투란도트 100회 공연...테너 이정원 이젠 ‘대표님 이정원’ 됐다

4월27일 JW엔터 창단 음악회...박미자·김동규 등 10명의 톱성악가들과 공연

민은기 기자 승인 2021.03.23 15:42 | 최종 수정 2021.03.25 15:45 의견 0
테너 이정원이 코로나 때문에 공연계가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클래식 전문 공연 기획사 ‘JW엔터’를 설립하고 오는 4월 27일 창단기념 음악회를 연다. /사진제공 김문기의 포토랜드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이정원의 자랑스러운 기록 중 하나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 데뷔다. 지난 2008년 한국인 테너 최초로 꿈의 무대에 섰다.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드>에서 스코틀랜드 귀족 막두프 역할을 맡았다. ‘사건’은 4막에서 터졌다. 3막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깊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추방당한 망명자들이 황량한 들판에 쓰러져 있는 가운데 이정원이 혼자 무대에 등장했다. 4분 동안 ‘O figli, o figli miei(나의 아들들이여)’를 부르자 분위기는 확 반전됐다. 일제히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라 스칼라에서는 공연 도중 좀처럼 박수를 치지 않는다. 리카르도 무티가 음악감독으로 있을 때부터 굳어진 전통이다. 음악의 흐름을 끊어 놓는다는 이유 때문에 극도로 자제한다. 하지만 이정원이 맥베드의 손에 아내와 아들이 죽은 후 부르는 처절한 아리아를 토해내자 관객들은 금세 마음을 빼앗겼다. 비통함과 애절함에 공감한 청중들은 박수뿐만 아니라 ‘브라보’까지 외치며 동양에서 온 테너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테너 이정원이 코로나 때문에 공연계가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클래식 전문 공연 기획사 ‘JW엔터’를 설립하고 오는 4월 27일 창단기념 음악회를 연다. /사진제공 스튜디오 청아


이정원의 빛나는 기록은 또 있다. 바로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100회 공연이다. 처음 칼라프 왕자가 된 건 지난 200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페라 극장. 그 후 꼬박 16년을 달려 2019년 11월 고양 아람누리 극장에서 100회 출연을 달성했다. 증오로 가득 찬 얼음공주의 마음을 녹이는 ‘정원 칼라프 왕자’의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못하리)’를 들으면 목소리가 계속 귓전을 울려 정말 잠들지 못한다.

이정원은 태어나 처음 본 오페라도,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에서 첫 감상한 오페라도 <투란도트>였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운명 같은 작품이다. 그는 “모든 오페라가 다 위대하지만 특히 <투란도트>는 제 목소리와 가장 잘 어울린다”라며 “예전에는 영웅적인 칼라프에 집착했지만 요즘은 사랑을 위해 직진하는 순수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애쓴다”고 설명했다. 베테랑다운 캐릭터 해석이 느껴진다.

정상의 성악가들이 오는 4월 27일 JW엔터 창단기념 음악회 무대에 선다. 왼쪽부터 소프라노 박미자, 소프라노 김은주, 소프라노 오미선, 소프라노 김수연, 소프라노 박현주. /사진제공=JW엔터


테너 이정원이 이번엔 ‘대표님 이정원’에 도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공연계가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클래식 전문 공연 기획사 ‘JW엔터’를 설립하고 첫 콘서트를 연다.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명언을 직접 실천하는 셈이다.

이정원은 오는 4월 27일(화) 오후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JW엔터 창단기념 음악회 ‘코로나 극복을 위한 Grande Concerto’를 개최한다.

이정원은 “평소 같이 노래 부르고 싶었던 존경하는 분들과 좋은 무대에서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어 JW엔터를 창단했다”라며 “비록 코로나로 어렵지만 1년에 2번 정도 좋은 음악회로 여러분을 찾아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설레는 ‘첫공’이니 만큼 여러 콘서트에 빠지지 않는 섭외 1순위 성악가들이 총출동한다. 모두 이정원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절친들이다. 이들은 각각 한국 가곡 1곡과 오페라 아리아 1곡을 부른다.

우선 소프라노 6명이 절정의 솜씨를 뽐낸다. 박미자는 ‘내 맘의 강물(이수인 시·곡)’을 부른다. “수많은 날은 떠나갔어도 /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기쁨과 슬픔으로 점철된 우리의 인생 여정을 흐르는 물결에 비유한 아름다운 곡이다. 원래 선율이 먼저 완성됐으나 적당한 노랫말을 찾지 못해 작곡가가 직접 가사까지 달았다. 또한 박미자는 샤를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아리아 ‘Ah! je veux vivre(아! 꿈속에 살고 싶어라)’에서 설레는 줄리엣의 마음을 어떻게 세밀하게 표현할지 기대된다.

“잊어 버리자고 잊어 버리자고 /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 하루 이틀 사흘” 조병화의 시 ‘추억’에 김성태와 최영섭은 각각 곡을 붙였는데, 김은주는 이 가운데 김성태의 작품을 선사한다. 이어 미국을 대표하는 노래 단 한곡을 뽑으라면 당당히 톱에 랭크되는 조지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Summertime(서머타임)’을 부른다.

