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케이스속 낡은 사진이 만든 ‘퀸엘리자베스콩쿠르 우승’...최하영 "이름 불렸을때 심장 멎는줄"

‘위대한 첼리스트 아닌, 위대한 뮤지션 되라’ 스승 가르침 늘 새겨

민은기 기자 승인 2022.06.05 18:02 | 최종 수정 2022.06.06 09:16 의견 0
첼리스트 최하영이 202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하고 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홈페이지 캡처


[클래식비즈 민은기 기자] 첼리스트 최하영은 지난 2019년 ‘금호악기은행’ 임대자 오디션을 통해 1600년에 만들어진 ‘지오반니 파올로 마치니’ 첼로를 받았다. ‘금호악기은행’은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에게 고악기를 무상으로 임대해주는 후원 프로그램이다. 권혁주, 클라라 주미 강, 임지영, 김다미 등이 여기서 받은 바이올린으로 세계 주요 무대에서 자신의 소리를 펼쳐냈다.

‘지오반니 파올로 마치니’는 오랜 세월이 느껴질 만큼 아주 깊고 굵은 음색을 가지고 있다. 크기는 일반적인 풀 사이즈보다 조금 더 크다. 그래서 케이스도 특수 제작돼 있다. 최하영은 자기 케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겉면에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지는 않았다. 그 대신 베를린국립예술대 입학 때 받았던 대학교 스티커 하나만 붙였다.

케이스 안에는 두 장의 사진이 있다. “아주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넣고 다닌다”고 밝혔다. 그 중 한 장은 함께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세 자매와 함께 찍은 사진이고, 나머지 한 장은 작고한 미국의 버나드 그린하우스 선생님과 찍은 사진이다. 버나드 그린하우스는 세계적인 3중주단 '보자르 트리오'의 멤버였다. 2009년 여름 선생님이 살고있는 웰플릿에서 찍었다. 보스턴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해변 마을에 있는 선생님 댁에서 몇 주 머물면서 개인 레슨을 받았다. 마지막 날 선생님이 특별히 개인 독주회를 열어 주었는데, 바로 그 연주가 끝나고 찍은 사진이다. 2021년 4월 금호아트홀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낡은 사진 2장이 들어있는 최하영의 첼로 케이스. ⓒ금호아트홀 블로그 캡처


“저는 당시 열한살이었어요. 작은 3/4 사이즈 첼로를 썼는데, 연주 며칠 전 선생님이 그토록 아끼던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를 제게 내어 주셨어요. 본인의 악기로 제가 연주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악기가 제 몸보다 컸지만 며칠 동안 풀사이즈 악기에 적응하려고 열심히 노력했어요. 독주회가 끝나고 앙코르 곡으로 파블로 카잘스의 ‘새의 노래’를 연주했어요. 그린하우스 선생님께서 본인의 스승이신 카잘스 선생님께 직접 배우신 곡이죠.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었죠, 이 사진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무엇보다 ‘Don’t be a great cellist, be a great musician’이라고 항상 강조했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나 세계 3대 클래식 음악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최하영(24)이 우승했다. ‘위대한 첼리스트가 아니라, 위대한 뮤지션이 되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묵묵히 따른 결과다.

첼리스트 최하영이 202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벨기에 한국문화원

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 결선 마지막 날 연주가 끝난 뒤 5일 새벽 이뤄진 수상자 발표에서 최하영이 1위로 호명됐다. 비공개로 이뤄진 심사위원단의 점수 집계와 열띤 논의 끝에 최종 결과가 발표됐다. 올해 심사위원은 14명으로 한국인 첼리스트 정명화를 포함해 세계적인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고티에 카푸숑 등이 참여했다.

2위는 중국의 이바이 첸(21), 3위는 에스토니아의 마르셀 요하네스 키츠(27)가 수상했다. 수상자들은 브뤼셀과 안트워프 등 벨기에 전역에서의 연주 기회가 주어진다. 최하영은 향후 열리는 시상식에서 벨기에 마틸드 왕비로부터 직접 상을 받으며, 우승상금은 2만5000유로(약 3400만원)다.

지난달 30일 시작돼 이날까지 이어진 결선에는 모두 12명이 진출했으며 이 가운데 한국인은 최하영, 윤설, 정우찬, 문태국 등 4명이었다. 다른 3명의 한국 연주자는 1∼6위까지 입상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결선 진출자들은 이번 경연을 위해 특별히 작곡된 독일 음악가 외르크 비트만의 미발표곡을 연주하고 나서 자신이 선택한 협주곡을 브뤼셀 필하모닉과 협연하는 방식으로 경연을 벌였다. 최하영은 연주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비톨드 루토스와프스키 협주곡을 선택했다. 현지 매체 ‘르 수아르’는 이에 대해 “과감한 선곡에 환상적인 연주, 브라보”라고 극찬했다.

최하영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줍은 듯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이어 감격을 감추지 못하며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내 이름이 불렸을 때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며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어느 경연보다 퀸 콩쿠르의 관객들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라며 “연주 내내 음악 축제에 참여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첼리스트 최하영이 2022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SBU파트너스 유소방 대표와 환하게 웃고 있다. SBU파트너스는 오는 9월 최하영과 함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위너스 투어’를 연다. Ⓒ유소방 대표 페이스북 캡처

최하영은 이번 우승을 기념해 오는 9월 국내에서 6번의 콘서트를 진행한다. 2위 수상자인 이바이 첸과 함께 9월 14일부터 20일까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위너스 투어’를 연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폴란드의 쇼팽 피아노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음악 경연대회로 꼽힌다. 피아노, 첼로, 성악, 바이올린 부문이 한해씩 차례로 돌아가며 열린다. 첼로 부문은 2017년 신설돼 올해가 두 번째 경연이다. 첫해에는 프랑스 연주자가 1위를 차지했다. 최하영은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첫 우승자로 기록되게 됐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는 그동안 한국인 입상자와 우승자가 여러 명 나왔다. 2015년 기악부문 최초 1위를 수상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을 비롯해 바이올린 부문 강동석(1976년 3위), 배익환(1985년 2위), 권혁주(2005년 6위), 김수연(2009년 4위), 윤소영(2009년 6위), 신지아(2012년, 3위)가 있다. 피아노 부문에선 백혜선(1991년 4위), 박종화(1995년 5위), 임효선(2007년 5위), 김태형(2010년 5위), 김다솔(2010년 6위), 한지호(2016년 4위)가 있다.

성악 부문은 홍혜란(2011년 1위), 황수미(2014년 1위), 박혜상(2011년 5위)이 있고 작곡 부문은 조은화(2008년 1위), 전민재(2009년 1위)가 있다.

최하영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첼로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먼저 아마추어로 첼로를 배웠는데, 옆에서 들으며 ‘나도 하고 싶어’ 한 게 시작이었다.

2006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해 브람스 국제 콩쿠르 최연소 1위,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국제 첼로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다. 발틱 크레메라타, 잘츠부르크 크레메라타,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무대에 서며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쳐 영국 퍼셀 음악학교에서 알렉산더 보야스키에게 배웠으며,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학사와 석사를 졸업했다. 2017년부터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부설 에마뉘엘 포이어만 콘서바토리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0년 가을부터 베를린국립예술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볼프강 에마뉘엘 슈미트 교수에게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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