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영리한 박혜상...노래 다섯 곡으로 5막짜리 오페라 효과

코로나 극복 용기 북돋는 리사이틀 성황
제목에 ‘again’ 들어간 3곡도 불러 뭉클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2.07 18:51 | 최종 수정 2023.03.20 10:35 의견 0
소프라노 박혜상이 ‘Amore & Vita(사랑과 삶)’라는 타이틀로 열린 리사이틀에서 열창하고 있다. Ⓒ크레디아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영리한 소프라노다. 1부에서 처음 다섯 곡을 부를 때까지 박혜상의 ‘빅 피처’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먼저 고통스러운 실연의 감정을 담고 있는 줄리오 카치니의 ‘아마릴리, 내 아름다운 이여(Amarilli, mia bella)’를 끝마쳤다. 관객들은 박수타임을 엿보았지만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그대로 얼음이 됐다.

언제 쳐야 하나 머뭇머뭇하는 사이, 침묵을 깨고 살짝 피아노 반주가 이어졌다. 올렸던 손을 내리고 브라바 환호는 다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존 다울랜드의 ‘다시 돌아와요, 달콤한 연인이여(Come Again, sweet love)’를 들려줬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뜨거운 느낌이 위로 치고 올라가듯 후끈 달아올랐다. 두 손을 가슴에 포개고, 또 두 팔을 바깥으로 뻗는 등 자신의 몸을 적절히 사용하는 스킬이 놀랍다. 몸도 이렇게 노래를 하는구나! 두 번째 곡이 끝났지만 역시 자세를 풀지 않는다. 오히려 ‘지각’한 관객의 입장을 도우려는 듯 아예 오랫동안 자발적 망부석이 됐다.

이런 식의 연주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나를 괴롭히지 마오(O Cessate di piagarmi)’와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델라(Adela)’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다섯 번째 노래 순서가 왔다. 헨리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에서 비련의 주인공이 부르는 애달픈 아리아 ‘내가 대지에 묻힐 때(When I am laid in earth)’에서 치밀한 작전이 정체를 드러냈다.

피아노에 살짝 기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비극을 한바탕 쏟아내더니 무대 왼쪽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둥글게 바닥을 비추고 있는 조명을 벗어나 점점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오페라의 한 장면 같았다. 결국 다섯 곡의 노래를 모아 5막짜리 그랜드 오페라를 만드는 효과를 냈다.

소프라노 박혜상이 ‘Amore & Vita(사랑과 삶)’라는 타이틀로 열린 리사이틀에서 열창하고 있다. Ⓒ크레디아


지난 5일(토)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박혜상의 리사이틀 ‘Amore & Vita(사랑과 삶)’은 박혜상에게도 다 계획이 있었구나를 실감하게 해준 공연이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이어 도이치그라모폰(DG)과 계약한 두 번째 한국인 아티스트이자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마술피리’ 주역을 맡으며 세계적인 성악가로 발돋움한 그는 한국 관객에게 조금 낯선 작곡가의 곡을 선택했다. ‘유니크한 레퍼토리’를 들려주고 싶어 이들을 골랐다.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카치니-다울랜드-스카를라티-로드리고-퍼셀의 곡을 하나로 묶어 ‘박혜상 스타일의 깜짝 무대’를 선보인 뒤, 발랄함과 역동성이 돋보이는 2곡을 연주했다.

조아키노 로시니의 ‘베네치아 곤돌라 경주 1,2,3번(La regata veneziana No. 1,2,3)’에서는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마침내 경주에서 우승하는 기쁨을 잘 드러냈고, 루치아노 베리오의 ‘네 개의 민속음악 중 춤(Ballo from Quattro canzoni popolari)’에서는 라라라라 활력 넘치는 속사포 랩을 연상시켰다.

“살아 있는 동안 빛나라, 결코 그대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마지막을 청할 테니.” 박혜상은 2부가 시작되자 잠시 내레이터가 되어 관객에게 ‘세이킬로스 비문(Seikilos’ Epitaph)’에 적힌 글을 읽어줬다. 이번 무대를 통해 살아있는 동안 마음껏 충분히 사랑하고, 또한 항상 자신의 꿈을 향해 멈추지 말고 도전하라는 감동 메시지를 전하며 모두의 영혼이 밝게 빛나기를 응원했다.

이어 바이올린 김지윤·바이올린 김범구·비올라 조윤주·첼로 박소진으로 구성된 ‘스트링 콰르텟’과 호흡을 맞춰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저녁 노을(Il Tramonto)’을 선사했다. 마치 목소리로 지휘하듯 앙상블과 환상 케미를 뽐냈다. 스트링 콰르텟은 피치카토 연주가 돋보이는 조지 거슈윈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자장가(Lullaby for string quartet)’ 독주 연주로 잠시의 쉼표를 제공했다.

소프라노 박혜상이 ‘Amore & Vita(사랑과 삶)’라는 타이틀로 열린 리사이틀에서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손을 잡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크레디아


그리고 박혜상은 쿠프트 바일의 ‘낮은 목소리로 말하다(Speak low)’, 에릭 사티의 ‘당신을 원해요(Je te veux)’, 조지 거슈윈의 ‘다시 시작해(Do it again)’, 빅터 허버트의 ‘다시 입맞춰주오(Kiss me again)’를 연속해서 선물했다.

그는 콘서트에 앞서 특히 피날레 곡인 ‘다시 입맞춰주오’에 애정을 드러냈다. 허버트의 오페레타 ‘모자가게 아가씨(Mlle. Modiste)’에서 여자 주인공이 배우의 꿈에 도전하며 부르는 오디션곡이다. 박혜상은 “열정적으로 도전하면서 조금씩 커리어를 쌓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제 모습 같기도 해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설명했는데, 모두의 응원가 역할을 하도록 열창했다.

박혜상은 ‘다시 돌아와요, 달콤한 연인이여(Come again, sweet love)’ ‘다시 시작해(Do it again)’ ‘다시 입맞춰주오(Kiss me again)’ 등 제목에 ‘again’에 들어가는 곡을 세곡 넣었다. 이것 역시 비록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지만 ‘다시’ 도전하자는 위로와 위안의 마음을 담은 선곡이었다. 관객 모두에게 뭉클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앙코르 곡으로 드로르작 오페라 ‘루살카’의 ‘달에게 부치는 노래(Song to the moon)’, 한국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임긍수 곡), 남도민요 ‘새타령’,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방금 들린 그대 목소리(Una voce poco fa)’를 불렀다.

지난 2020년 롯데콘서트홀에서의 독창회도 함께 했던 라쉬코프스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포옹으로 감동적인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는 서울 공연을 마치자마자 뉴욕 필하모닉 신년 콘서트를 위해 출국하지만, 3월에 다시 돌아와 대구와 고양에서 공연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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