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결정적 순간’...사진집 발행 70주년 특별전

6월 10일~10월 2일 서울 예술의전당 전시
작가가 직접 쓴 작품설명 읽는 재미도 쏠쏠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5.08 10:31 | 최종 수정 2022.05.08 10:38 의견 0
동료 사진작가가 찍어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초상 사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카르티에 브레송의 모습을 촬영했다. ⒸMartine Franck/Magnum Photos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모든 사진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으로 통한다.” 프랑스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은 사진을 기록에서 예술로 승화시킨 주인공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작가이자 현대사진의 문을 연 선구자며, 세계사진거장협회인 매그넘의 공동창립자다. 살아서는 신화였고 죽어서는 전설이 됐다.

그는 1952년 ‘결정적 순간’이라는 타이틀을 단 사진작품집을 내놓았다. 그 사진집 발행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이 오는 6월 10일(금)부터 10월 2일(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결정적 순간’에 수록된 오리지널 프린트, 1952년 프랑스어 및 영어 초판본, 출판 당시 편집자·예술가들과 카르티에 브레송이 주고받은 서신을 비롯해 작가의 생전 인터뷰, 소장했던 라이카 카메라를 포함하는 컬렉션을 소개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결정적 순간’은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작품 관람은 물론, 1952년 출간된 이래 사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산이 되어 버린 사진집 ‘결정적 순간’을 탄생시킨 하나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편집자이자 당대 최고의 컬렉터였던 테리아드,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을 지은 사진작가이자 출판사 대표인 딕 사인먼, 거동이 불편한 와중에도 책의 커버아트와 타이틀을 손수 그려 넣어준 앙리 마티스와 주고받은 편지와 일화 등 역사적인 사진집이 나올 수 있었던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직접 설명하는 자신의 작업과 이 책의 관계에 대한 슬라이드 쇼 렉처 영상(1973)은 이 책에 관한 수많은 오해와 찬사로부터 보다 또렷하게 본질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그의 눈이 되어 주었던 라이카 카메라와 그가 설립한 사진작가의 공동체로 널리 알려진 매그넘포토스의 프레스 카드를 만나는 것은 그의 손때 묻은 조각을 만나는 소소한 기회이기도 하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대표작 ‘생 라자르 역 뒤에서’(1932). 생 라자르 역의 뒤쪽 울타리의 틈을 통해, 고여 있는 물 위를 막 뛰어오르는 한 남자를 포착한 이 사진은 ‘결정적 순간’의 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여겨볼 것은 이 사진집에 담긴 군더더기 없고, 과장 없이 자신의 사진에 대한 담백한 시선을 담은 카르티에 브레송의 글이다. 시간을 들여 읽게 된다면, 스마트폰에 끊임없이 채워지는 사진을 찍고 싶은 우리의 욕망과 위대한 사진작가의 욕망 사이에 놓인 100년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왜 사진을 찍을까?’ ‘어떤 사진이 좋은 사진일까?’에 대한 크고 작은 질문을 가진 사람, 아니 사진을 찍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전시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코닥 브라우니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사용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내가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좀 더 잘 보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나의 좁은 세계는 점점 넓어졌고, 나는 사진을 찍는 것에 진지해졌다.”--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1952) 서문에서 발췌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앙리 마티스가 직접 쓰고 그려준 제목과 커버로 장식된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로버트 카파가 “사진작가들의바이블”이라 일컬을 만큼 당대뿐 아니라 후대의 사진작가들에게까지 큰 파급력을 불러온 책이자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대표적인 저서다.

이 책은 1932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 인도, 중국, 프랑스, 스페인 등지를종횡무진하며 생생한 현장에서 발굴해 낸 경이로운 삶의 순간들을 비롯해 간디의 장례식,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 독일 데사우 나치 강제수용소의 모습과 같은 역사의 변곡점이라 불릴 만한 순간들이 카르티에 브레송의 눈을 통해 생생히 담겨있다.

원래 ‘달아나는 이미지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프랑스어판과 동시에 발행된 영문판의 제목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은 책의 서문에 인용된 “이 세상에 결정적 순간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레츠 추기경의 회고록 문구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진 제목이다.

출간과 동시에 열렬한 환호 속에 성공한 이 책의 제목 ‘결정적 순간’은 그 자체로 사진이 발명된 이래 가장 회자되는 표현이자 하나의 상징이며, 동시에 모든 사진작가들에게 굴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 그리고 짧고, 덧없고, 위협받는 삶의 찰나가 오롯이 담겨 있는 이 책 속에 수록된 작품들은 시대의 변화와 세대의 차이를 넘어서는 사진예술의 정수다.

1952년 출간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앙리 마티스가 직접 표지를 쓰고 그려줬다. ⒸFoundation Henri Cartier-Bresson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미학은 우연의 마주침이 빚어낸다. 예견치 못한 특별한 상황을 남몰래, 재빨리, 단숨에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순간포착의 산물이다. 그는 소형 카메라인 라이카로 거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대상을 신속히 촬영해 정적인 공간에 시간성을 부여했다. 동적인 요소와 함께 빛과 그림자도 그의 사진미학에서 중요하다.

이런 ‘찰나의 미학’의 대표작은 너무도 유명한 ‘생 라자르 역 뒤에서’(1932)다. 파리 생 라자르 역 울타리 부근에서 물웅덩이를 건너뛰려는 남자의 동작은 수면에 반사된 그림자와 완벽한 대칭구조를 이룬다. 뒤쪽 벽면의 포스터 속 무용수의 동작과도 대칭된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작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린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다. 어린 시절 그림을 배우던 그는 1930년대 초, 사진작가 외젠 앗제와 만 레이의 사진을 접한 것을 계기로 사진의 길에 들어선다.

카메라는 그에게 눈의 연장이었으며, 그의 작업 방식은 직관과 본능에 의거하여 진정성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사진보다 삶에 더 관심이 많다”라고 말했던 그는 일체의 인위성에 반대하며 연출이나 플래시, 사진을 크롭하는 행위 등을 배제하는 대신, 대상이 형태적으로 완벽히 정돈되면서도 본질을 드러내는 순간에만 셔터를 눌렀다.

따라서 미학적 완전성과 일상적 휴머니즘을 동시에 담아낸 그의 작품 세계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삶과 세상을 응시하는 예리하지만 따스한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입장료는 성인 1만8000원, 초중고생 1만5000원, 미취학 아동 1만2000원. 네이버예약, 인터파크, SAC Ticket 등에서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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