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167년만에 국내 초연...강요셉·국윤종·서선영·김성은 출연

국립오페라단 6월2~5일 공연...파비오 체레사 연출·홍석원 지휘

박정옥 기자 승인 2022.05.10 13:22 의견 0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60주년을 맞아 오는 6월 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를 공연한다. Ⓒ국립오페라단


[클래식비즈 박정옥 기자] “거룩한 종소리가 혼인이 성사되었음을 알릴 것이고, 학살이 시작될 겁니다. 오 하느님! 내가 어느 편을 들어야 하나요? 날 불쌍히 여겨주세요. 내 영혼을 지탱하시고 괴로움을 가라앉혀 주세요!”--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중

주세페 베르디의 대작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I vespri siciliani)’가 국내 무대에 167년 만에 처음 오른다. 테너 강요셉·국윤종, 소프라노 서선영·김성은, 바리톤 양준모·한명원 등이 초연 무대에 선다.

국립오페라단은 창단 60주년을 맞아 오는 6월 2일(목)부터 6월 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를 공연한다. ‘신포니아’로 불리는 이 작품의 서곡과 주요 아리아는 높은 완성도로 자주 연주됐지만 국내 무대에서 전막(5막)이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1282년 부활절에 일어난 ‘시칠리아 만종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시칠리아 만종 사건은 13세기 후반 프랑스의 강압적인 지배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을 말한다. 프랑스의 압제에 고통 받으며 프랑스에 대한 반감을 키워가던 중 프랑스 군인이 시칠리아 여인을 희롱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격분한 시칠리아인들은 수많은 프랑스 군인을 살해하고 성당의 저녁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프랑스인에 대항한 봉기를 일으킨다.

● 거대한 역사 속 개인이 겪는 비극적 서사...인간 심리·갈등에 초점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제1회 만국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던 프랑스로부터 위촉을 받아 1855년 초연됐다.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요청된 작품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프랑스인을 압제자로 그리는 내용이기에 반응은 엇갈렸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의 재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독립과 개인적 행복 사이의 번뇌, 정치적 상황에 대항한 개인들의 각기 다른 선택 모습을 설득력 있는 음악으로 표현해 여운이 남는 작품으로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얻었다.

● 독립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 완성도 높은 서곡 등 유명

우리나라에서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서곡과 주요 아리아로 알려져 있다. ‘신포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서곡은 독립적인 관현악 작품으로 연주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경쾌한 볼레로 리듬을 가진 엘레나의 아리아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벗들이여(Merce, dilette amiche)’는 결혼식이 가지는 화려함을 잘 표현한 곡으로 많은 소프라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오 조국이여, 그대 팔레르모(O Patria O tu, Palermo)’ 등 남성 성악가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들 역시 만나볼 수 있다.

이렇듯 독립적으로 연주됐던 곡들이 이번 무대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오페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국내의 많은 오페라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 베르디 작품이 가진 보편성을 극대화하는 연출

이번 작품 역시 베르디의 의도의 연장선에서 현재의 차별과 보편적인 평화를 이야기할 예정이다.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는 시대적 배경에 국한되지 않고 관객들이 현재의 차별과 억압까지도 엿볼 수 있게 무대를 꾸민다.

프랑스 총독 몽포르테는 시칠리아인을 억압하는 프랑스인의 우두머리인 인물일 뿐 아니라 현대의 특권층으로, 그리고 아리고는 몽포르테의 헤어진 여인 사이에서 탄생한 비혼모의 아들로도 상징 될 수 있는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억압받는 자와 억압하는 자의 대립과 그 역할의 전복을 그려내 높은 추상성을 가진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출의도는 무대, 의상 디자인에도 반영된다. 시대적 배경에 국한되지 않은 세련된 의상과 심플한 무대는 관객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해당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이번 공연은 프랑스와 시칠리아를 각각 하늘색과 오렌지색으로 구별해 이 두 집단 간의 갈등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흰색을 모든 인물이 가지는 공통의 색으로 설정해 평화라는 작품의 주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무대에는 오렌지 나무가 있는 정원, 배, 섬, 우주에 있는 행성을 구현해 우리 모두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각화할 예정이다.

● 다시 돌아온 파비오 체레사의 연출...풍부한 음향 그려내는 지휘자 홍석원

이번 작품은 2016년 아시아 초연작이었던 국립오페라단 ‘오를란도 핀토 파초’를 연출한 파비오 체레사가 연출을 맡는다. 다소 생소한 바로크시대 오페라를 유쾌한 상상력과 유머감각으로 해석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그는 2016 인터내셔널 오페라 어워즈가 선정한 영디렉터 상을 수상하며 촉망 받는 젊은 연출가로 급부상, 현재 세계 극장을 누비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휘자 홍석원은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를 이끌며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젊은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엘레나 역은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성악가로 발돋움, 스위스 바젤 극장 솔리스트를 거쳐 202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발탁된 소프라노 서선영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활약하다 주역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어 2021년 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으로 열연을 펼쳤던 소프라노 김성은이 맡는다.

아리고 역은 독일 베를린 도이치오퍼에서 한국인 최초 주역 테너로 11년간 활약한 테너 강요셉과 오스트리아 빈 폴크스오퍼의 간판스타로 활약한 테너 국윤종이 맡아 열연을 펼친다. 몽포르테 역은 바리톤 양준모와 한명원이 맡고, 프로치다 역은 베이스 최웅조와 김대영이 연기한다.

국립오페라단은 현장 공연의 생생한 감동을 온라인을 통해서도 선보인다. 이번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국내초연은 6월 4일(토) 오후 3시 국립오페라단의 온라인스트리밍 서비스인 크노마이오페라와 네이버TV를 통해서 랜선 관객을 찾아간다.

티켓은 2만~15만원. 국립오페라단은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 청년(만19~39세), 의료진,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특별할인 이벤트를 진행한다. 청년 대상 할인 이벤트는 5월 11~20일까지 회당 선착순 예매자 100명에게 12만원 상당의 S석을 5만원에 제공한다. 의료인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는 D석을 제외한 전석을 40% 할인된 가격에 제공한다.

/park72@classic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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