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환상’ 들어간 곡들만 모아 ‘환상적 연주’...이영신·이은영 조인트 리사이틀

6월18일 모차르트·멘델스존·슈베르트·슈만·쇼팽 피아노곡 선사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5.29 13:48 의견 0
피아니스트 이영신(왼쪽)과 이영은이 오는 6월 18일 영산아트홀에서 조인트 리사이틀을 연다. Ⓒ클라시코예술기획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소나타, 콘체르토, 심포니 등 클래식 제목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명칭은 작품 형식을 의미한다. 대개 클래식 음악은 정해진 틀에 맞춰 주제 선율이 등장한 뒤, 서로 대비를 이루거나 융합하면서 그 주제를 발전해 나간다.

하지만 모든 클래식 음악이 항상 규칙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 즉흥연주는 음악회 프로그램의 중요한 요소고, 관객들은 음악가가 솟구치는 영감을 있는 그대로 펼쳐내는 연주에 오히려 더 환호한다. 작곡가들은 때때로 자신의 감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악보에 담아냈는데 이를 ‘환상곡’이라고 불렀다.

‘환상곡’은 포맷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낭만적 기분과 상상력을 동원해 자유롭게 쓴 곡이다. 음악가의 영감과 필링이 어떻게 음악으로 구체화되는지가 환상곡의 감상 포인트다.

피아니스트 이영신과 이은영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피아노곡 가운데 바로 이 ‘환상곡(fantasia)’ ‘환상(fantasy)’이라는 제목이 붙은 곡만을 따로 모아 조인트 리사이틀을 연다. 그래서 공연 타이틀도 ‘피아노, 환상을 품다’로 정했다. 오는 6월 18일(토)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모차르트, 멘델스존, 슈베르트, 슈만, 쇼팽의 ‘환상’을 터치한다.

리사이틀 스타트는 모차르트 ‘환상곡 d단조 K. 397(Fantasy in d minor, K. 397)’로 시작한다. 이 곡이 완성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1782년께로 추정한다. 단순한 아르페지오 구성으로 곡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초반 50초 동안의 오프닝은 아주 특별한 감동을 안겨준다. 전체 6분 정도 연주되는데 ‘음악신동’의 어둡고 암울한 시기를 관통하고 있어 애잔하기도 하다.

이어 멘델스존의 독특한 개성이 절묘하게 혼합된 ‘환상곡 작품번호 28번(Fantasy in f# minor, Op. 28)’을 들려준다. ‘스코틀랜드풍’이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어 ‘스코틀랜드 소나타’라고도 불린다.

이영신과 이은영의 찰떡 케미를 보여주는 무대도 준비했다.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Fantasie in f minor D 940 for Piano 4 Hands)’는 두 피아니스트가 한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포 핸즈(Four Hands)’ 곡이다. 유아인과 김희애가 주역을 맡았던 드라마 ‘밀회’에도 나오면서 대중적으로 더 알려졌다. 두 연주자의 호흡이 기대된다.

‘환상소곡집(Fantasiestücke, Op. 12)’은 슈만이 전 생애에 걸쳐 시도했던 음악과 문학의 만남을 이루어낸 작품이다. 슈만은 E. T. A. 호프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제목을 호프만의 소설 ‘칼로의 방식에 의한 환상소곡집(Fantasiestücke in Callots Manier)’에서 따왔다. 이 소설은 슈만의 또 다른 작품인 ‘크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환상소곡집’ 속 여덟 곡은 1837년 연인 클라라 비크와 강제로 떨어져 있었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중에 붙인 각 곡의 표제는 그 당시의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표현돼 있다.

하지만 제1곡 ‘석양’, 제2곡 ‘비상’, 제3곡 ‘왜’, 제4곡 ‘변덕’, 제5곡 ‘밤에’, 제6곡 ‘우화’, 제7곡 ‘꿈의 얽힘’, 제8곡 ‘노래의 종말’을 들으면 심란한 마음이 싹 가라앉는 진정 효과가 있다. 정작 슈만 본인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두 이중적 자아, 즉 열정적인 플로레스탄과 내향적인 오이제비우스를 담아내고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신경안정제 같은 작품이다.

쇼팽의 ‘환상 폴로네즈(Fantasie-Polonaise in Ab Major, Op. 61)’는 애절하다. 첫 도입의 인트로부터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대담하고 빛나는 장면들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승리에 익숙한 말들이 달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패배의 예감에 억눌리지 않는 노래도, 승리자들이 호쾌하게 외치는 말도 이제 들리지 않는다. 지배적인 것은 애절한 슬픔이다.” 프란츠 리스트의 말이다.

폴로네즈는 원래 우아하고 고상한 귀족들의 춤곡이다. 하지만 쇼팽의 ‘환상 폴로네즈’에는 열에 들뜬 불안, 끊을 수 없는 비통한 마음, 쉽게 사라지지 않는 창백한 슬픔, 지난 세월의 쓰라린 회환 등을 한통에 몽땅 쓸어넣고 빚은 곡 같다. 먹먹함이 몰려온다.

요즘은 실생활에서 ‘환상’이라는 단어는 다르게 사용된다. 가령 ‘환상적이다’라고 하면 ‘최고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베리굿이다, 엑설런트다’와 동의어로 쓰인다. 이영신과 이은영이 이번에 선보이는 모차르트, 멘델스존, 슈베르트, 슈만, 쇼팽의 곡들은 모두 ‘환상적’이고, 연주 또한 ‘환상적’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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