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대산홀에서 열린 ‘광화문글판 35년 북콘서트’에서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이 ‘베스트 광화문글판’으로 선정된 시인 및 문안선정위원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요조 문안선정위원, 김연수 문안선정위원, 도종환 시인, 나태주 시인, 신창재 의장, 문정희 시인, 장석주 시인, 장재선 문안선정위원, 유희경 문안선정위원. ⓒ교보생명 제공


[클래식비즈 김일환 기자] “35년간 꾸준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광화문글판 덕에 위로를 받았다.” 교보생명은 11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광화문글판 35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를 열고, 시민이 직접 뽑은 ‘베스트 광화문글판’을 발표했다.

온라인 투표에는 시민 2만2500명이 참여했으며,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문안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견디며 익어가는 인내와 회복의 메시지’가 시민의 일상에 다정한 위로로 다가섰다는 평가다.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나태주 ‘풀꽃’, 문정희 ‘겨울 사랑’, 정현종 ‘방문객’이 상위권에 올랐다. 김규동 ‘해는 기울고’, 유희경 ‘대화’, 허형만 ‘겨울 들판을 거닐며’,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이생진 ‘벌레 먹은 나뭇잎’이 그 뒤를 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일반 시민과 대학생, 문학인 등 300여명이 함께했다. 행사는 미디어 아티스트 염동균 작가의 VR 퍼포먼스로 문을 열었다. 인생의 계단 속에서 광화문글판을 보고 느끼며 성장하는 여정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이어 베스트 글판 시 낭송, 기념 도서 북토크, 가수 요조의 공연이 이어지며 35년간 광화문글판의 철학과 여정을 되돌아보고, 시민과 함께 ‘한 줄의 문장’이 가진 힘의 의미를 되새겼다.

11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대산홀에서 열린 ‘광화문글판 35년 북콘서트’에서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교보생명 제공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은 환영사에서 “35년 동안 광화문글판은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는 시민들의 벗으로 자라났다”며 “IMF외환위기와 코로나19 등 어려운 시절에도 광화문글판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한 줄의 문장이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시민 여러분의 공감과 참여 덕분이다”라며 “앞으로도 교보생명은 광화문글판이 시민의 일상 속에서 짧은 휴식, 미래 희망을 건네는 문화의 창으로 계속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교보생명은 이날 베스트 문안의 주인공인 장석주·도종환·나태주·문정희 시인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며 35년간 시민과 함께 만들어온 글판의 의미를 기념했다. 이들은 무대에 올라 직접 시를 낭송하며 시민들과 공감의 시간을 나눴다.

이어 열린 북토크 ‘광화문글판의 오늘과 내일’에서는 문안선정위원 김연수(소설가), 요조(수필가·뮤지션), 유희경(시인·서점 대표), 장재선(시인·언론인)이 참여했다. 유희경 위원의 진행 아래 ‘기억속 광화문글판’ ‘지금-여기의 광화문글판’ ‘다음의 광화문글판’ 세 가지 주제로 대담이 이어졌다.

패널들은 광화문글판을 “바쁜 도시의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게 하는 언어의 예술이자, 흐트러진 마음을 붙잡아주는 닻 같은 존재”로 표현했다. 또한 “짧은 문장 하나가 시민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우리나라 말의 아름다움과 삶의 철학을 되새기게 하는 대표적 문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며 “최근에는 외국인 방문객과 한글 학습자들에게 한글의 표현미와 감성을 전하는 창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담 후 이어진 요조의 공연에서는 ‘좋아해’를 비롯해 여섯 곡이 울려 퍼지며 시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11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대산홀에서 열린 ‘광화문글판 35년 북콘서트’에서 장재선, 요조, 김연수, 유희경 문안선정위원(왼쪽부터)이 ‘광화문글판의 오늘 그리고 내일’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교보생명 제공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광화문글판 35년 기념 도서에는 문안선정위원 인터뷰, 계절별 글판 사진, 시민 사연 등이 수록돼 있어 광화문글판의 35년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다.

광화문글판은 1991년 1월,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첫 문안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 경제 활력 다시 찾자’였으며, ‘훌륭한 결과는 / 훌륭한 시작에서 생긴다’ ‘개미처럼 모아라 / 여름은 길지 않다’ 등 초기에는 계몽적 표어의 성격이 강했다.

광화문글판이 지금처럼 감성적인 모습으로 변화한 것은 1998년부터다. 1997년말 IMF 외환위기로 고통과 절망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자 신용호 창립자는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에게 위안을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이듬해 봄, 고은 시인의 ‘낯선 곳’에서 따온 ‘떠나라 낯선 곳으로 /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문안이 걸리며 광화문글판은 비로소 시가 있는 도시의 풍경으로 거듭났다.

2000년부터는 신창재 의장이 시민과의 온전한 소통을 위해 문인·언론인·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문안선정위원회’를 발족했다. 문안선정위는 “이 현판이 시민의 공공재이며, 주인은 시민이다”라는 취지 아래 공식 명칭을 ‘광화문글판’으로 정하고 오늘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2003년부터는 교체시기도 계절의 변화에 맞춰 연 4회로 정례화됐다.

광화문글판은 35년 동안 총 117편의 문안으로 시민의 삶과 호흡하며 희망과 사랑,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이 문안들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걸리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국내를 대표하는 인문학적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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