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12명 첼로 어벤저스의 오케스트라 뺨친 연주...바흐도 카잘스도 ‘하늘서 브라비!’

서울국제음악제 폐막공연 ‘바흐·류재준 12대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탄테’ 등 선사

민은기 기자 승인 2021.10.31 23:39 | 최종 수정 2023.03.20 10:38 의견 0
작곡가 류재준이 30일 서울국제음악제 폐막공연서 12명의 첼리스트들이 '12대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탄테’ 연주를 마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국제음악제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많이 궁금했다. 첼리스트 12명이 한 무대에서 동시에 연주하는 풍경이 어디 흔한 일인가. 더욱이 아티스트 모두가 지금 시대를 대표하는 세계 정상들이다. 아르토 노라스, 드미트리 쿠조프, 양성원, 송영훈, 클라우디오 보호르케즈, 김민지, 마야 보그다노비치, 장우리, 이상 앤더스, 안드레이 이오니처, 이상은, 이경준. 이름만 들어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멤버들이 무대를 꽉 채웠다. 20대부터 70대까지 세대를 넘나드는 ‘다국적 어벤저스급’으로 구성돼 있으니 화합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끈 프로그램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바흐가 남긴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작품이다. 맨 앞에 전주곡을 뜻하는 프렐류드를 배치한 뒤 알라망드-쿠랑트-사라방드-미뉴에트-지그의 순서로 춤곡이 이어진다. 특히 곡 전체의 주제와 분위기를 드러내는 프렐류드를 들으면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하고 고개를 갸웃한다. 그만큼 선율이 귀에 익숙하다.

12명의 첼리스트들이 30일 서울국제음악제 폐막공연서 바흐·류재준의 ‘12대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탄테’를 연주하고 있다. Ⓒ서울국제음악제


“바흐의 걸작 중 하나인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12개의 첼로를 위해 다시 탄생시키는 것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공하는 것과 같다. 가공사의 정밀한 손끝에서 눈부신 보석이 만들어지듯 처음부터 이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이해하고 세공해야 했다. 이제는 어린 음악도들도 심심치 않게 연주하는 바흐의 첼로 모음곡 안에는 한계 없는 상상의 캔버스가 펼쳐져 있다. 숨겨진 아름답고 고귀한 선율들을 조금씩 어렵게 발견했을 때마다 환희와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작곡가 류재준은 ‘12명 연주 버전’을 만들면서 느낀 황홀을 이렇게 고백했다. 바로셀로나에 유학 중이던 열세 살 파블로 카잘스가 한 고서점에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 다발을 발견했을 때와 똑같은 기쁨이다. 6개 가운데 1번을 선택한 것은 첫 번째 곡이라는 상징과 함께 가장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을 두루 고려했다. 바흐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곡에 삽입돼 있는 당시의 대표적 세속 리듬과 풍부한 선율은 1번 모음곡을 12대의 첼로를 위해 새롭게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팔팔 뛰는 음악적 재료가 넘쳤다.

12명의 첼리스트들이 30일 서울국제음악제 폐막공연서 바흐·류재준의 ‘12대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탄테’를 연주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서울국제음악제


류재준의 손길이 닿자 독주 선율 내부에 숨겨진 오케스트라적인 음향과 풍부한 화성, 그리고 밀도 높은 대위법적 움직임이 첼로 12대를 위한 음악으로 무한 확장됐다. 묵직한 저음 파트만을 담당한다는 선입견은 단박에 깨졌다. 무반주 첼로 1번에 흐르는 한음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면서 악기간의 배분을 통해 역동성과 재미를 더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바흐·류재준의 ‘12대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탄테’는 첼로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콤비네이션의 극치를 보여주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어떤 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순차적으로 음을 연주해 마치 음악이 눈에 보이듯 케미를 뽐냈다. 첼로는 홀로 있을 때도 매력적이지만 모여서 합을 맞출 때 엄청난 질감을 내뿜는 악기임을 증명해줬다.

작곡가 류재준이 30일 서울국제음악제 폐막공연서 12명의 첼리스트들이 '12대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탄테’ 연주를 마치자 연주자들과 포옹을 하고 있다. Ⓒ서울국제음악제


3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국제음악제 폐막음악회 ‘The 12 Cellists 회전목마’에서는 첼로의 장대함과 중후함이 관객 마음을 사로잡았다. 첼로 레퍼토리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이 12대의 첼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돼 심연에서 떠오르는 맑은 공기방울처럼 신비롭게 귓전을 맴돌았다. 첼로를 퉁퉁퉁 치기도 하고 아예 발로 무대 바닥을 구르기도 하면서 오케스트라 뺨치는 사운드를 뽑아냈다. 객석은 감탄이 쏟아졌다. 1부 마지막 곡으로 연주됐기 때문에 작곡가 류재준이 무대로 나와 12명 모두와 한사람씩 포옹을 하는 감동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흐뭇했다. 곡을 만든 바흐도, 곡을 널리 알린 카잘스도 분명 하늘에서 브라비를 외쳤으리라.

다른 프로그램들 역시 엑설런트했다. 율리우스 클렌겔의 ‘12대의 첼로를 위한 찬가 Op. 57’는 애잔하면서 따뜻한 감정이 켜켜이 쌓였다.

소프라노 이명주와 12명의 첼리스트들이 30일 서울국제음악제 폐막공연서 에이토르 빌라 로보스의 ‘소프라노와 12대의 첼로를 위한 브라질풍의 바흐 5번’을 연주하고 있다. Ⓒ서울국제음악제


그리고 소프라노 이명주가 독창자로 나선 에이토르 빌라 로보스의 ‘소프라노와 12대의 첼로를 위한 브라질풍의 바흐 5번’은 아름다웠다. 1악장에서는 가수의 보칼리제가 한없는 그리움으로 이끌었고, 2악장에서는 빠른 템포의 레치타티보 스타일 노래가 화려하 민속춤을 펼치듯 이어졌다.

아르보 패르트의 ‘형제들’은 간결함 속에 깊이 숨어있는 서정성을 발견하게 해줬다. 피날레는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사계’를 제임스 배럴릿이 편곡한 ‘12대의 첼로를 위한 사계’. 원래 순서가 아니라 여름-겨울-가을-봄의 순서로 연주했다. “나의 탱고는 발을 위한 음악이 아닌 귀를 위한 것이다”라는 피아졸라의 바람대로, 관객 모두가 귀호강 한 일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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