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규모 줄이고 공연 시간은 짧게…‘슬기로운 오페라 생활’ 시작됐다

코로나 집단감염 막으려 대형공연 대신 소극장·콘서트 등 집중

민은기 기자 승인 2021.04.01 13:55 | 최종 수정 2021.04.02 08:13 의견 0
소프라노 윤성회(왼쪽)와 바리톤 윤한성이 오는 4월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올리는 오페라 '춘향탈옥'의 한 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오페라 무대가 ‘헤비급’에서 ‘밴텀급’이나 ‘플라이급’으로 체급을 낮췄다. 공연 규모를 줄이고 공연 시간이 짧아지는게 새 트렌드로 점차 자리잡아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에 따른 집단 감염을 피하기 위해 내놓은 묘안이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슬기로운 오페라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1일 오페라계에 따르면 최근 예정된 오페라 작품들이 공연장의 몸집을 줄이는게 일반화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2000석 규모의 대형극장에 올렸던 작품들이 300석 안팎의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대표적인 것이 오는 4월 6~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리는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다.

열아홉번째로 개최되는 소극장오페라축제는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을 지낸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이 만들었다. 오페라도 뮤지컬이나 연극처럼 소극장 무대에 올려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재정난 때문에 2017년 중단했다가 4년 만에 다시 열린다.

올해 축제에선 모두 5편을 선보인다. 이 중 창작 오페라는 3편이다. ‘김 부장의 죽음(오예승 작곡)’은 65세 김 부장의 비애를 다룬 블랙코미디로 한국판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춘향탈옥(나실인 작곡)’은 탈옥한 춘향이를 통해 우리 시대 여성상을 참신하게 녹여낸 로맨틱 코미디다. 또한 ‘달이 물로 걸어오듯(최우정 작곡)’은 한 남자의 비극적 사랑을 풀어낸 작품이다.

소프라노 윤성회(오른쪽)와 바리톤 윤한성이 오는 4월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올리는 오페라 '춘향탈옥'의 한 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나머지 2편은 외국 번안 오페라다. 도니제티 작곡의 ‘엄마 만세’는 오페라극장에 나타난 치맛바람을 풍자했다. 바일 작곡의 ‘서푼짜리 오페라’는 19세기 런던 암흑가를 배경으로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다섯 작품 모두 공연 길이도 대폭 줄였다. 인터미션(중간휴식)을 포함해 2~3시간 걸리는 전막 오페라를 약 90분으로 압축했다. 또 합창단을 빼고 성악가와 오케스트라만 무대에 오른다.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5편 모두 대사와 노래가 우리말이다. 자막을 보지 않아도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오페라단들도 무대 규모를 앞다퉈 축소하고 있다. 전막 공연보다는 핵심적인 장면의 아리아만을 소개하는 에션셜 공연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4월 10일 강북구 월계로 꿈의숲아트센터에서 오페라 콘서트 ‘오페라 톡톡, 모차르트 바스티앙과 바스티엔’을 공연한다. 주요 대목만 골라 들려주며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곁들인다.

국립오페라단도 오페라 콘서트로 올해 첫 공연을 시작한다. 4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동안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여행’을 연다. 주세페 베르디, 샤를 구노, 자코모 푸치니 등 오페라 거장들의 주요 레퍼토리에서 독창과 이중창만 추려서 들려준다. 47명의 성악가들이 무대에 서는데 모두 비대면 동영상 오디션으로 선발해 눈길을 끈다.

오페라단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코로나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지난 3월 25~28일 예정됐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접었다. 출연진 중 한 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기 때문이다.

국립오페라단도 3월 12~13일 경남 진주에서 열려던 오페라 ‘라보엠’을 확진자 급증으로 인해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했다. 합창단, 기술진 등 100여명이 함께 연습하려면 집단 감염 위험이 커져서다. 전막 공연을 포기하면 이런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합창단을 빼면 리허설에 참여하는 출연진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페라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오페라계가 코로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라며 “지금은 일단 공연을 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규모를 축소하고 러닝타임을 줄여 관객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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