오미선은 ‘팬텀싱어’ 등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최애곡으로 떠오르며 2030의 마음을 사로잡은 ‘마중(허림 시·윤학준 곡)’을 들려준다. 자코모 푸치니의 <토스카>에 흐르는 ‘Vissi d’arte, vissi d’amore(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에서는 가혹한 운명과 마주선 한 여인의 아픔을 풀어 놓는다.

김수연은 맞춤 봄노래 2곡을 준비한다. 연분홍 꽃다발 한아름 안고 오는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임긍수 곡)’은 봄이면 가장 많이 불리는 스테디송이다. 이어 연주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Frühlingsstimmen)’는 최근 화제의 드라마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SBS <펜트하우스> 시즌1에서 하은별(최예빈 분)이 불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요즘은 관현악으로 편곡된 버전이 더 자주 연주되지만 원래 소프라노 독창곡으로 작곡됐다.

“어디에서 불어오는 희미한 바람일까 / 연초록 마음 밭에 그대 향기 가득하다 / 머나먼 길 달려가 토해내던 붉은 날숨 / 다시 선 그 자리에 그대 숨결 가득하다” 박현주는 가슴을 적시는 노랫말이 오랫동안 맴도는 ‘잔향(이연주 시·윤학준 곡)’을 노래한다. 이와 함께 주세페 베르디 <아이다>의 ‘Ritoma vincitor!(이기도 돌아오라)’에서는 조국에 대한 애정과 연인에 대한 사랑의 틈바구니에서 갈등하는 아이다의 비통함을 전달한다.

복사꽃 살구꽃 흐드러지게 핀 ‘꽃구름 속에(박두진 시·이흥렬 곡)’는 김민지의 목소리를 타고 흐른다. 이어 쥘 마스네 <마농>의 ‘Obéissons quand leur voix appelle(부드러운 사랑의 목소리에 따르도록 해요)’에서 물 오른 가창을 보여준다.

정상의 성악가들이 오는 4월 27일 JW엔터 창단기념 음악회 무대에 선다. 왼쪽부터 소프라노 김민지,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테너 이정원, 테너 김재형, 바리톤 김동규. /사진제공=JW엔터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은 ‘신아리랑(김동진 곡)’을 부른 뒤, 카미유 생상스의 <삼손과 데릴라>에 흐르는 ‘Mon coeur s’ouvre à ta voix(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를 부른다. 데릴라가 삼손의 놀라운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 알아내기 위해 유혹하며 부르는 이 곡은 메조소프라노들의 최애곡 중 하나다.

테너 이정원은 ‘산촌(이광석 시·조두남 곡)’에 이어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중 ‘Vesti la giubba(의상을 입어라)’를 연주한다. ‘Vesti la giubba’는 광대 카니오가 아내의 불륜을 목격해 절망하지만 그래도 공연을 계속 해야 하는 상황을 담고 있는 노래다. 중간에 나오는 가엾은 사내의 흐느낌은 애처롭고 뭉클하다.

곡은 하나인데 각기 다른 4개의 노랫말이 붙은 가곡이 있다. 작곡가 채동선은 1930년대 정지용의 시에 선율을 붙여 ‘고향’을 발표했지만, 6·25한국전쟁 때 정지용이 납북되면서 금지곡이 됐다. 곡을 그냥 묵혀 둘 수 없어서 1950년대 박화목의 시를 붙여 ‘망향’이 탄생했고, 다시 1960년대 이은상의 시를 가사로 해 ‘그리워’가 세상에 나왔다. 나중에 소프라노 이관옥(전 서울대 교수)이 이 곡에 직접 ‘고향 그리워’라는 시를 지어 붙인 것 까지 합하면 모두 4개의 노래가 만들어졌다. 테너 김재형은 이 가운데 이은상 시·채동선 곡의 ‘그리워’를 부른다. 그리고 프란츠 레하르의 <미소의 나라> 중 ‘Dein ist mein ganzes herz(그대는 나의 모든 것)’도 연주한다.

멋진 콧수염 사나이 김동규는 한국인의 최고 애창가곡 ‘그리운 금강산(한상억 시·최형섭 곡)’에 이어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 중 ‘Votre toast, je peux vous le rendre(여러분의 건배에 잔을 돌려 드리겠소)’를 부른다. 일명 ‘Chanson du torador(투우사의 노래)’로 알려진 ‘Votre toast, je peux vous le rendre’은 황소에 맞서는 씩씩한 투우사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피아니스트 류신열과 유수현이 번갈아 건반을 터치해 가수들과 멋진 케미를 선사하고, 오페라 평론가 손수연이 사회 및 해설을 맡는다.

티켓은 4만~15만원이며, SAC·YES24·인터파크티켓에서 예매할 수 있다.

/eunki@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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