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리뷰] 김응수 ‘바이올린 마법’...도심 한복판이 300년전 바흐가 일했던 교회가 됐다

30개의 릴레이공연 첫 스타트부터 감동
섬세한 손가락 움직임까지 눈앞서 직관

박정옥 기자 승인 2022.04.06 00:23 | 최종 수정 2023.03.20 10:32 의견 0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4일 열린 ‘점과 선(Dots and Lines)’ 시즌1 첫 공연에서 연주하고 있다. Ⓒ김홍석·피트뮤직 제공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궁금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어떻게 음악회를 이끌어 가는지. 일단 리허설이 예사롭지 않았다. 3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에 홀로 섰다. 자연스러운 음향을 고려해 사방을 나무로 마감한 일반 콘서트장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다. 낯선 것은 그도 똑같았다. 내내 이것저것 테스트하며 최적의 소리를 뽑아내기 위해 골몰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지럽게 난반사되던 소리는 어느새 홀을 감싸 안은 아늑한 소리로 바뀌었다. 활 긋는 힘을 조절하고 연주하는 위치를 조정하며 만든 결과다. 준비 끝이다.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1915~1997)는 일본 공연을 갈 때마다 태평양 연안의 큰 도시에서만 공연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어느날 지도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작은 도시들을 짚으며 이곳에서도 연주하겠다고 선언했다. 제대로 된 콘서트장과 피아노가 없는 곳들이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강당에서 낡은 피아노로 연주회는 진행됐다. 난생 처음 클래식 공연을 본 촌부가 음악에 감동해 눈물을 훔치는 광경이 펼쳐졌다. 모두들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김응수가 존경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1974)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공연장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낡으면 낡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잘 대처했다. 비법은 간단했다. 공연장 형편에 따라 자신이 세심하게 소리를 다듬어 듣는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4일 열린 ‘점과 선(Dots and Lines)’ 시즌1 첫 공연에서 연주하고 있다. Ⓒ김홍석·피트뮤직 제공


김응수는 “저도 그저 선배들의 가르침을 순순히 따르는 것뿐이다”라며 야심찬 도전의 첫 발자국을 내딛었다. 바이올린 300년의 역사를 30개의 공연으로 풀어내는 ‘점과 선(Dots and Lines)’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콘서트를 10개씩 묶어 올 한해 모두 3개의 시즌을 진행한다. 바로 그 시즌1의 첫 공연이 4일 오후 서울 역삼동 안타워 9층 스페이스 G.I.에서 열렸다. 관객 50명쯤 들어가는 작은 공연장이다.

유리창 너머 불을 밝힌 빌딩들을 배경으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 흘렀다. 장중하고 경건한 1악장 ‘아다지오’를 지나, 간결한 주제를 바탕으로 논리적이며 지적인 전개가 펼쳐지는 2악장 ‘푸가’가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느리고 우아한 시칠리아 지방 춤곡풍의 3악장 ‘시칠리아나’에 이어, 가볍고 열정적인 마지막 ‘프레스토’ 4악장이 끝났다.

1~4악장이 펼쳐지는 동안 청중은 이곳이 도시의 한복판인 걸 잊었다. 300년 전 바흐의 책상에서 만들어진 선율이 김응수의 손끝을 통해 전달되는 순간, 공연장은 높은 천장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갖춘 교회로 바뀌었다. 바흐와 관객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됐다.

작품번호 순서로는 두번째지만 실제로는 베토벤의 첫 바이올린 소나타인 2번이 두 번째 곡으로 연주됐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모습이 언뜻 비치지만 ‘베토벤스러움’이 분명한 곡이다. 단순한 구성 탓에 기교적인 면은 조금 덜 부각되지만 유연하고 익살스런 매력으로 가득하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가 4일 열린 ‘점과 선(Dots and Lines)’ 시즌1 첫 공연에서 연주하고 있다. Ⓒ김홍석·피트뮤직 제공

무대와 객석이 따로 분리되지 않은 공간이다 보니 오히려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2악장의 슬픔에 몰입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가뿐 숨소리와 섬세하게 살아 움직이는 손가락을 눈앞에서 경험할 수 있어 더 좋았다. 피아노로 끝이 나는 듯 하더니 바이올린이 마지막 한 마디를 더하겠다며 음표를 추가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마지막 곡은 지금까지 무대에서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의 콘체르트자츠(Konzertsatz). 베토벤의 필적으로는 259마디의 조각만이 전하지만, 그 후 여러 차례 여러 사람이 상상력을 발휘해 뒷부분을 완성했다. 미완성으로 끝난 바이올린 협주곡의 스케치와도 같은 이 곡에 오페라와 같은 극적 효과가 있음을 연주자는 아낌없이 보여줬다.

김응수는 곡과 곡 사이의 휴식 없이 밀도 있게 연주회를 이끌었다. 세 번의 커튼콜 후에 이자이 소나타 3번 ‘발라드’가 앙코르로 올라왔다. 어마어마한 테크닉으로 점철된 이 곡이 한 치의 오차 없이 휘몰아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김응수는 6일 다시 무대에 올라 바흐 소나타 2번, 모차르트 소나타 2번, 베토벤 소나타 5번을 들려준다. 8일에는 모차르트 소나타 18번, 베토벤 소나타 4번,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2번을 연주한다. 공연은 11·13·15·18·20·22·23일에도 잇따라 열려 10번의 시즌1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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